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이은재 작가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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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이은재 작가의 사모곡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1.03.22 0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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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해미면 '꽃빛카페' 운영하는 이은재 작가

엄마의 꿈을 위해서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
전통찻집 꽃빛카페를 운영하는 이은재 작가
전통찻집 꽃빛카페를 운영하는 이은재 작가

해미읍성 바람 사이로 자릿자릿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던 날, 억겁의 세월을 가슴에 품고 하나하나 올을 풀 듯 세상에 펼쳐내는 꽃빛카페를 찾았다. 그곳에는 소박하지만, 결코 소박하지 않은 지난 흔적들이 넓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의 엄마 이재희 씨는 제 인생에서 가장 멋진 여자셨습니다. 과거를 거쳐 현재에 이른 것들을 미래와 연결 짓도록 했던 것도 저의 엄마 의중이 컸습니다. 제 인생의 멘토이자 삶의 지침서였던 우리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해미면 읍성마을346’에 있는 꽃빛카페도 탄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고즈넉한 음악이 흐르는 곳을 가로질러 마스크를 낀 채 미소지으며 다가온 이은재 작가는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그만 눈물을 글썽이며 창밖 낮게 드리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없이 쓸쓸하고 한없이 포근한 실내에서 이은재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크게는 슬픔이기도 했고 놀라움이기도 했다.

한때 안견미술대전 사무국장이자, 해미미술협회 제1대 사무국장직을 수행했었던 이은재 작가, 그녀의 눈길은 오래도록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눈길에 머물러 있었다.

언암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와 현모양처 어머니 모습
이은재 작가는 아직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Q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세상 모든 자식이 다 비슷하다. 그런데 유달리 돌아가신 어머니를 놓지 못하고 계시는데 부모님 얘기를 좀 들려달라.

제가 태어난 곳은 지금 해미비행장이 들어선 서산시 고북면 신정리 2입니다. 언암국민학교가 당시에는 비행장 안에 있던 때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그곳에서 교사를 하시면서 양약방을 운영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유난히 사랑하셨지요. 저는 두 분 사이에 4녀 중 셋째딸이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그림을 참 잘 그리셨어요. 제가 목원대학교 회화과 동양화를 전공하자 너는 나를 닮아서라며 아주 좋아라 하셨지요. 저 또한 우리 엄마처럼 그림을 참 잘 그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 봐야 결코 엄마보다는 소질 면에서 떨어질 테지만요.

이렇게 여섯 식구는 참 단란하고 행복했습니다. 늘 모범적이시면서 약간은 엄한 분인 우리 아버지는 항상 당당하고 씩씩해야 한다. 뭣보다 여자도 남자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다 해야 한다고 하실 만큼 매사 개방적인 생각을 하셨던 교육자셨습니다. 덕분에 우리 자매는 방학 임에도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해야만 했어요.

지금 85세 연세임에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직접 컴퓨터로 강의를 들으시는가 하면, 시를 쓰시고, 봉사를 하시는데,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건 엄마가 암에 걸리신 날부터 돌아가시는 그날까지의 일상을 시로 표현하셨던 분이 저희 아버지십니다. 그렇게 힘들어하시다 결국 엄마를 보내드렸지요.
지금도 시인으로서 아버지는 영면하신 엄마를 애절 애절하시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시어로 풀어내십니다.

회화과 동양화를 전공한 이은재 작가의 작품
회화과 동양화를 전공한 이은재 작가의 작품

Q 어떤 마음이실지 가히 짐작이 간다.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좀 더 해주시면?

지난해 620, 기상청 예고와는 다르게 종일 날이 좋았습니다. 엄마는 그날 저녁 그토록 아끼던 손자 민수와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암 투병 중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기억납니다. 산소호흡기를 낀 엄마가 어느날 아버지를 바라보며 보고 싶었어요라고 하시던 모습. 그런 엄마를 보며 아버지는 또 엄마 손을 꼭 잡으시며 나도 보고 싶었다며 서로 안고 우시던 일들. 당시 흔치 않던 연애결혼을 하신 두 분의 사랑은 두고두고 자식들에게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 엄마는 손자인 제 아들을 정말 많이 좋아하셨어요. 키가 180이 넘는 중학생 민수를 꼭 껴안으며 배 곪지 말고 다니라고 늘 다독였던 외할머니였죠. 서로가 서로를 참 애정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친정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키워주셨거든요.

할머니가 마지막 가시던 날, 민수는 자신의 팔목에 있던 팔찌를 풀어 할머니 품속에 넣어드렸습니다. 지금 그 아이의 팔에는 사랑하는 할머니가 남겨놓은 묵주를 차고 다니죠.

이제 엄마가 떠난 시간이 딱 10개월입니다. 잘 잃어버리고, 찬찬하지 않은 제가 난 머리가 너무 나쁜가 봐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랬습니다. “아니야. 내 딸이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그래. 나는 엄마니까 니가 머리 좋다는 것은 널 키워봐서 다 알아. 누구보다 아이디어가 많은 우리 은재, 그 좋은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뺏기지 말고 반드시 니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넌 언제나 훌륭한 내 딸이야ᆢ. 엄만 알아. 난 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저는 엄마가 한때나마 제 작업실에 계셔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네 딸 중에서도 오직 저만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미안하고 행복합니다.

엄마, 꽃빛카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야. 어때?”라고 했을 때 우리 은재가 하면 참 잘하겠다. 엄마가 힘껏 밀어줄게라며 카페 간판을 해주려고 언니들이 준 용돈을 속바지 안에 주머니를 달고, 그것도 모자라 그 속에 납작한 봉투 속 150만 원을 모아 놓으신 분이 우리 엄마입니다. 결국 그것은 엄마의 유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해미읍성 안에서 세탁비만 받고 '꽃빛 한복체험'을 운영했던 이은재 작가
해미읍성 안에서 세탁비만 받고 '꽃빛 한복체험'을 운영했던 이은재 작가

Q 어머니니는 늘 작가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많이 도와주신 것 같다.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여성들이 주로 경력단절이 되는 이유는 대부분 육아문제잖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인사동에서 동양화를 전시할 때도, 15년 동안 미술학원을 운영할 때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도자기 공방을 할 때도, D아트컨설턴트를 하면서 공간디자이너로서 다양한 활동을 할 때도 저를 비롯한 제 아이들 곁에는 늘 엄마가 계셨습니다.

지역 출신 작가들과 함께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제안을 수락했던 것도 모두 엄마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주셨던 분이세요.

서산시 해미면과 운산면에서 회원들과 함께 재능기부로 벽화작업을 할 때도, 도시문화사업단의 문화마을사업공모전에 지원하여 해미읍성에서 꽃빛 한복체험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다 한복은 읍성축제·해미천 벚꽃축제·고북 국화축제·유기방 수선화축제ᆢ 등으로 제 역할은 점점 확장됐어요. 특히 지역 학생들의 봉사로 이뤄진 한복은 주 고객이 외국인과 다문화 가족, 한복을 접하기 힘든 학생들에게 조선의 혼이 깃든 우리 옷을 입힐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됐었죠. 엄마가 없었다면 이런 보람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한복 이야기를 하려니 처음엔 다소 난감했던 일들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해미읍성 안에서 마땅히 한복을 전시할 장소가 없어서 주막 옆방을 잠시 빌려서 사용했는데 이리저리 눈총을 받았어요. 결국 읍성 안 여러 곳으로 자주 이사를 해야 했고, 그러다 지금의 동헌 안 전통복식체험장 옆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입구와는 좀 멀어서 방문객들이 구경 후 늦게 한복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섭섭해 하시더라고요.

사실 전주한옥마을 보다 우리 해미읍성이 훨씬 한복과 매칭이 잘 되는데 말에요. 빨리 코로나가 물러가서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이 해미읍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찻집 ‘꽃빛카페'는 이은재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여 만든 공간이다.
전통찻집 ‘꽃빛카페'는 이은재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여 만든 공간이다.

Q 평소 어머니께서 아이디어가 풍부하니 니 것으로 만들라고 해서 만든 것이 전통차인 꽃빛카페였다고 들었는데?

카페뿐만 아니라 소품들이에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D아트컨설턴트를 하면서 동시에 공간디자인을 주로 했었습니다. 꽃빛카페는 제가 직접 디자인했는데, 주로 시공간을 초월하고 싶은 욕심에 옛것을 많이 들여놨어요. 평소에도 저는 해미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된 과거의 통로를 해미읍성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보는게 저의 꿈이었어요.

여기다 제가 직접 기념품을 제작·판매하는 일을 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리부터 로고를 고안했었고, 또 여러 가지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상황과 여건이 맞질 않아 보류하고 있던 차 전통카페를 테마로 전통과 현대의 조합을 디자인하게 된 거예요.

카페 실내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밤나무와 소나무를 주로 썼어요. 그리고 바닥에는 명언들을 새겼는데 이것은 마음을 내려놓고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그렇게 만든 거예요.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주로 찾을 것 같은 해미읍성에 연계하여 우리의 전통을 느낄 수 있도록 옛날 물건들로 실내장식을 직접 디자인 했습니다ᆢ. 코로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지만 쉼 없는 바이러스 창궐로 조금 늦은 지난해 8월 꽃빛카페를 오픈하게 됐습니다.

그날 참 마음이 아팠어요. 옆에서 응원해주시며 항상 최고라 말씀해 주시던 엄마가 오픈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모시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늘 옆에서 보고 계시리라 믿고 있기에 이제는 조금 편안해 졌어요.

이은재 작가의 모친이 오픈하는 날을 가장 많이 기다렸다는 '꽃빛카페'
이은재 작가의 모친이 오픈하는 날을 가장 많이 기다렸다는 '꽃빛카페'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곳은 저의 멘토이자 세상에서 가장 멋졌던 우리 엄마가 정말 많이 기다렸던 곳이에요. 하지만 오픈되기 얼마 전, 그만 엄마는 제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꽃빛카페였거든요. 엄마에게 제가 만든 디자인 제품을 구경시켜드리기도 하고, 제가 대접하는 따뜻한 차 한잔도 마시게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 봐요.

엄마만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나지만 이번 기회로 이제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요. 씩씩하게 잘 해낼 거라 믿고 있던 딸이 자꾸 울면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는 우리 엄마도 가슴 아플 거 아녜요. 이제는 든든한 엄마표 빽을 믿고 어제보다 더 열심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제대로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차 한잔에도 전통과 예술을 함께 마신다는 생각으로 정성껏 말에요.

역사가 깃든 우리 해미에서는 제가 하는 이런 일도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길이 힘들든, 그렇지 않든 이제는 별로 개의치 않으려고요. 제가 가는 모든 곳은 다 길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곳에는 엄마의 손결이, 우리 자매들의 숨결이 저를 보듬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참 감사하고 안심돼요. 저 이은재 앞으로도 잘 해낼게요.


긴 대화가 끝날 즈음, 이은재 작가는 엄마의 기억 중에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고 했다.

엄마가 자주 무언가를 기록했던 작은 수첩이 있었어요. 그곳에는 계단방 모시가방이란 글씨가 있었죠. ᆢ이게 뭘까 하고 찾아보니 글쎄 언니가 첫 월급을 타서 드렸던 봉투 안에 노란 고무줄로 묶은 500만 원씩 네 다발이 만들어져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30년가량 모으신 듯한 납작해진 곳에는 옛날 돈과 틈틈이 자식들이 쓰라고 드린 낡아진 지폐가 가지런히 있었어요. 딸들에게 주려고 모아두신 거죠. 우리 엄마는 그런 분이셨어요라며 얘기 도중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럴 때 해미읍성 하늘에는 엄마의 별이 무수하게 빛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회상하는 그 속에는 아름답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슬픔과 그리움이 떠다닌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이은재 작가님과 그 가족들의 앞날이 눈물 대신 늘 여여하기를 기원해본다.

이은재 작가의 작품
이은재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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