“군인이 전쟁터 가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잘 다녀오거라” 아버님 말씀 지금도 귀에 생생해

병역명문가 2대 강신영 전 공군 원사
병역명문가 2대 강신영 전 공군 원사

6월이 되면 문득 위패가 모셔져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가족이 있다. 이곳을 찾아 가슴 저린 사연을 한올 한올 풀어놓기도 하고 참배객들 사이로 처연히 풀어 앉아 지나온 역사를 기억하기도 한다.

지난 22, 305개월 근무를 마치고 공군 원사로 퇴임한 서산시 예천동 거주 강신영 선생을 만나 병역명문가 집안에 얽힌 사연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나라를 위해 헌신해 온 그간의 발자취를 들어봤다.

병역명문가 2대 강신영 전 공군 원사는 대전이 고향으로 1974년 공군에 입대한 후 총 285개월을 복무하고 20026월 말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전역했다.

1대(강종희) 백마부대 소속으로 월남전 파병 당시
1대(강종희) 백마부대 소속으로 월남전 파병 당시

Q 만나 봬서 영광이다. 서산에도 병역명문가 가족이 있다는 것이 상당히 자랑스럽다. 병역명문가는 어떤 자격요건이 되며 병역이행 가족들은 어떻게 되나?

병무청에서 2004년부터 시작한 사업으로 1대 아버지, 2대 본인과 형제, 3대 아들 및 사촌 형제까지 가문의 모든 직계비속이 현역복무를 성실히 마친 가문을 상대로 선정하는 사업이다.

혹여라도 가족 중에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이 있거나 공익근무요원 등으로 보충역복무를 마친 사람이 있는 경우는 물론, 현역병으로 입영하였지만 정상적으로 복무를 마치지 못한 경우에도 병역명문가로 선정될 수 없다. 참고로 2020년 명문가로는 1017 가문으로 5,222명이 선정된 바 있다.

우리집은 1대 고 강종희 육군 상사인 부친께서 291개월을 복무하셨다. 2대는 우리 4형제 중 맏이셨던 강신철 형님이 공군 원사로 398개월 복무, 나 강신영은 공군 원사 제대로 305개월, 아래로 첫째 동생 육군 병장 강신찬은 29개월, 둘째 동생 강신국은 공군 병장 출신으로 32개월 복무를 했다.

3대를 보면 강정석 군 외 4명의 군 복무를 합하면 무려 122개월을 군에 몸담았다. 모두 더하면 총 복무기간이 1177개월로 약 100년사에 육박한다. 안타까운 것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그토록 소원하시던 것이 병역명문가 선정이었는데 미처 보지 못하시고 2018년 고인이 되셨다.

 

Q 하늘나라에서도 무척 기뻐하실 거다. 부친께서는 어떤 분이셨나?

아버님께서는 1952년 육군에 입대하여 한국전쟁과 196510~19674월까지 월남전에 참전한 바 있는 국가유공자시다. 제대 후에는 고엽제 피해로 당뇨를 앓으셨다. 편찮으신 몸으로도 손자들이 명예로운 병역이행을 모두 마쳐 병역명문가가 되기를 무척 원하셨다.

아버님의 총 복무기간은 243개월로 197612월 말 명예로운 육군상사로 만기 전역하셨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나라를 생각하며 생활하셨던 강직하신 분이었다.

1965년 10월 월남 파병 출발 전 가족사진
1965년 10월 월남 파병 출발 전 가족사진

Q 보여주신 것을 보니 선생은 초등학교만도 무려 7개 학교를 전학 다니셨다. 교우 관계에서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

제가 태어난 곳은 대전이다.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수시로 전학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 한군데 진득하니 살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세어보니 초등학교만 일곱 번을 전학했다. 때로는 같은 학교를 두 번 다니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사 다닌 것을 멈췄을 때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들어가고부터였다.

가만 보니 초등학교 6년 동안 무려 7개 학교를 전학 다녔다. 이것은 평균 1년도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결과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은대초등학교, 여주시 대신면 대신초등학교, 다시 연천군에 있는 은대초등학교, 서울 은평초등학교, 대전에 있는 원정초등학교와 문화초등학교 그리고 태평초등학교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로 많은 학교를 다녔다.

이것은 우리 4형제가 비슷한 경우로 모두 오롯한 추억을 가지지 못한 슬픔이 있다. 그런데도 위로 형님과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바로 위 형님은 1977년 공군부사관에 입대하여 201011월 말까지 338개월 간 공군 원사로 근무하다 전역했고, 둘째인 나는 1974년 공군항공과학고에 입학하여 2002년 공군에서 원사로 전역하기까지 285개월간의 군 생활을 했다.

옛말에 아들은 아버지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면 나는 1991년 공군 56공수비행단 일원으로 걸프전에 참여했다. 베트남 파병 이후 근 20여 년 만의 해외파병이었다. 이런 것만 봐도 나는 어딜 내놔도 우리 아버지인 고 강종희 상사의 아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웃음).

2대 강신영 걸프전 참전 당시 다국적군 요청으로 태권도 시범 장면
2대 강신영 걸프전 참전 당시 다국적군 요청으로 태권도 시범 장면

Q 걸프전에 참여했다면 당시의 얘기를 듣고 싶다.

19908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하여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공군은 제56공수비행단인 비마부대를 창설하여 아랍에미리트의 알아인 기지에 파견했다.

1991219일부터 그해 49일까지 다국적군으로서 인원 및 화물 공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쟁터로 떠나게 됐다. 떠나기 며칠 전,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들렀다.

자초지종 얘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하필 니가 가냐며 펑펑 우셨고, 아버지는 군인이 전쟁터 가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라며 기꺼이 제 등을 두드려 주셨다.

제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형님은 나도 갈 수 있다면 가겠다고 해서 우리 가족들을 다시 놀라게 했다. 오죽했으면 제가 장남은 좀 참으시라며 말렸을까.

파병 후 나는 알아인기지에 주둔한 미군과 아랍에미레이트에 파병된 군인들에게 바쁜 일과를 틈타 태권도 시범단을 편성하여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귀국할 때까지 미군 태권도동호회 30여 명 장병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지도했다.

그것이 고국에 알려지면서 복귀 후 국위선양에 앞장선 공로로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표창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시 수상을 하기도 했다.

1,2,3대 모처럼 많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
1,2,3대 모처럼 많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

Q 같은 날 두 가지 상을 받기도 쉽지 않다. 궁금한 것은 선생 또한 군인이라면 이동이 상당했을 듯 싶은데.

군 자녀로 살아와서 그런지 이동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스스로 지원해서 이동했던 경우가 더 많았지만 식구들은 힘들었을 듯싶다.

공군본부 보안부대를 시작으로 서산시 대산읍 망일산파견대, 오산·강릉·서울·원주·대전·계룡대의 보안부대, 서울의 대테러 특수임무부대, 공군본부 기무부대, 광주 1전투비행단과 서산 20전투비행단의 정보처 등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많다.

대한민국이 좁다 좁다 하지만 지금처럼 손으로 꼽다 보면 아주 넓다. 아마도 공군부사관 중에 이렇게 전속 많이 다닌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더구나 주특기도 세 번이나 바꾸고 말이다.

나는 역마살이 끼어서 그런가 항상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새로운 것을 생산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손들고 떠나곤 했을까.

2대 4형제
2대 4형제

Q 요즘 군부대 자살 사건으로 공군이 도마 위에 놓여있다. 20전투비행단 퇴역 군인으로서 생각이 많을 듯 하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그럼에도 일반 시민들이 군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차갑다. 더구나 이번 사건이 터진 곳은 창설할 때부터 내가 근무했던 곳이다. 생각이 많다. 더구나 20전비는 대부분 후배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럽다.

앞으로는 더 이상 제2 3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겠다.

Q 요즘 서산 민항에 대해 말이 많다. 서산 기지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선생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다.

서산에 살고 있는 민간인으로서 봤을 때는 우리 지역에 민항이 건설된다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공본 기무부대 방산담당관으로 근무시, 각종 항공기 도입사업, 특히 F-16과 관련해 기종 선정시부터 간접적으로 관여했던 한 사람으로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우선 군의 작전적인 측면을 볼 때, 이곳은 서해 영공을 책임지는 공군 최정예 전투비행단이다. 만약 민항이 함께 운영이 된다면 능력이 우수한 자원들이기에 운영하는데 무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전투력 상실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서산기지는 서해 영공수호 임무와 더불어 초임 F-16 조종사들을 교육시키는 임무도 있으며, 모든 조종사들이 전투기량 향상을 위해 끊임없는 비행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민항기 이착륙으로 인하여 조종사 비행시간에 영향을 주어 원활한 비행교육에 지장이 있을 수 있고, 조종사들의 긴장도가 높아짐에 따른 사고 위험도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 있다. 전국 각지 비행장 주변 소음피해문제 때문에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민항기까지 계속 뜨고 내리면 소음피해로 고통을 받는 주민들에게 이중고를 안겨주는 셈이 된다고 본다.

어디 그뿐일까. 현재 20전비에서 근무하고 있는 관제사들 경우에도 민항기 이착륙에 따른 항로를 고려한 전투기 관제업무를 하는데 있어서 극도의 긴장감으로 업무 피로도는 높아질 것이며, 바다가 인접한 기지 특성상 기상변화에 따른 비행가능시간이 부족할 수 있는데 민항기까지 운영이 된다면 작전분야 실무자들도 비행스케줄 조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테고...

민간인 신분이지만 어쩔 수 없이 군인의 편에 서서 얘기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군 주둔지 미사일피격내용이 국내언론에 보도되자 수송기탑승 요원들의 불안감 증폭으로 비행 거부 움직임이 있어 함께 쿠웨이트 공항 비행 임무를 함께하며 설득하여 정상 임무 수행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군 주둔지 미사일피격내용이 국내언론에 보도되자 수송기탑승 요원들의 불안감 증폭으로 비행 거부 움직임이 있어 함께 쿠웨이트 공항 비행 임무를 함께하며 설득하여 정상 임무 수행을 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퇴직한 군인이지만 지나는 길에 얼룩무늬 군복만 봐도 가슴이 뛴다. 부모님부터 아들 조카에 이르기까지 3대가 만들어낸 1177개월이라는 영광의 숫자. 역사와 함께 흘러가신 아버님이 조금만 더 오래 사셨다면 가족 3대가 이뤄낸 병역명문집안의 영광을 보셨을 텐데 그 부분은 두고두고 안타깝다.

이 기회를 빌려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묵묵히 헌신하며 특별한 기적을 만들어내고 전사하신 어제의 용사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는 것이니 국방의 의무는 당연히 완수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내 아이의 아이가 또 그 아이의 아이가 대대손손 국가에 충성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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