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성년이 되거나 직계존속이 사망하면 수급권 박탈

【깊은 산속 옹달샘】 출발선부터 취약계층인 다문화가구 ⑤

농촌과 다문화가정 일러스트
농촌과 다문화가정 일러스트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출생아 수는 18,000여 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5.9%를 차지한다. 다문화가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상적 차별과 소외는 심화되는 등 다문화수용성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상황에서 일부 자치단체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다문화가족이 제외되는 등 제도적인 사각지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문화가족 대부분에 해당하는 결혼이민자에 대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은 미성년 자녀를 임신 또는 양육하거나 한국 국적의 직계존속을 부양하는 경우에만 인정되고, 자녀가 성년이 되거나 직계존속이 사망하면 수급권이 박탈되는 등 사각지대가 아직도 존재한다.

# 출발선에서부터 빈곤에 빠질 위험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자란 사람이 한국으로 건너와 뿌리를 내리면서 겪는 빈곤, 즉 다문화 가구의 문제는 정부 통계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외국인 여성과 한국인 남성의 국제결혼으로 형성된 다문화 가구의 상당수는 출발선에서부터 빈곤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이주여성 권익 옹호 활동을 이끌어온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1980년대 말부터 이뤄진 결혼이민의 경우 저소득층끼리의 결혼은 아니었다면서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남성이 해외에서 배우자를 구하기 시작했고 이 경우 (배우자가) 국내로 오자마자 취약계층에 들어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여성도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출신 국가에서 직업 훈련이나 사회활동을 경험하지 않고 이민한 사례가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왕 회장은 구직하는 결혼이주여성을 세 분류로 구분했다. 첫째는 처우를 따지기보다 일단 공장이나 식당에 취직해 적극적으로 일하는 부류로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지만 동향에서 온 동료가 많아 직장생활에 무리가 없다. 둘째는 고학력자이거나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부류로 한국어 능력이 비교적 뛰어나 다양한 직종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다. 마지막은 한국어 능력이 일정 부분 있지만 특별한 기술은 없거나 미약하고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부류다. 왕 회장은 정부가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통해 마련한 일자리인 통번역사의 경우, 실제로 통번역 업무를 수행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얼마 안 된다면서 정부가 억지로 만든 일자리인 셈인데 이런 자리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사업을 접으면 그 뒤부터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빈곤 문제를 겪는 다문화 가구를 구제하기 위한 뾰족한 수는 없다고 왕 회장은 잘라 말했다. 그는 결혼이민자가 동사무소에 가 어떤 지원을 받을 때 다문화 가구라서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대부분 생활 자체가 안 되는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왕 회장은 정부가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정책을 내놓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결혼이민자에게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다문화 가구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서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근본적 해법은 최저 수준의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 다문화가족, 농업·농촌의 새로운 미래

지난해 신혼부부 열 쌍 중 한 쌍은 국제결혼이었다. 그중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혼인한 비율은 20.9%. 다섯 가정중 한 가정이 다문화다. 전체 국제결혼 비율의 두 배에 달한다.

결혼으로 농촌에 유입된 이민 여성들은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문화가족 자녀들은 농촌에 활기를 더하고 있는 것. 지난해 전체 학생 수는 감소세였지만 초·중등 다문화가족 학생 수는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137000여 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변화는 다문화가족 정책이 우리 농업정책에서 중요한 과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55일 어린이날 한 다문화 가정을 방문했다. 요즘 농사일이 바쁜 시골이라 어른들은 안계시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연(가명, 4)이 테레비젼을 보다가 필자를 보고 반갑게 뛰어나왔다.

선물상자를 받아들고 좋아라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선물 상자를 열어 과자에 초코파이, 라면을 보자 엄마를 보러 가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소연이가 좋아하는 모습에 감사하다는 눈인사를 하는 소연이 엄마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우리나라 여자들 같으면 아직 결혼생각도 못할 나이에 먼 이국땅에 와서 열심히 살아가며 힘든 농사일을 해내는 젊은 소연이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흙 묻은 손으로 간식을 건네며, “바쁘지 않을 때 오시면 커피라도 타드릴텐데요라며 띄엄띄엄 서툰 인사를 하는 소연이 엄마와 배꼽인사를 예쁘게 하는 소연이의 모습에 돌아오는 길이 마냥 행복했다.

혁이와 준이(가명)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다. 혁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니까 한국으로 시집을 온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동네서 착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어디서 저런 복덩이가 들어 왔는지...” 동네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아이들 키우고 농사일 하며 틈나는 대로 동네 일에도 팔을 걷어 부친다. 동네 경로당 청소도 도맡아서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사내 아이만 둘이다 보니 개구쟁이 짓이 벌어지곤 해서 어떤 때는 대문을 밖에서 잠그고 일을 하러 갈 때도 있다. 후원 물품도 대문앞에 두고 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전화로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하면 아니에요.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해요고마워 한다. 우리네 옛날 순박함이 물씬 묻어난다.

시골 동네 슈퍼도 없고 바쁠 땐 애들 간식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시골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들이 사라진 탓에 요즘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일로 바쁘면 봉사자가 가져다주는 후원물품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온 착하고 부지런한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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