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 성지 성당...기행과 순례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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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성지 성당...기행과 순례사이
  • 서산시대
  • 승인 2021.05.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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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⑩
몸을 낮추고 품을 넓힌 건축물. 하늘과 맞닿기보다 사람을 보듬고자 하는 모습이다.
몸을 낮추고 품을 넓힌 건축물. 하늘과 맞닿기보다 사람을 보듬고자 하는 모습이다.
외 모임의 공간. 같은 목적의 사람이 모이면 그 곳은 얼마든지 특화된 장소성을 가진다.
야외 모임의 공간. 같은 목적의 사람이 모이면 그 곳은 얼마든지 특화된 장소성을 가진다.

날씨부터 완벽하다. 냉랭한 봄비가 부슬거리며 내려앉고, 가끔씩 지나는 싸늘한 바람은 정신을 씻어 정화한다. 뭉근하게 젖은 공기와, 물을 잔뜩 품어 처연한 석재 구조물은 어깨를 짖누르는 듯 묵직한 느낌이다. 우산으로 부스러지는 빗방울 소리와, 그 비가 잎사귀를 훑어 내리는 화이트 노이즈 만이 잔잔히 흐른다. 혹여 정숙하라는 안내문이 없었더라도 감히 큰 소리를 낼 수 없는 T.P.O¹ 이다.

이제는 새 생명의 탄생보다 부고 소식이 더 잦게 등장하는 인생의 노선으로 접어 들었다. 죽음은 다른 경험과 달리 전혀 익숙해지지 않고, 오히려 고인을 떠올릴 때의 먹먹함은 갈수록 더 예리하게 감정 구석구석을 후벼댄다. 얼마 전 겪은 지인과의 이별이, 수 년이 지났어도 코 끝이 징징한 가족의 이별이 마음을 눅진하고 경건하게 한다.

슬픔이 질퍽이는 땅에 걸음을 내딛으니, 마음까지 저릿하다. 새 생명으로 태어난 푸릇한 초록을 거닐다가도, 이따금 멈춰서서 켜켜히 쌓여 온 영성(靈性)을 가만히 기려본다. 측은하고 애잔한 마음이 감정의 한계를 넘어서고, 한동안 깊은 한숨을 들이켜 본다.

아. 한 모금 음미한 공기는 종일 내린 비로 반짝이도록 청아하다. 그제서야 들리는 비를 피하는 새들의 지저귐에서 자못 생기가 돈다. 이 곳은 누군가가 슬프기만을 바라는 장소가 아니었다. 순교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능동을 요하고자, 아프고 깊은 시간을 가득차게 담아 두었다.

잠시 실내로 들어선다. 다수의 종교 건축물이 하늘의 신과 맞닿고 싶은 욕망으로 마천루를 꿈꾸지만, 야트막한 모양새로 한껏 몸을 낮춘 공간은 참으로 적절하다. 살포시 안아주는 곳에서 잠시 토닥임을 받고서야 나의 소중한 안정감을 돌려 받았다.

혹여나 놓고 가는 마음 조각이 있을까 찬찬히 추스려본다. 이 자리에서 기억한 모든 이들이시여 부디 평안 하소서. 희생과 탄압을 초연하게 담아서, 추모와 기도를 부르는 공간.

'해미 성지 성당'이다.


**각주¹ : 패션업계 용어로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을 세분화하여 알맞게 의복을 착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해미_성지_성당 #성당건축물 #순교_기억 #아프고_깊은_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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