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읽기】 비행산수...삶의 풍경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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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읽기】 비행산수...삶의 풍경을 읽다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1.05.18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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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 우리 국토의 환상적인 재구성

자유를 빼앗긴 대한민국 모든 분들에게 권장도서로 추천

「2015년 4월 유럽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프라하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시베리아를 지나 인천을 향해 날았다. 졸다 깨다 하며 틈틈이 창문 너머 풍경을 살폈다. 간간이 도시들이 어둠속을 반짝이며 스쳐 갔다.

동이 터 오자 날개 아래로 대지가 뼈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몽롱한 와중에 생각 하나가 벼락처럼 머리를 때렸다. 나는 지금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구나. 이런 시점으로 산하를 그리면 어떨까. 마침 작업해오던 펜화에서 나만의 색깔을 찾던 중이었다.」

위 글은 저자 안충기 기자가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이란 대목 중 일부분이다. 그림과 함께 지리와 역사,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로 담은 신간 ‘비행산수’의 저자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화가며, 32년 동안 여전히 기자직을 수행하는 20년째 주말 농장지기다.

지역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듬뿍 스며든 이번 책 ‘비행산수’는 1부 바다와 도시, 2부 내륙 도시, 3부 여러 개로 쪼개어 그린 서울, 4부 대륙을 배치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우리나라 32개 도시를 마치 벽돌을 쌓듯 차곡차곡 그려 담은 이번 펜화 작품집 ‘비행산수’. 독자들은 그림을 통해 새의 눈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글을 통해 세밀한 선 사이를 누비며 사람들의 삶을 만날 것이다.

어쩌면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을 만나는 것으로도 마치 전국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 것 같은 ‘비행산수’. 전쟁과 수탈의 아픔, 생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땅에 기대어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저자 안충기 기자는 “엉덩이가 반, 상상력이 반”이라며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자료를 모은 후 직접 현지 취재를 통해 숨을 불었다고 한다. 특히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이와 함께 다니며 지리와 환경, 사람살이를 스케치하고 그 속에 사람의 마음을 담았다.

단순히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을 보이는 대로만 그리지는 않았다. ‘서울 물길 시리즈’에서는 시공간을 뛰어넘은 ‘물길’이 등장하기도 했다. “장어가 서해에서 한강을 지나고 청계천을 거쳐 수성동 계곡까지 올라가는 생각을 해요. 옛날에는 이어져 있었잖아요”라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황선도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 서울에 흘렀던 물길을 복원하여 펜화로 그려 넣기도 했다.

훗날 복원된 물길과 더불어 살아갈 시민들이 어떤 삶의 풍경을 만들어낼지 상상하며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생태도시 서울의 모습도 함께 담아냈다. 이것은 우리 땅의 세밀한 모습이자, 치열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저자만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새로운 세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자 안충기 기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32년 차 기자다. 현재는 중앙일보 아트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사실 그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는 한 쪽 귀와, 시도 때도 없이 양 쪽 귀에 찾아오는 ‘이명’이라는 핸디캡이 있었다.

점차 심해지는 이명 증상으로 힘겨워하던 중, 우연히 한국 펜화의 거장인 고 김영택 화백의 그림을 신문 지면에 싣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됐다. 고 김영택 화백의 인사동 화실을 드나들며 어깨 너머로 훔쳐본 펜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주요 문화재들과 풍경을 그리며 펜화 드로잉을 연습했고, 유럽 출장을 다녀오던 길에 비행기에서 프라하의 전경을 보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로서, 펜화가로서 자신만의 주제를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이후로는 잠과 시간을 아껴가며 방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렸다. ‘강북’은 무려 4년 6개월에 걸쳐 완성한 그림이었다. 그 세밀함과 압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먼동이 틀 때까지 화판 앞에서 밤을 새우고, 펜을 잡은 오른손 중지에서는 철마다 굳은살이 떨어져 나갔다. 몰입하여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걱정과 고민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했다. 어느 순간 이명 소리도 점차 줄어들었고, 고통의 정도도 옅어져갔다. 저자는 펜과 그림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말한다.

‘비행산수’는 그림을 그리며 저자가 느낀 짧은 단상들도 곳곳에 부록처럼 담았다. 그림을 통해 치유 받은 저자 안충기 기자의 성장 이야기는 따뜻한 재미와 함께 부지런한 감동을 준다.

“이번 책은 가욋일이었다. 신문사 데스크 일을 하며 시간을 짜내 취재하고 썼다. 그저 좋아서 한 일이었다. 마감은 자비가 없어 늘 시간에 쫓겼다. 취재 시간을 아끼려 가까운 도시를 묶어 다녔다. 태안과 서산은 당일치기로, 여수와 순천은 1박2일로 다녀오는 식이었다.

하루에 12~14시간 그림을 그렸다. 두어 시간 꼼짝 않고 일하면 손가락이 굳어버린다. 나중에는 10분도 펜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저자 안충기 기자의 ‘비행산수’는 코로나로 자유를 빼앗긴 대한민국 모든 분들에게 권장도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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