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 ⑨

리조트에서 바라 본 워터파크의 야경. 놀이와 휴식은 한 몸일때 추억의 효과가 더 막강하다.
리조트에서 바라 본 워터파크의 야경. 놀이와 휴식은 한 몸일때 추억의 효과가 더 막강하다.

첫 직장 입사를 위해 총 다섯 곳의 설계 사무소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동시에 여러 회사로 지원하고 실기까지 준비하려다 보니, 모든 사무소의 전체 커리어를 확인하기에는 버거운 면이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입사지원서 양식을 다운로드 받으며, 대표 작품을 훑거나 해당 사무소에 재직중인 선배들에게 연락하여 사내에서의 작업 성향 정도를 파악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준비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지원한 곳 중 마지막 발표를 기다리던 중에 유일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첫 직장은 내 기준에서 기품있고 유명한 랜드마크를 다수 설계한 유서깊은 설계사무소 였다. 실제로 인트라넷에서 접근 가능했던 그간의 업적은 작은중간의대형의(S, M, L) 프로젝트가 즐비했고, 수 많은 관공서와 전국민이 알만한 유명 건축물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첫 인상은 좀 많이 점잖았다.

학부생의 특징이긴 하지만, 나의 설계작은 유독 실험적 성향이 강하고 기획에 대한 흥미가 높은 작업 위주였다. 포트폴리오 내용은 공상과학에 가까웠으며, 입사 실기시험에서도 실무와는 거리감이 큰 결과물로 발표 했었다. 그런 내가 우직한 관우 같은 이미지의 회사에 합격하게 되어 의외의 결과라는 생각까지 가졌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반전의 작품 하나가 나를 단번에 수긍하게 하였다. 선배들이 신입사원의 열정과 패기에 기름을 부어 주고자, 애사심 부흥책을 쓰던 중에 광화문 광장 앞의 위풍당당한 '세종문화회관'보다 더욱 밝고 격앙된 목소리로 설명해 주신 작품은 예상밖에도 용인의 대형 워터파크였다.

수년이 지난 프로젝트 였음에도, 당시에 얼마나 재미있고 신났었는지를 설명하는 중에 팅커벨과 피터팬이 날아 다니는 것 마냥 분위기가 둥둥 떠올랐었다. 회사 업무에 다이나믹 함이 부족할 것만 같았던 우려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선배들의 목표는 쉽게 달성되었다. 애사심 충전을 넘어서, 데이트를 앞둔 듯 살짝 설렜었다.

이제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전까지는 상상과 모험의 나라를 구성해 내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라고 생각 못했었다. 각종 놀이기구의 기술적인 분야와 휘황찬란한 데코레이션을 조합하여 전체적인 마스터 플랜을 기획하는 곳이 건물을 짓는 설계 사무소였다니, 나만 몰랐던 점이 아니기를 바래 본다. 알면 알수록 건축이라는 분야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교양과 예능을 넘나드는, 흡사 힘과 지략에 모두 능한 장수였다.

그러나 설레였던 것이 무색하게도 재직기간 동안 꿈과 상상을 풀어 낼 행운의 기회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요즘의 테마파크는 시설을 전담하는 설계팀이 따로 있을만큼 전문화된 분야로 나름의 입지를 굳게 다졌다. 더 나아가 테마파크 사업의 초중기에 건축사 사무소에 설계를 의뢰 했던것을 반대로 거슬러, 이제는 건설사에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테마파크 설계팀에 맡겨서 집 앞 놀이공원을 만들기도 한다.

'잃어버린 계곡'이 있는 인근 아파트는, 동네 어린이들에게 '놀이터 원정'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킬 만큼 최고의 인기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네버랜드를 현실로 선사하는 것은 철저히 건축가의 몫이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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