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최근 출시되는 차량 엔진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연비를 높이기 위한 터보차저 방식이 주류인데, 기술적 완성도가 있음에도 소비자에게 세심한 주의를 요구한다. 엔진 성능을 이유로 고급휘발유를 사용하라는 제조사의 경고가 있다.

일반휘발유를 사용했을 경우, 엔진의 노킹 knocking’현상과 엔진손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고급휘발유의 고옥탄가가 노킹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가솔린은 두 종류의 탄화수소 화합물이 혼합된 액체 연료다. 화학명으로는 헵테인 heptane과 옥테인 octane이라는 물질이다.

옥탄가는 바로 옥테인 함유량을 말한다. 이 함유량이 연료의 신분을 결정한다. 정말 일반휘발유를 넣으면 안될까? 과연 연료 소비의 적정한 선은 무엇일까.

노킹 현상은 쉽게 말해 연료가 여러 원인으로 예정된 폭발 시점에서 벗어나며 마치 엔진을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용어다. 20세기 초 자동차의 기술 수준은 지금과 달랐다. 게다가 당시 석유 정제 기술에서 연료의 높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당시 노킹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킹 현상을 떠올리면 화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인물이 있다. 어떤 일이든 후회할 일은 만드는 데는 천부적 소질을 가진 인물이다. 1921년 미국 제너럴모터스에 근무하던 토머스 미즐리는 테트라에틸납 (CHCH)Pb이라는 화합물을 연구하던 중에 엔진의 노킹현상을 현저하게 억제할 수 있다는 물질임을 알아낸다.

당시는 대부분 소비재에 납을 사용했었던 시절이다. 결국 제너럴모터스와 화학기업인 듀폰, 그리고 스탠더드 오일 사는 테트라에틸납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합작회사까지 만든다. ‘에틸 Ethyl’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연료는 납첨가물이 들어간 유연휘발유다.

납 중독은 고대부터 인류사와 화학사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가볍게는 근육 경직에서, 심하면 뇌 기능에 장애를 유발해 시각이나 청각 신경을 잃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까지 한다. 로마의 멸망은 물론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의 난폭한 행동과 청력 상실은 납중독이 원인이다.

유연휘발유 판매는 1986년까지 이어졌고, 60여 년 동안 매년 약 5천 명가량 납에 의해 희생됐다. 물론 지금은 납이 없는 무연휘발유다. 분명 첨가된 연료의 배출 가스로 대기에 납 농도가 증가할 거라는 사실을 미즐리가 모를 리가 없었다. 분명 그에게도 과학자로서 적정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침묵하며 선을 넘었다. 블랙 골드로 성공의 단맛을 본 그는 또 다른 선을 넘는다. 이 일은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마저 파괴했다. 바로 클로로플루오로탄소 화합물인 CFC를 만든 장본인이다. 우리에겐 냉매인 프레온 가스로 알려진 물질이다.

이 물질도 납처럼 대가는 혹독했다.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와 비교해 만 배나 강한 프레온 가스는 자신 양의 3만 배가 넘는 양의 오존을 파괴할 수 있다. 두 물질은 완연 도화선이 되어 반세기 동안 대기에 뿌려졌고 결국 인류와 자연은 지난한 결산을 하는 중이다.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도 삶의 여정에서 무수한 유혹의 선을 만나거나 혹은 스스로 만든다. 최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자 택배와 배달도 많아졌다. 소비의 적정선이 무너지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난다. 물론 팬데믹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어땠었나.

집단적 의식을 공유하면 위험해지는 것이 있다. 이익도 손해도 공평해지면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나 하나쯤은 어떻게 해도 세상에 영향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남들은 안 하는데 나만 변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설마 지구에서 인간이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어떻게든 잘 될 거라는 생각은 확신이 아닌 낙관으로 포장된 소망일 뿐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조차 생각하려 들지 않게 된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거꾸로 뒤집힐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동안 우리는 끓는 솥 안으로 미끄러지고 있던 셈이다. 쌓여가는 쓰레기를 보며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원심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불안감은 분명해진다.

견디기 힘든 팬데믹에 정치, 경제적 혼돈마저 겹쳤다. 국가는 물론 개인의 평범한 삶마저 유지하기 힘든 시절이다. 그래서일까? 지구적 미래를 호소하는 문구 아래에서는 덤덤한 얼굴들만 보인다. 어쩌면 이 무심함이 이 전쟁 같은 시절을 버티는 데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적정선을 만들고 그 선을 지켜내야 한다. 선의善意의 선들을 모아야 미래가 보일테니까.

이제 연료사용의 적정선에 답을 해야할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일반 휘발유는 옥테인 비율이 90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게다가 최근 차량은 센서와 제어장치가 발달해 노킹현상이 드물다. 오히려 적정 주행 습관이나 엔진오일만 제 시기에 교환해도 차량 관리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더 적정한 선은 가급적 자동차를 덜 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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