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오일장에서 ‘톱 만들기’ 외길 인생 육십 년

아버지의 권유로 열일곱 살에 시작

동부시장 조수일 톱 장인의 모습
동부시장 조수일 톱 장인의 모습

아직은 눈이 밝아 작은 쥐 이빨처럼 작은 톱날을 보는데도 지장이 없어.”

서산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여지없이 장옥 밖 난전에 가리개도 없는 처마 밑에 자리를 펴는 톱 장인이 있다.

고향이 해미인 조수일 어르신이 이렇게 장터에 발을 들인 지 어언 60년 한 평생이 되었다. 세월은 화살과 같이 흐른다더니 아버지의 권유로 열일곱 살에 톱 만들기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일흔일곱 살이 되었다.

한 때는 장터에 톱쟁이라 불리는 이들이 몇이 있었다. 하지만 시류에 따라 벌이가 시원찮해지면서 하나 둘 떠나고, 오래전에는 마지막 남은 이웃도 떠났다. 오로지 조수일 어르신 홀로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톱의 전성기도 있었다.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때던 시절, 집집마다 톱은 몇 개 정도는 있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톱집 앞에는 톱을 사려는 사람, 톱날을 갈아야 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조수일 어르신은 어린 나이 적부터 산으로 들로 나무를 하러 다녔고,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아버지한테 톱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옛날에는 일감이 많아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오줌 누러 갈 시간도 없었지. 톱 하나로 아들 딸 4남매 공부 시켰으니 톱이 효자지.”

이제 등도 굽고 하얀 서리가 내려 앉은 머리만큼 세상도 많이 변했다. 나무를 할 일이 없으니 톱이 필요할 일이 없고, 자연스럽게 톱을 찾는 이도 톱날을 갈아 달라는 이도 뜸하다.

하지만 장날에는 육십 년 단골들이 가끔씩 찾아주지. 단골이나 나나 모두 늙었으니 막걸리 한 잔 값이라도 깍아 줄 수 있으니 이게 행복이지.”

하지만 온 종일 톱과 씨름하다 보면 집에 갈 때는 모든 물건이 톱으로 보인다며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쓸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식들도 다 제 갈길 가고, 톱 만들기 명맥을 이를 사람이 없어하시며 톱과의 인연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듯 말 끝이 흐려진다.

서산 오일장과 함께 한 60, 조수일 톱 장인의 삶은 신문사 기사로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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