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림만 스토리텔링】 충남 서산 가로림만 오지리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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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스토리텔링】 충남 서산 가로림만 오지리⑤
  • 김석원 시민기자
  • 승인 2021.05.2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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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리(奧地里)가 아닌 오지리(吾池里)랍니다

목화송이 같이 생겼다 하여 ‘솜섬’이라 불리고

옥녀 바위...그녀의 머리엔 붉은 해당화가 폈습니다
오지리 옥도
오지리 옥도
오지리 옥도 앞 백사장
오지리 옥도 앞 백사장
오지리 옥도 앞 옥녀바위
오지리 옥도 앞 옥녀바위

#오지리(吾池里)를 가다

웅도 탐사에 이어 오늘 가로림만 탐방 코스는 벌말입구~웅도 앞까지 오지리 마을 해안 트레킹이다.

얼마나 오지(奧地)였으면 마을 이름도 오지리라 했을까. 우스갯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지명 그대로 오지(奧地)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갯마을 서산 자체가 오지였는데 굳이 마을 이름을 그리 짓진 않았을 것이다.

오지리의 유래를 보면 오지리에는 검은곶이라는 자연마을이 검다는 뜻에서 까마귀오()’자를 썼다. 조선시대 이후 한결같이 오지리란 이름을 유지해 오고 있는 이 마을은 자염생산으로 명성을 떨치던 곳이다. 소금을 굽는 마을이란 뜻의 벌말(벗말, 筏村)로 불리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광복 후 천일제염의 염전개발로 자암 김동윤이란 인물이 충남 제일의 갑부로 등극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도 있다. 오지리는 마을 이름은 가로림만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는 독곶리(獨串里)와의 사이에 있는 갯벌이 하나의 거대한 웅덩이처럼 보였기에 이를 오지(웅덩이, 洿池)’라고 불리다가 후에 오(洿)자를 쉬운 오()자로 바꾸어 오지(吾池)’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다만 기록으로 보면 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서부터 1895년까지 오지리는 까마귀오()를 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나오()자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나오()자를 빗대 앞으로 오지리에 다섯 개의 못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해 한때 벌천포와 태안 이원면 내리를 연결하는 조력발전이 건설되면 갑문이 생기고 못이 형성되는 셈이니 옛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였으나 조력발전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대산 황금산~이원 만대간 연륙교 건설과 관련 벌천포를 기점으로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으니 그 결과를 기다려 볼 일이다.

옥녀바위에 핀 해당화
옥녀바위에 핀 해당화

#황금산 황룡전설의 주인공 박한량의 묘가 실제 있다

자연마을 낡은터의 자각산 기슭에는 밀양박씨 문중 묘역이 있는데 황금산 전설속 황룡과 청룡이 싸울 때 활을 쏘았다는 명궁수 박한량(박용제)의 묘가 있다.(황금산 전설 참조) 아니 그럼 황금산 전설이 그저 전설에 그치지 않는단 말인가? 묘 비석에는 분명 그 명궁수 박한량이 박용제라 기록하고 있다. 그 박용제는 밀양박씨 입향조 박순여의 현손(玄孫, 5세손)이다.

갈라진 옥녀바위
갈라진 옥녀바위

#바다 나팔꽃 갯메꽃이 활짝 핀 오지1

오지1리 통포염전 앞 해변에 바닷가 통개 모래밭에서 자라는 갯메꽃이 활짝 피어있다. 나팔꽃은 외래종이지만 메꽃은 토종이다. 갯메꽃은 이른 아침에 피어 해질 무렵이면 오므라들어 버리는 낮 얼굴꽃. 꽃이 아름다워서 미초(美草), 태양을 따라 도는 향일화라서 선화(旋花)라 부르기도 한다. 해안가의 모래밭이나 바위 틈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갯가에 나는 메꽃이란 뜻으로 갯메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메꽃은 남녀의 성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남자의 발기부전이나 여성의 불감증에 효과가 있다. 암튼 오지리 해변에 무슨 재미난 이야기 꺼리가 있을려나 기대를 갖는다.

통개 모래밭에 갯메꽃이 활짝 피어있다
통개 모래밭에 갯메꽃이 활짝 피어있다

#옥도는 섬의 생김새가 옥돌과 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사장으로 길게 이어진 해안을 따라 옥도를 갔다. 백사장 규모가 1Km는 족히 넘는 듯 싶다. 해변을 따라 우거진 솔숲이 울창하다. 마침 가로림만 갯벌 생물다양성 탐사를 온 중앙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한창 싱그러운 나이. 해맑은 미소들이 가로림만에 비치는 햇살을 닮았다.

바닷물과 바닷바람이 수만년을 빗고 다듬은 옥도 앞 바위들이 전시장에 펼쳐진 듯 하다. 그중 으뜸은 홀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10m를 훌쩍 넘는 바위.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이름을 물었다. ‘옥녀그렇다. 그녀의 이름은 옥녀 바위라 했다. 그녀의 머리엔 붉은 해당화가 꽃핀처럼 피어 있다.

그러고 보니 옥도도 아주 잘 생긴 더벅머리 총각을 닮았지 않은가. 옥도와 옥녀가 서로 바라보며 만들어진 바위들의 형태에 그 의미(?)를 더하니 웃음이 나왔다. 특이나 옥녀바위 다리가 벌어진 틈새에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돌아나가는 길 중앙고 학생들이 올려 놓은 듯한 돌탑이 앙증맞다. 그 위에 하나를 덧얹으며 학생들의 밝은 미래를 기도했다.

솜섬 주변 절벽
고창개 주변 절벽

#오지2리 가로림만과 접해 있는 고창개()(古倉浦)

옛날 세곡을 서울로 보내는 나라에서 운영하던 세곡창고가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팔봉면 구도항에서 지곡면 우도 대산읍 고창계, 오지리(벌천포)에 이르는 가로림만의 항로는 1000여년 넘게 군량미가 수송되던 항로였다.

여기에 1866년 고종3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조도 앞에 배를 정박하고 이곳으로 상륙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창개롤 들어가는 숲길이 한 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수백년은 될성 싶은 소나무 숲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오지2리는 바다로 돌출된 검은고지 지형으로 말 그대로 흙 색깔이 검다. 까마귀가 많이 서식하여 오지리가 되었다더니 오늘도 까마귀가 하늘을 울면서 날아가니 아직도 까마귀가 많이 서식하고 있나 보다.

고창개 해초바다숲은 잘피를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조성하고 서산시와 대산고등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 온다.

오지리 솜섬
오지리 솜섬

#목화송이 같이 생겼다 하여 솜섬

솜섬 앞바다 모래 수등이에는 잔점박이 물범이 가끔씩 올라와 오수를 즐기곤 한다. 솜섬은 만조 시 물에 떠 있는 모습이 목화송이 같이 생겼다하여 솜섬이라 불렸다. 솜섬 뒤에는 조도가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며 버티고 있다. 조도가 수많은 세월동안 파도에 깍이고 잘려나가면서 큰 바위 작은 바위들이 사방으로 펼쳐졌고, 그중 일부가 솜섬으로 분리된 것은 아닌지. 조도와 솜섬 사이 갯골이 깊다.

반면 오지2리 바닷물은 갯벌보다 바위가 많아 다른 지역보다 맑다. 벌말 쪽으로 해변을 따라 들어가니 해안이 90도 깍아 지른 절벽으로 병풍을 치고 있다. 주변이 해변도 쏟아져 내린 크고 작은 바위와 돌뿐이다. 지금도 해식작용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듯 싶다. 무너져 내리는 산 등성에 소나무 세 그루가 서로의 뿌리를 얽어매 버티 듯 견디고 있다.


돌아나오는 길. 젊은이들이 바다낚시를 즐기러 온 것 같다. 그중 한 여성분의 릴낚시 솜씨가 프로급이다. 몇 년전에 비해 가로림만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연령층도 무척 젊다. 코로나19 이후 확산 속도가 더 빠르게 오르는 것 같다.

다만, 해변을 따라 적지 않은 난개발이 진행되는 모습들도 보인다. 뷰가 좋은 곳은 더욱 심하다. 접근로가 막히고, 많은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 가로림만 해양정원을 추진하는 행정당국의 발빠른 조치가 없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듯 싶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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