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57

유치원 꽃잎반에 다니는 7살 다은이
유치원 꽃잎반에 다니는 7살 다은이

다은이가 유치원 잎새반에서 꽃잎반으로 진급을 한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상담 전화를 했다. 학부모 상담주간이라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었다면 굳이 통화할 이유가 없을 만큼 다은이는 유치원 2년차에 충분히 적응한 상태였다.

그러나 선생님과 1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누면서 보지 못하였으므로 짐작만 했던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이가 주산을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도.

머리로 숫자 계산하고 주판 놓는 걸 좋아하는 김다은 어린이
머리로 숫자 계산하고 주판 놓는 걸 좋아하는 김다은 어린이

다은이가 주산 수업을 아주 좋아해요. 머리로 숫자 계산하고 주판 놓는 걸 좋아해서 주산시간에 적극적이예요. 주산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다은이 칭찬을 많이 해주시니 계산하고 정답 맞추는 것을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다은이한테도 무슨 공부가 제일 재밌냐고 물어보니 주산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가보다 귀 기울여 듣기만 하면 될 것을 나는 실없이 대답을 하고 말았다.

나 닮았나? 제가 수학을 좋아했거든요.”

산수라는 과목에 퐁당 빠질 때가 언제였던가. 농사일로 바쁘신 부모님과 일찍이 외지로 나간 형제자매들 속에서 내 공부를 도와줄 이는 전무했던 시절, 다만 두꺼운 전과 하나가 유일한 가정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던 시기였다.

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는 산수는 정답을 맞추는 재미와 쾌감을 안겨주는 과목이었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하소연 할 곳 없는 답답함에 눈물을 흘려가며 빈 종이에 계산을 반복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나는 수학과 친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시험을 칠 때마다 한 두 문제씩은 어김없이 (능력이나 실수 두 가지 면에서) 틀리고야 말았던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수학교육학과로의 진학을 꿈꾸며 고려대학교 캠퍼스를 밟아보았다. 둘째 언니와 형부가 어린 동생이자 처제인 나를 데리고 경주에서 서울까지, 본인들도 낯설었을 대도시의 대학교를 찾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교정에는 코스모스 졸업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 중 한명의 학사모를 빌려 본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데 고 1때 친했던 친구들이 전부 인문계를 선택했을 때 나는 홀로 외로이 자연계를 고집했다. 암기가 많은 역사와 지리에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자연계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수학이었다. 수학경시대회에 나갈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지만 수학이 좋았다.

그런 나에게 고비가 찾아왔다. 3이 되어 수학를 배우면서 외워야 할 공식들이 여럿 등장했을 때였다. 그것들을 암기해야 다음 진도로 나갈 수 있는데 그 기본적인 것이 대체 외워지지를 않았다. ‘암기가 싫다, 암기를 못 한다는 자기암시 앞에서는 작은 극복조차 멀고도 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수학을 좋아해 자연계로 진학했지만 수학포기자가 되어 인문계로 전환했을 때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 따라 인문계로 갈 걸. 오랜 속담에는 이유가 있는데 내가 너무 경솔 했나수학교육학과 진학의 꿈을 접고 좌절 속에서 인문계를 선택해 치른 수능시험, 수학과목에서 나는 역시나 유감없이 한 문제를 틀리고야 말았다.

나름의 서사를 지닌 과거 앞에서, 수학을 좋아한다는 문장이 이렇게 쉽게 나올 일인가. 나는 정녕 수학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산수를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그때 내가 닿지 못했던 수학이라는 학문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 수학을 잘 하고 못 하고는 일상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내 인생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주판으로 시작된 산수와 수학의 경계가 7살 어린 다은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뭇 궁금하다.
주판으로 시작된 산수와 수학의 경계가 7살 어린 다은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사뭇 궁금하다.

흥미나 단순한 관심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장난감처럼 생긴 주판에 흥미를 가진 어린 다은이가 선생님의 칭찬에 힘을 내어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나의 어린 시절이 교차된다. 주판으로 시작된 산수와 수학이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껏 기대되는 바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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