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의 소통솔루션

방송인/소통전문가/한국가정문화연구소 소장
방송인/소통전문가/한국가정문화연구소 소장

성인, 혹은 어른의 정의는 무엇인가? 참 답변하기 힘든 문제다. 자기 밥벌이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건사하는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사전적 의미는 만 20세 이상의 남녀라지만 그것으로는 성인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똑같이 밥벌이를 하지만 60대는 40대가 아이로 보이고, 40대는 30대가 아이처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성인이란 말은 어느 정도 사회적 존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내포한다.

존중을 받으려면 단순히 자신의 밥벌이만 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요구되는데 나는 그것을 가족이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를 훌륭히 지켜나가는 능력이라 본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거의 모두 나이만 먹은 어린아이다.

가족이란 작은 사회를 훌륭히 일궈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구성원 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대화하고 소통한다면 그 가족은 어지간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반면 경제적으로 윤택하더라도 소통이 안 된다면 그들은 한 지붕 아래 사는 동거인일 뿐이

. 근데 이 소통이란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과 아무리 소통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고 한다. 노력해도 잘 안 되니 얼마 못 가서 포기하고 결국 무언가족(無言家族)’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가족 안에는 반드시 풀지 못한 앙금이 있다.

내가 알고 지내던 한 부부 이야기를 해보겠다. 남편이 지방 발령이 나면서 그들은 예기치 않게 주말부부가 되었다. 당시 그 부부의 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던 중 일이 터졌다.

아들이 아내에게 버릇없이 구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을 한 대 때린 것이다. 그날 이후 아들은 아버지와 눈도 주치지 않았고, 아버지와 하는 어떤 행위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외식을 하자” “영화를 보자고 해도 싫다고 했으며, 걸핏하면 집에 늦게 들어왔다.

주말에 아버지가 집에 오면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가거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때는 다 그런 거려니, 그러다 말겠지 하고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세월이 흘러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부자가 서로 대화를 안한 지 대략 5년이 흐른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아버지는 아이를 밖으로 불러서 대화를 시도했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불만이 뭔지 말하라고 해도 아들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아버지는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5년 동안 묵혀두었던 사과를 한 것이다.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말 없이 듣고 있던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미 아버지만큼 덩치가 커진 아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 이후 부자는 관계를 회복했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될수록 빨리, 망설이지 말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게 쉽지 않다. 사과도 해본 사람, 혹은 많이 받아본 사람이 잘한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기성세대가 아이였을 때, 그러니까 60~70년대의 아버지들은 사과와 상관없는 존재였다. 당시 어른들은 사과란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잘못하면 혼나고 벌을 서고 했지만, 부모는 잘못한 것이 밝혀져도 어물쩍 웃음으로 넘어가거나 오히려 더 화를 내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해도 자기 자식에게 순순히 사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했다. 사과하는 것과 권위가 없어지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착각하지 말자. 이미 이전 시대에서 누리던 부모의 일방적 권위는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그 권위가 있던 자리에 이해와 협조가 자리 잡고 있다. 사과를 하려면 싸움을 할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깟 사과쯤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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