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 하나로 나무를 태워 그림을 그리는 ‘내 이름은 김서연입니다’

‘깻잎을 사랑한 해바라기’작품을 들고 있는 우드버닝 김서연 작가
‘깻잎을 사랑한 해바라기’작품을 들고 있는 우드버닝 김서연 작가

명공의 손에 잡히면 내버린 나무토막도 칼집이 된다는 말이 있다. 서산시 성연면 충의로 567-23 ‘태우는 나무공방을 운영하는 김서연(48)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쓸모없이 보이는 자투리 나무도 서연 씨를 만나는 순간 멋진 작품이 되어 벽이 걸리게 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뜨거운 열정 하나로 나무를 불태워 작품을 만들어 내는 김서연 씨를 만나 수준급의 그림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클로버 작품, 멀리있는 행운보다 가까이 있는 행복을 보자는 의미로 네잎클로버를 세 잎으로 바꿨다.
클로버 작품, 멀리있는 행운보다 가까이 있는 행복을 보자는 의미로 네잎클로버를 세 잎으로 바꿨다.

Q 나무에 표현하는 예술 우드버닝에 빠져들게 된 계기라도 있었나?

14년 동안 중풍으로 쓰러지신 시아버님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병수발을 했어요. 딸아이를 키우면서 제 시간은 아예 내려놓고 전적으로 아버님 시간에 맞추는 일과였었죠. 이런 저에게 서산시에서 어느날 효부상을 주대요. 우리 가족이 편찮으시면 돌봐드리는 건 당연한데 무슨 상을 주는지 참 부끄럽고 어색하더라고요.

2004년 시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곤 한동안 공허함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에는 피아노를 배우러 갔는데 손가락이 짧아서 잘 안되더라고요. 그리고 배운 게 기타, 홈패션, 요리였는데 그것도 역시 잘 안됐어요.

남편이 어느날 그동안 아버님 때문에 외출도 못 하고 꼼짝없이 매여 있었던 것이 미안했던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저를 끌고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주더라고요. 그때 간 곳이 홍성에 있는 우드버닝이라는 동호회였어요. 알고 봤더니 목조주택건축일을 하는 남편이 사용하고 남은 나무를 활용하기 위해 자신이 우드버닝을 배워보려고 했던 거였죠. 그런데 시간이 안 되니 은근히 저를 등 떠민 것이었어요.

저는 처음엔 아예 선 긋는 것도 잘 안 됐어요. 동호회원 분들이야 예전부터 해왔으니 그렇고, 저는 그때야 발을 들여놨으니까 뭐 당연했겠지만요. 그냥 세상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배워나갔던 거예요. 하다 보니 약간씩 녹아 들어가는 것처럼 좋아졌어요.

사실 우리 남편의 열성은 정말 높이 평가해줘야 해요. 전국 우드버닝협회 전시회가 열리면 그곳이 어디건 검색해서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박람회가 열리는 곳도 마찬가지고요. 귀찮았지만 내색할 수가 있어야죠. 더구나 자신은 몇 시간이고 차에서 기다리고 저만 전시장 안으로 밀어 넣는 거 있죠.

아마 그때 우드버닝에 대해 눈이 조금씩 띄었던 것 같아요. 차츰차츰 진도가 나가더니 1년 정도 됐을 때는 드디어 작품 같은 작품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건 순전히 소질보다는 남편이 쏟아부은 노력의 대가였다고 봐요.

소나무숲
소나무숲

Q 1년 만에 급성장했다면 얼마나 노력했을까 안 봐도 느껴진다.

물론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남편 말에 의하면 남들 10년 할 몫을 김서연이는 혼자서 1년 만에 다 했다라고 할 정도로 우드버닝 열성파가 바로 저였어요. 1년 정도는 낮에 시작해서 자정까지 꼬박 앉아서 미친 듯이 했답니다(웃음).

상을 펴놓고 하다 보면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나무를 태우고 있었어요. 메케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데도 제게는 그 냄새가 마치 향기로운 내음이 작품 속에서 스며 나와 제 코끝에 닿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어느 사이엔가 우드버닝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작품을 보면 마치 그냥 편안해지는 어떤 알 수 없는 마술에 걸린 듯 좋았어요. 은근히 매력 있지 않아요? 그러니 10시간 이상 매달려서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죠.

그러다 남편이 잠도 안 자고 뭐 하냐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기계를 내려놓기를 여러번, 그때는 이미 손을 펴면 뻣뻣해서 이게 내 손일까란 생각을 했을 정도로 작품 삼매경에 홀릭됐었어요. 그게 벌써 4년이나 됐네요.

늑대 작품, 가죽에 버닝과 염료사용
늑대 작품, 가죽에 버닝과 염료사용

Q 우리 지역에서는 우드버닝이 흔하지 않다 보니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우드버닝이 뭔가?

맞아요. 사실 이게 흔히 배우는 분야는 아니라서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보령 쪽은 상당히 활성화가 잘 돼 있어서 각 문화센터나 방과후 학습, 그리고 마을마다 우드버닝반이 개설되어 있는걸 봤어요. 하지만 우리 서산지역에는 좀 드물어요.

우드버닝은 인두라고 하는 버닝 펜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나무를 도화지 삼아, 고온의 인두를 붓 삼아 태우고 지져서 그리는 공예라고 보시면 됩니다. 원근감이라든지 명암, 섬세한 표현들도 다 작품 속에 녹일 수 있어요. 예를 든다면 호랑이의 화난 표정과 귀여운 표정, 연기자들의 연기 내공까지도 다 작품 속에 넣을 수 있지요.

저는 마음이 심란하거나 정신집중을 요할 때면 우드버닝을 해요. 그러면 어느새 제 속에 있던 응어리가 어김없이 불로 인해 함께 다 타버리더라고요. 가만 보면 4년간 매일같이 즐거움을 줬던 우드버닝이에요. 제 친한 친구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거예요. 속상할 때면 위로해 주고, 외로울 때면 늘 옆에서 단짝이 되어주고 그래요.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 하나 있으니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어느 늦가을날에 작업한 호랑이
어느 늦가을날에 작업한 호랑이

Q 행사장에서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관람객들이 작가님 작품 앞에서만 많이 모여계시더라. 호랑이 작품이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그림에 소질이 있었나?

저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모르죠 또. 제 속에 제가 모르는 소질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웃음). 여기서 살짝 고백하자면 저 못 그린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우드버닝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그림 잘 그리냐는 질문을 곧잘 던집니다. 참 애매해요 그때마다(웃음).

저는 그림을 잘 그리든 못 그리던 과정에서 누리는 느낌이 좋아 계속하는 거예요.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나무를 태우면서 나오는 색깔이 마치 수채화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자꾸 빨려 들어간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태울 때 나오는 냄새는 좋은 것도 있지만 아주 고약한 것도 있어요. 건조 안 된 은행나무 같은 경우가 바로 고약한 종이죠. 그런데도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올인할 수 있는 뭔가가 있고, 또 완성된 작품을 남편표 액자에 붙여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그때마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일을 참 잘 선택했구나!’란 생각도 들고요.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연인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연인

Q 앞에서 건조되지 않은 은행나무 같은 경우는 냄새가 지독하다고 했다. 혹시 작업하시면서 유난히 향 좋은 나무는 어떤 것이 있으며, 기억에 남는 작품은?

칸토나 삼나무, 소나무가 향이 좋아요. 이런 나무에 작품을 하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가 하면 수시로 가만히 냄새를 맡곤 하죠. 하지만 의외로 편백은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좀 있는 편입니다. 옛날 모기가 많은 시절에 모기향 대용으로 피웠던 것이 바로 편백나무와 삼나무였다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합판 같은 경우엔 냄새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처음 맡아보신 분 중에 어떤 분들은 냄새가 좋다고 무슨 나무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간혹 계세요.

이것은 냄새와는 좀 다른 얘기예요. 저기 보이는 해바라기작품은 오동나무를 태워서 만든 작품이에요. 이규태 작가는 오동나무를 내나무라고도 불렀는데 이 이름은 식물도감에도 나오지 않는 이름이에요.

그의 작품에는,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딸 몫으로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었대요. 딸이 성장하여 시집갈 나이가 되고 혼례 치를 날을 받으면 십 수년간 자란 오동나무를 잘라 농짝이나 반닫이를 만들어 주었대요.

아들을 낳아도 오동나무를 심어 주는데 나무의 주인이 죽을 때까지 계속 자라게 베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아들의 관을 짜는 데 사용되었다고 적혀있어요. 이처럼 오동나무는 사람의 탄생과 더불어 숙명을 같이하면서 결국 죽을 때에는 함께 묻히는 운명 같은 나무죠.

저도 운명이란 단어에 근거하여 오동나무에 해바라기를 그려 넣어 깻잎을 사랑한 해바라기라는 작품을 저기 붙여 놨어요. 오동나무는 상당히 가볍고 좋아요. 남편이 해 주지 않아 제가 겨우 톱으로 잘라서 작품을 그려 넣었어요. 그런데 그만 해바라기 잎을 제가 깻잎처럼 만들어버렸지 뭐예요.

사실 해바리기 이파리에 솜털이 붙어있는데 그 형태가 눕혀져 있어서 라인이 잘 안 보였던 거죠. 더구나 가볍고 물렁물렁한 나무였는데 하다 보니 그만 깨져버렸어요. 해바라기 꽃은 익어서 고개를 숙였죠. 이파리는 하늘을 보고 있죠. 그래서 깻잎을 사랑한 해바라기라고 이름 붙여준 거예요. 제게는 운명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억에 남아요.

가족
가족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실은 우리 남편이 그림에 소질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집 짓는 일에 매달리고 대리만족으로 저에게 우드버닝을 시킨 것이 결과적으로는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거예요. 이 자리를 빌어 자신에게 주어진 재주를 포기하고 저의 숨은 재주를 발견해준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우드버닝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가정주부로 어떤 취미를 가져볼까라며 여전히 갈등하고 있겠지요.

남편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섰으니 이제는 대대손손 남편이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대산에서 우드버닝을 알리고 싶어요. 남편이 저를 위해 전시관을 다니며 저를 성장시켰듯, 부족하지만 그동안 소장하고 있는 저의 작품을 선보여서 아직도 생소한 우드버닝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꿈은 꾸는 만큼 이뤄진다고, 꿈은 꾸는 순간 이미 빛난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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