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의 소통솔루션-⑪

한편의 시를 소개한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쓴 시인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거의 천재적인 수준이다.


<아빠는 왜?>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니까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니까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날아 놀아주니까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아이가 이런 시를 쓰게 된 원인이 무엇이겠느냐고 많은 아빠들에게 물었다. 대부분 아빠들은 자신들의 탓이라고 했다.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분들이 많았다. 일부는 사회구조 탓이라 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 아빠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아이가 이런 시를 쓴 것이라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던 독립군의 자제분들은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살았을까? 독립군의 자식들이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으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살았다면 누구 때문일까?

, 범인 색출에 들어가자. 초등학생이 위에 언급한 천재적인 은유시를 쓰게 된 배경은 바로 엄마다. 그렇다면 위의 시를 쓴 초등학생의 엄마 아빠는 사이가 좋을까? 그럴 리가 없다. 구체적으로 아이가 이번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추론해보자.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다. 아빠는 늘 바쁘고, 집에 늦게 들어온다. 엄마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한다. 아빠는 그때마다 엄마에게 화를 낸다. 그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어느 날, 아이는 이유 없이 엄마에게 잔소리와 꾸중을 듣는다. 엄마는 화가 나면 아이에게 화를 낸다. 특히, 엄마는 아빠와 싸운 다음에는 더 화를 낸다. 엄마는 아빠를 미워한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챙겨주지만, 아빠는 여전히 집에 늦게 들어온다. 또 엄마의 잔소리에 화를 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 아빠만 없으면 나는 엄마한테 혼날 일이 없다. 완벽한 추리가 아닌가.

그래서 부부는 사이가 좋아야 한다. 이 나라의 남편과 아빠들은 말한다. 달리는 말은 마구간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이젠 옛날 얘기 좀 그만하시라. 아빠들은 아내에게 잘 보여야 조국의 광복을 위해 걱정 없이 거친 들판을 뛰어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명심하시라, 아빠들이여! 아내의 마음을 사로 잡아야 큰일도 할 수 있고, 조국의 광복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아빠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도대체 아빠들이 무엇을 그렇게 크게 잘못했는가? 내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했을 뿐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빠의 최대 책무라고 배웠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회사에서도 자존심 버리고 굽신거리며 일하고 있다.

가족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이들과 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아내와 수평관계에서 소통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배우지를 못했다. 그래서 조금씩 배우려고 하고 있다. 아빠도 변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비난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아빠를 좀 더 변하게 할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아빠들도 넋두리를 할 필요가 있다. 아빠들도 위로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는 게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아빠들은 아빠란 이유로 어디서 말도 못하고, 넋두리도 못하고 위로받기도 어렵다. 솔직히 아빠 노릇하기 정말 힘들다. 요즘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대세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가 대세였다. 옛날의 훌륭한 남편이나 아버지는 식구들을 굶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족했지만, 요즘의 좋은 남편이나 아빠는 여기에 몇 가지가 추가된다. 돈 많이 벌어오기, 자기계발하기, 가족과 대화하기, 아이들과 캠핑가기, 가사 일 거들기, 아이들 공부시키기, 처갓집의 아들 노릇하기까지 셀 수가 없다.

불황에 저성장 시대다. 돈 벌기도 힘든 아빠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족이 원하는 만큼 돈을 벌어 올 수 없는 능력 없는 아빠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엄마만 사표를 내고 싶은가. 아빠라는 자리에 사표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겠는가. 아빠라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왜 들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가정으로 무사 귀환하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감 넘치는 대한민국 아빠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오해하지 말라. 대접을 받고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햇볕이 외투를 벗기듯, 위로가 아빠들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아빠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지만, 열심히 일만 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 우리가 보고 배운 아버지의 모습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빠들 역시 가족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알면서도 쉽사리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 남자의 특성이니 어쩌랴.

다시 강조하거니와 아빠에게도 칭찬과 격려, 위로가 필요하다. 그들도 상처받고 자란 가여운 영혼들이다. 멋진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빠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고 오늘도 집으로 퇴근하고 있다. 칭찬 좀 해주시라. 격려 좀 해주시라. 아내의 칭찬이 남편을 더 빨리 변화시킨다. 아시겠는가? 아시겠냐고?

김대현 소통전문가/한국가정문화연구소 소장/방송인
김대현 소통전문가/한국가정문화연구소 소장/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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