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많은 양이 많은 일을 한다
상태바
【전문가 칼럼】 많은 양이 많은 일을 한다
  • 서산시대
  • 승인 2021.05.02 2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군복무를 수행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은 누구나 소총을 다뤘을 것이다. 소총에는 정확한 사격을 위해 가늠자와 가늠쇠라는 장치가 있다. 목표물을 총구에 있는 가늠자 안에 넣고 눈앞의 가늠쇠를 움직여 목표와 정렬해야 정확한 사격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 장치가 야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늠쇠에는 흔히 야광이라는 물질이 칠해져 있다. 정확하게는 형광 혹은 인광 물질이다.

형광이나 인광 물질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어야만 물질 안에 있는 전자들이 들뜨고 들뜬 전자가 다시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며 흡수한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한다. 하지만 소총에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어떠한 장치도 없다. 이렇게 에너지를 공급하기 어려운 곳에서 빛을 요구하는 대상은 군용 소총뿐만 아니다. 나침반이나 시계, 비상구 표지판 등이 있다. 그렇다면 형광을 얻기 위한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얻을까.

인류는 여기에 방사능 물질을 사용했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의 원자핵이 스스로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방사선이 에너지원이 된다. 그러니까 가늠쇠에는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이 형광물질과 함께 있다. ‘붕괴라는 용어 때문인지 마치 원자핵이 폭파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지만, 붕괴는 여러 종류가 있다. 수소는 원소중에 가장 간단한 원소지만 핵에 중성자가 두 개가 더 있는 삼중수소 원자는 불안정하다. 결국 중성자 한 개가 양성자로 바뀌고 전자를 방사선으로 방출한다. 가늠쇠에 있는 물질이 삼중수소다.

최근 일본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하며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적으로 떠들썩하다. 언론에서는 마치 죽음의 바다를 언급하며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 삼중수소가 있었다. 아무리 정화한다고 하지만 방사능 물질이 포함된 오염수를 태평양에 쏟아낸다니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동해와 대한해협을 끼고 있는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다. 정성적으로 보면 분명 말도 안되는 일이 이웃나라에서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량적으로 보자. 방사능 피폭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어떤 종류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의 발단은 정화되지 않는 11종의 방사성 핵종과 삼중수소가 결합한 삼중수였다. 일본이 택한 방법은 희석이다. 일본은 125만 톤의 오염수를 400배로 희석시켜 5억 톤으로 묽게 만들어 방류 허용기준 이하인 리터당 1500베크렐 (Bq/L)로 낮추고 30년에 걸쳐 느린 속도로 방류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체 1500Bq/L은 얼마나 위험한 걸까. 베크렐은 방사능 단위다. 1베크렐은 1초에 방사선 1개를 방출한다. 앞서 언급한 소총의 가늠쇠나 시계에 있던 삼중수소는 수억 베크렐이다. 이런 물질은 섭취할 일이 없으니 먹거리와 비교해 보자.

우리가 자주 먹는 콩에는 칼륨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런데 자연에 있는 칼륨의 극미량은 방사성 동위 원소인 칼륨-40이다. 칼륨-40은 삼중수소보다 방사능이 340배 많다. 커피도 콩의 한 종류다. 아메리카노 톨사이즈는 대략 355ml이고 투샷을 기준으로 칼륨-40의 방사능을 1리터의 삼중수소로 환산하면 3만 베크렐을 훌쩍 넘어선다.

국제보건기구가 정한 삼중수소 음용수의 기준치는 리터당 1만 베크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방사성 물질이 있는 음료를 별 생각없이 마시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아무일이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는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많은 양이 많은 일을 한다. 커피를 예로 들었을 뿐 방사성 물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한다.

물론 일본의 오염방제 방법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삼중수소의 방사능 피폭 위험성만을 꺼내 무조건 방출하지 말라고 하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다. 과학적으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삼중수를 극초저온으로 만들면 완벽한 정화가 가능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수거된 오염수를 계속 보관할 수도 없다. 가둔 오염수가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인재로 인해 가둔 허용기준 이상으로 바다로 흘러가면 대책도 없다. 이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다.

일본은 이웃 나라임에도 사전에 우리나라에게 외교적 양해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오염수 방출을 결정했다. 이번 일은 일본과 해묵은 감정적 대응을 앞세우기보다 냉정한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의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그들의 계획대로 정화하고 희석해 방류하는 모든 과정이 국제 기준에 맞게 실행되는지 들여다보고 요구할 것은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도 준비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삼중수소로 국민을 흔들며 외교적 부족함을 분노로 메우려 하면 안 된다. 유명한 연금술사인 파라켈수스Paracelsus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의 유무를 정하는 것은 오직 용량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