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웅도(熊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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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웅도(熊島)
  • 김영선 시민기자
  • 승인 2021.05.1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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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녀의 신화가 깃든 웅계(熊系) 후손들이 정착한 '신성한 섬'

【가로림만 스토리텔링】 충남 서산 가로림만 웅도(熊島)④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아름다운 섬 웅도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아름다운 섬 웅도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웅도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이름까지도 정다운 곰섬, 웅도(熊島). 웅도리는 본래 서산군 지곡면 관할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산면에 편입되었다. 주민 생활의 측면에서 썰물 때는 걸어서 나갈 수 있는 대산면으로의 편입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9112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대산면이 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서산군 대산읍 웅도리가 되었다. 1995년 서산군과 서산시의 통합에 따라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가 되었다.

지난 밤 물때를 확인하고 오전 길을 서둘렀다. 간조에 1시간 못 미친 시간. 잿빛 갯벌이 넓게 펼쳐지고 이슬비가 안개처럼 퍼진다. 섬과 뭍 사이를 연결한 작은 유두교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바다 물결이 사라진 갯벌은 눈이 부셨고, 바다 위 물안개는 몽환적이다. 그렇게 웅도는 나를 품에 안아줬다.

4월이면 바지락을 캐기 위해 소달구지를 타고 뻘로 나가던 모습은 사라졌다. 6.25 전쟁 때 인민군도 들어오지 않았던 섬, 웅도. 1984년 대로1리 유두머리와 모개섬을 잇는 제방이 만들어졌다. 모개섬과 웅도를 잇는 작은 유두교는 전에는 징검다리였다.

돌살 형식으로 큰 돌을 쌓아 물때에 맞춰 사람이 통행하던 때, 마을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를 당한 적도 있다.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웅도라 불리는 이유

어떤 이는 웅도에 사람이 처음 들어와 산 것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자점(1588~1651)이 귀향을 오면서부터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와 같다고 하여 웅도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김자점 이름이 어떤 경로로 웅도와 연관 지어졌는지 알 수 없다. 김자점은 웅도가 아닌 전남 광양현(光陽縣)에 유배되었다.(효종실록 7, 효정 2127일 기록) 대산읍지에서도 웅도리 김해김씨는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로 입향조 김치양(1540년생)1498년 무오사화에 연유된 김일손의 후손으로 가문에 화를 입게 되어 1560년 웅도리에 낙향하여 터를 잡았다고 기술하고 있지 않은가. 400년 되었음직한 반송은 누가 심었을까?

아마도 양반이면 한 번은 심어 가꾼다는 반송. 김해김씨 후손중 한 분이 아니였을까.

웅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먼 옛날 선사시대부터다. 지금도 장골과 큰골에 원형을 보전하고 있는 패총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아주 먼 옛날, 삼국이 생기기 전 고조선이 있었다. 그들은 단군의 웅녀탄생 설(熊女誕生 說)과 연계되는 웅계(熊系)의 혈통을 가진 집단이다.

그들이 한반도를 따라 남하하면서 곳곳에 이동하는 곳마다 웅계(熊系) 지명을 남겼다. 전국에 웅계(熊系) 지명이 있는 곳은 45개소이며 충청도에는 5개소가 있다. 충북 영동에 웅북리(熊北里), 충남 서산에 웅도리(熊島里). 보령에 웅천면(熊川面). 공주 웅진리(熊津里). 신웅리(新熊里) 등이다. 그들의 후손들이 바다를 통해 남하 하면서 가로림만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웅도(熊島)라는 섬 이름 자체도 웅녀의 신화에 의한 웅계(熊系) 후손들이 정착하면서 부쳐진 이름은 아닐까. 일제는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자 1911년부터 18년까지 9년 간에 걸쳐 조선토지조사사업(朝鮮地誌資料)을 실시한다. 1918년에 편찬하여 1919년에 발간한 이 자료에 웅도리(熊島里)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섬의 형태가 곰과 같이 생겼다 하여 웅도(熊島)가 되었고 마을도 웅도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지도서나 고지도를 보면 이미 조선시대에도 웅도라 불리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400년 된 노거수
400년 된 노거수

#웅도 제천단 흔적을 찾아

웅도에는 웅계(熊系)의 혈통을 가진 집단이 제단을 설치하고 천제를 지내던 곳이 있다는 설화가 있다. 해신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풍어를 기리 당제가 아닌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 지리산 노고단, 태백산 천황단처럼 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천단(祭天壇)을 말한다.

단군왕검 51(기원전 2283) 혈구(강화도)에 삼랑성(정족산성)을 짓고 제천단을 마리산에 쌓게 했다, 참성단이 그것이다.한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 기록이다.

웅도 당제는 음력 정월에 택일(擇日)하여 동편말과 큰말 사이에 있는 당산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였다. 웅도 당제는 경문을 읽는 경쟁이(법사)가 주관했다. 마을에서는 제비(祭費, 제사비용)를 집집마다 추렴하여 경쟁이에게 준다. 경쟁이는 이것으로 제물을 직접 구입하였다. 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에 초상이나 출산 등의 부정이 발생하면 그해에는 당제를 지내지 않는다. 제를 지내기 전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큰 샘을 청소하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덮어 둔다. 우물 주위에 흰 종이를 끼운 금줄을 치고 그 앞에 황토 세 무더기를 양쪽으로 놓는다. 우물은 제의가 끝난 다음에 사용할 수 있다.

웅도 당제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985년 이후에 당제가 단절되고 말았다.

바람의 언덕을 올랐다. 당산 정상을 넘어가는 길이다. 그 정상에 돌로 쌓은 제단이 있고 가로 80, 세로 30정도의 판석이 놓여 있었다. 그를 확인하고 싶었다.

바람 한 점 없이 가랑비가 몇방울씩 떨어지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당산 우거진 소나무의 그림자에 울창한 숲길이 더욱 짙었다. 오르고 또 오르는 길. 정상의 시원한 풍경은 나타나지 않는다. 정상에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초라한 돌 제단만이 지난 세월의 기억을 억지로 소환하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갯벌은, 땅이며 하늘이다

큰골에 매가 많이 서식했다는 매섬으로 가는 길 갯벌이 새카맣게 빛난다. 한 때 20여 마리의 매가 있었다고 한다. 갯벌은 땅이며 하늘이다. 조도(, 새섬) 앞 둥둥바위가 사람을 희롱한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18662월에 상선을 타고 이곳 조도 앞에 배를 정박하고 오지리 고창개에 내렸다가 갔다는 역사적인 곳이다. 썰물이 지면, 사람들은 갯벌 위로 난 길을 따라 굴을 따러 간다. 바다가 갯벌을 내주는 시간 동안 섬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다.

웅도는 매섬, 조도(새섬) 둘을 품고 있다. 봄에는 바지락, 여름엔 낙지, 가을엔 다시 바지락을 주민들에게 선사한다.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여우골 바위까지 걸어갔다. 이슬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날 웅도 해변 구름 위에 떠 있다는 둥둥바위는 새끼 갈매기 쉼터, 갯벌을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들이 여우가 떠난 여우골 바위에서 술래놀이를 하고 있다.

이처럼 억만년 세월이 그려 놓은 수 많은 사연의 흔적. 어느 화가의 붓칠이 저리 정교하고 아름다울까. 오늘은, 밀물과 썰물이 내려놓고 간 긴 사연에 내 발자욱도 남겨 본다.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하루에 두 번, 바다가 열려야 출입을 허락하는 섬

#웅도 여우골짜기 바위

여우가 천년을 살면 매구가 된다고 한다.

어느 날 인근 황금산 황룡이 서해 조기떼를 불러 모으려 하늘에 비구름을 몰아 오고 있을 때였다. 이때 웅도의 북편에 위치한 나지막한 불능산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던 매구가 그것을 보고 황룡에게 노란 구렁이가 지랄을 한다며 조롱을 퍼부었다.

이 매구는 천년 묶은 여우로 마을을 돌면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왔었다. 매구의 조롱에 화가 난 황룡은 하늘로 올라가려다 말고 돌아 내려와 불능산으로 독기와 불을 뿜었다.

황룡이 매구와의 싸움 중에 큰 꼬리로 바다를 내리치는 바람에 웅도 끝자락이 떨어져 모개섬이 되었고, 이에 깜짝 놀란 매구는 불능산 여우굴에서 나와 웅도 앞에 있는 섬으로 도망쳤다.

한바탕 난리가 나고 나서 마을 사람들은 황룡을 달래기 위해 당산 꼭대기에 천제단을 쌓고 고사를 지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에 감동한 황룡은 하늘로 올라가 번개와 비바람으로 조화를 부려 조기떼를 몰아오고, 매구가 도망친 섬은 바위로 섬을 돌려 쌓아 매구가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은 여우가 도망친 섬을 매섬이라 불렀다 하며, 불능산은 그때부터 묘를 쓰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묘를 쓰지 않았다. 지금도 불능산 아래 매구가 살던 여우골짜기엔 매구가 살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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