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사람】 90세 김낙중 옹이 부르는 ‘내 아내 유복수 할매’
상태바
【e-사람】 90세 김낙중 옹이 부르는 ‘내 아내 유복수 할매’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1.04.03 2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레오파트라 양귀비보다 더 이쁜 내 아내 ‘꼬부랑 할멈’
서산시 율목리에 사시는 90세 김낙중 옹
서산시 율목리에 사시는 90세 김낙중 옹

나이 90 먹도록 긴 인생을 내 머리에 다 넣었어. 그러니께 한마디로 나는 박사여. 어디 가서 연설하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다 할 수 있어. 대통령에게도 하고 나랏일 하는 사람에게도 다 할 수 있어. 그런데 내 생명 북돋아 준 우리 할매(아내)한테는 못할 거 같어. 아파 누워있는 걸 보면 그냥 불쌍하고 애잖혀서 눈물나.”

나이 90이 되니 고마운게 달버

모자도 호미도 고마워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금요일, 아흔의 나이에도 허리에 밴드를 감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 김낙중 옹의 얼굴에는 미쳐 다 헤아리지 못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사무치다 못해 절절하게 나타나 있었다.

허리를 다쳤냐는 물음에 죽을때까지 꼿꼿하게 살려고 허리복대를 차고 다닌다는 어르신은 검은색 모자를 들여 지그시 바라보며 벌써 몇 년을 썼는데도 이 모자가 한없이 고맙고 또 고마워. 내가 모자를 좋아하니께 우리 할멈도 집에서 모자를 자주 써. 그것도 고마워. 꼬부랑 할매지만 모자를 쓰고 있으면 참 고와. 나이가 드니 우리 할멈과 연결된 것은 다 고마워라며 부끄러운 미소를 감추기라도 하듯 환하게 웃었다.

김낙중 옹이 쓰신 시 '아름다운 그 얼굴'
필체 고운 김낙중 옹이 쓰신 시 '아름다운 그 얼굴'

김낙중 옹이 2019715일 새벽 3시에 쓴 아름다운 그 얼굴이란 시는 아내 유복수 어르신에게 고백하는 사랑의 연서였다.


이세상 아름다운 얼굴 누구일까

옛부터 절세가인이라면

크레오파트라 양귀비라지만

나는 그보다도 이쁜이 또 하나 있지

 

누구일까 다만 한사람

이세상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온천지 더 찾아볼 수 없는 단 한사람

제일 곱고 아름다운 그 얼굴

 

누구일까 다만 한사람

마구 밝히기조차 아까워

90 평생 나를 위해 온갖 받쳐준

불쌍한 내 할멈 평생 동반자

거저 보기엔 덥수룩한 여인

꼬부랑 할멈이지만

 

쓰다 달다 좋다 싫다 없이

넌지시 웃고 섬기는 별난 애타심

한없이 넓고 깊은 사랑만으로

오직 한사람 내 생명 북돋아 준

우리 할멈 그 이름 유복수

 

! 이세상 천지 그보다 아름다운 사람

또 어데 있을까!

이세상 제일 아름다운 그 얼굴

죽도록 보고 싶은 그 얼굴

죽어도 못 잊을 그 얼굴

 

! 아름다운 그 얼굴이여!

그 이름 유복수 얼굴

이 세상천지 제일 아름다운 그 얼굴


간암으로 세상 떠난 아들

나를 자극하니께 할매는 내 앞에선 안울어

슬하에 11녀를 두었지만, 아들이 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두 부부는 마음고생을 참 많이도 했단다.

지금처럼 봄 되고 꽃피면 우리 두 늙은이는 눈물바다가 돼. 저 꽃은 봄이면 피는데 자식놈은 한번 오지 않잖어. 그래도 우리 할매는 나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고 속으로 울어. 나를 자극하니께.

그래도 이제는 좋게 생각할려고 해. 우리 아들이 다 살지 못하고 남겨 둔 목숨을 우리 두 늙은이가 대신 살고 있응께 열심히 살아줘야지. 우리 아들 만나기 전까지는 아들 목숨도 같이 들어있으니 잘 살아야지. 요즘은 뭐든지 다 고마워. 아들 손때가 묻은 집 주위를 호미들고 풀 맬떼도 그 호미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고, 아프지만 그래도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는 우리 할매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러.”

꼬깃꼬깃 접어서 들고 오신 김낙중 어르신의 자작시들... 하나 하나가 주옥같은 글들이다.
꼬깃꼬깃 접어서 들고 오신 김낙중 어르신의 자작시들... 하나 하나가 주옥같은 글들이다.

새벽 4시에 일기 쓰면서 인격수양

90이 되니 인생 전부가 내 머리에 들어있어

김낙중 옹은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철학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세상사 고마움의 전부지만 좋은게 다르다고 말하는 어르신.

이상허게 나이드니 좋은게 달버. 돈 벌어서 좋은 것도 아니고, 감투 써서 좋은 것도 아녀. 그저 오토바이 하나 있으니 가고 싶은 곳 다 가보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니 좋아. 또 새벽 4시에 일어나 일기 쓰면서 인격 수양하고, 반성하고, 아쉬운 점까지 적고. ‘그런 말 하지 말걸’, ‘난잡했구나반성하고. 이렇게 사는 세상이 좋은거여.

참교육이 딴게 아녀. 90 이전까지 사회활동 다 해보고, 온갖 것들 다 겪은 게 바로 교육이여. 나는 지금도 대통령을 가르칠 정도로 인생 전부가 내 머릿속에 들어있어. 아흔이 되고 보니 이제는 당당혀. 거리낄 게 뭐 있어. 그런데 우리 할매 앞에서는 당당하지 못해. 고생만 시켜서.”

일기와 시를 쓰면서 열등감 극복

불쌍한 우리 할매 내 평생 동반자여

김낙중 옹은 전직 대통령 두 분에게 오찬에 초대받아 청와대를 다녀오는가 하면, 감사패도 받았다며 시골에서 이런거 받는 것도 드문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아내에게 인정받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키도 작고 못생겨서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많았어. 그래서 평소 못다 한 말을 일기에 쓰고 시에 적었지. 그러면서 다 극복한 거여. 사회활동도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젊어서는 우리 할매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 그래도 나 잘한다고 해주고 챙겨주고 내 말에는 무조건 잘한다고 해주고. 그러니께 옆에 있어도 그립고 또 그립지. 불쌍한 우리 할매 내 평생 동반자여

인터뷰 후, 멀어져 가는 김낙중 옹의 오토바이가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이제 5월이 되면 집 주위 먼저 간 아드님이 심은 연산홍이 그리움이 되어 붉게 물들 것이다.

2021
210일 새벽에 쓴 김낙중 옹의 애닮은 못 잊음의 시를 옮겨본다.


사랑하면 안된다

그래도 그리울텐데

그리우면 안된다

그래도 그리울텐데

보고싶어도 말리자

그래도 눈물날텐데

 

못잊어 못잊어 살다보니

못잊어 병 되었네

약도 없는 나만의 못잊음

고칠수 없는 그 병 그 누가 주었나

주긴 누가 줘

주진 안했어도 빗대기라도

 

이쁘고 미운사람

밉고도 이쁜사람

잊으려 애써도

마냥 달라붙는 그런 수수께끼

 

무언지 누군지 다가오는 그리운 사연들

평생 잊고 살란 말인가?

죽기전 품고 살란 말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