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서산시대 최미향 부장
서산시대 최미향 부장

그날도 이놈의 비가 문제였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고, 그 빗소리에 반응하는 내 몸속 실핏줄 가닥가닥이 나를 일으켜 무작정 집을 나서게 했다. 어디 갈 데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가고자 하는 곳도 없었다.

한참을 달렸나 보다. 한서대학교 앞을 막 지나려는 순간, 한 남학생이 도로변에 서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히치하이크를 하려는 학생으로 보여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이 비를 맞으며 저리 간곡히 편승을 부탁할까측은한 마음과 함께 오지랖 넓은 대한민국 아줌마의 근성이 발동했다.

기차를 타야 하는데 가시는 곳까지만 태워주세요.” 차창 밖에서 사정하는 그 남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어차피 목적지도 없는데 좋은 일이나 하자고 생각하고 타라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 남학생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 빨리 타!”

울긋불긋 염색 머리에 귀걸이를 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학생 셋이 순식간에 차에 올랐다. “감사합니다.”라는데 그 말이 먼 곳에서 울리는 듯했다.

차에 오른 그들을 나는 밀라 요보 비치Milla Jovovich’ 주연의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좀비들처럼 바라봐야 했다. 더 웃기는 일은 조금 전 내 차를 세운 그 남학생은 바깥에서 유유히 손을 흔들고 서서 좀비(?)들에게 잘 가란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머리는 균열이 시작되는지 빠작빠작 소리가 들렸고, 귓전에선 물소리가 찰랑찰랑, 그리고 손아귀에는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뒷자리 남자들은 자신들의 모습 때문에 아무도 차를 세워주지 않을 걸 미리 예감하고 곱상하게 생긴 친구를 미끼로 쓴 거였다.

내가 미쳤지. 비 좋아하다가 참말로 인생 쫑 나게 생겼네. 우라질. 비는 무슨 얼어 죽을 비야. 그냥 방바닥에 누워 엑스레이나 찍을 걸.’ 혼자 자책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뒷자리에서는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얘기하는 것 같은데 내 귀에는 도통 들리지 않았다. 순간, ‘혹시 저 셋이서 내게 칼이라도 들이대고 강도질이라도 하려고 작당을 하나? 그렇담 난 그냥 핸들을 겪어 버려? 아니지, 일단 급브레이크를 밟고 무조건 차에서 뛰어내리는 거야. 그냥 막 뛰는 거지, 죽기 살기로.’

별의별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상상이 당장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착각에 심장이 마르기 시작했다.

30분을 달렸을까. 그 시간이 마치 내게는 3시간 이상 걸린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뒷자리 좀비들의 목적지인 삽교역 앞에 멈춰 섰다. 그제야 노랗게 뜬 표면의 돌기들이 순환을 시작하는 듯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좀비들이 나를 투명인간으로 보시해 주었군생각하며 기차역에 다 왔습니다.”라며 룸미러로 바라보자 고맙습니다. 오전에 공연이 있었는데 기차 시간 때문에. 저희가 히치할 때 머리 좀 썼는데 죄송합니다. 안 그러면 아무도 안 태워줄 것 같아서요.”

! 안도와 함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미안한 마음과 안도감에서 나오는 웃음으로 아니에요. 딱 아티스트 느낌이었는데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 많이 하

세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무리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사실, 진실은 늘 현상 너머에 있을 때가 더 많은 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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