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54

영화초등학교 보건교사로 재직 당시 모습
두번째 직장에서의 모습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9개월간의 첫 직장생활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모로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5년 갓 입사하여 신규간호사로서 설렘과 긴장이 교차되던 순간부터 촉박한 시간에 헐떡이며 종종걸음 치던 숱한 날들, 방광이 터질 것 같은데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참고 참던 기억, 근무 직전 병동으로 들어설 때면 긴장으로 두근거리던 가슴, 야간근무를 마치고 퀭한 눈과 멍한 머리로 해를 등진 채 잠을 자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2년간의 기숙사 생활과 근무 전 동료들과의 짧고 굵은 커피타임, 이브닝 근무 후 함께 땀 흘린 멤버들과 들이키던 시원한 맥주, 앙드레 김이 디자인 했다던 예전의 유니폼도 생각난다.

과부하에 걸릴 정도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잦았지만 오프 날을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월급날이면 통장에 입금되는 돈과 서로에게 힘이 되는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당시 힘들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의 패턴과 3교대 근무가 내 삶을 억눌렀다.
당시 힘들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의 패턴과 3교대 근무였다.

퇴사를 결심하던 해에는 강도 높은 업무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시간의 패턴, 주말도 없는 3교대 근무가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을 감안한 채 연봉이나 복지가 준수한 첫 직장에 평생 뼈를 묻을 것인가, 안개 속에서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설 것인가. 나이 서른을 문전에 두고 스스로 결정하기로 결심했다. 고민을 거듭한 결과는 퇴사로 이어졌다. 이후 1년의 방황과 1년의 공부 끝에 제 2의 직장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애증어린 첫 직장과 이별을 했지만 아직 그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꿈으로 나를 지배한다. 몸이나 정신이 피로할 때면 나를 찾아오는 꿈은 두 가지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안 해서 불안한 꿈과 병원에서 죽어라 일하는 꿈. 특히 시간은 촉박한데 할 일은 쌓여 있고 진척은 없는 답답한 병원의 꿈은 이른 아침부터 나를 지치게 만든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이란 책을 보고 내가 마감기한이 없는 모든 일에 스스로 기한을 두고 압박을 받는타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성정이 그러한데 과연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병원에서의 좋은 기억도 많은데 꿈을 꾼 날은 그 곳의 경험이 마냥 진저리난다.

종종걸음을 칠 때, 전화를 받고 끊을 때면 롤러코스터의 습관이란 노랫말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기억하는 습관이다.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 없었던 시절 생겨난 걸음걸이가 몸에 배었다. CS 우수상 1, CS 포인트상 7회를 받으며 수여받은 상금은 전부 엄마에게 드렸는데 직장에서 전화를 받을 때 안녕하십니까. ○○○ 최윤애입니다”, 끊을 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습관은 오롯이 나에게 남았다. 나쁜 습관은 절대 아니지만 때로 과하다 여겨 질 때가 있어 최근 의식적으로 이 멘트를 내려놓자 노력한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한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은 도움이 되는 습관이다. 생각날 때 행동하거나 적어놓지 않으면 뒤돌아서면서 깜빡하는 일이 잦다. 아이를 출산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을 할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므로 나는 업무를 하기 전 수첩에 체크리스트부터 작성한다.

나의 무의식이 아닌 신체에 새겨진 것도 있다. 허리와 어깨의 통증, 부끄럽지만 치핵이 그것이다. 허리 디스크는 몸을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환자들을 간호하기 위해 내 몸을 무리하게 혹사시킨 결과다. 환자의 움직임을 돕기는커녕 내 머리조차 감기 힘들 때가 있었다. 한번 시작된 요통에 완치란 없었고 나는 가끔 양한방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키가 작아 폴대에 수액을 걸면서 어깨를 많이 썼더니 양 어깨도 삐걱거린다. 탁구, 배드민턴을 치다가 어깨를 쓰는 운동은 이제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데이 근무를 할 때면 변의가 느껴지는 날이 종종 있었다. 시간이 아까워 소변도 참는 마당에 대변은 가당치도 않지, 그렇게 참고 참다 보니 어느새 치핵이란 놈이 생겼다. 그 놈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내 몸에 영구히 안착한 것 같다.

간호사라는 신분 속에서 이제는 다른 직업을 찾아 살고 있지만 과거는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도 여전히 흘러갈 것이란 걸 잘 안다.
간호사라는 신분 속에서 이제는 다른 직업을 찾아 살고 있지만 과거는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도 여전히 흘러갈 것이란 걸 잘 안다.

H그룹의 소속이었던 병원이라 H사의 패밀리카드와 H백화점의 임직원카드를 발급받았는데 지금까지 두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비록 패밀리카드는 일반카드로 갱신되면서 연회비가 발생했지만 임직원카드는 여전히 5% 상시 혜택으로 내가 그 그룹의 일원이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2009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나는 과감히 임상간호사와 결별했다. 여전히 간호사라는 신분 속에서 다른 직업을 찾아 살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로 끝나지 않고 현재로 이어지고 미래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한때나마 몸담았으나, 코로나19로 임상간호사들이 짊어진 무게를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대신 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땀을 흘리고 있을 그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몸과 마음이 부디 안녕하기를 바라며….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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