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통의 역사, “너를 키우느니 다이어트를 포기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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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통의 역사, “너를 키우느니 다이어트를 포기하겠어”
  • 최윤애 시민전문기자
  • 승인 2021.03.2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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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50
내 종아리 알통에는 히스토리가 담겨 있다.
내 종아리 알통에는 히스토리가 담겨 있다.

서울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웬만큼 먼 곳에서 약속을 잡지 않는 한, 나는 늘 한 시간의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 한 시간은 한두 번쯤 대중교통을 환승하고도 얼추 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한 시간 전 출발은 사실 고향에서의 습관이었다.

고향집은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북군동의 윗마을이고 버스를 타려면 20분은 걸어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운이 좋을 때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버스를 타지만,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경우에는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 동네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로 약 15분이므로 걷기, 기다리기, 타기이 세 가지 루트의 최대치 시간은 한 시간. 버스를 타고 통학하던 초등학생 때부터 익숙해진 개념이다.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가는 길은 인가가 드물고 양옆으로 논만 한가득 펼쳐져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불 때나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아이의 걸음으로 20분간 걷는 일은 실로 곤욕이었다. 거기다 오줌까지 마려울 때는 몇 배로 힘들었다.

매일 교과서를 챙겨 다니던 그 시절의 가방은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하교 길 윗동네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자주 어깨가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에서 내려 금세 집에 들어가는 아랫마을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고된 지리적 환경에서 나는 알통이 볼록한 종아리와 튼실한 하체를 얻었다. 청소년기에는 알통을 없애보려고 빈 맥주병을 구해 언니들처럼 열심히 종아리를 문질렀건만 다음날 걸으면 나의 수고는 말짱 도루묵. 말랑해지는 건 잠시뿐이었다.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걷는 일이 없어졌다.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걷는 일이 없어졌다.

직장인이 되어 자동차를 구입하면서부터 걷는 일이 줄었다. 그러자 내 종아리의 근육도 아주 조금은 움츠러들었다. 여전히 보통 사람들보다는 두드러지지만 예전만큼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1월 말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다이어트도 할 겸 꾸준히 걷기로 다짐했다. 그때 아는 동생이 러닝 앱을 추천했다. 뛰는데 그다지 소질이 없기에 조금 망설였지만 성의를 생각해 도전해 보기로 했다. 러닝프로그램에 따라 걷고 뛰고를 반복하면 되니 쉬울 것 같았지만, 운동에 있어서는 젬병인지라 그것조차 힘들었다.

안하던 달리기를 하니 종아리가 아프고 숨이 차 뛸 때마다 그만둘까를 수십 번 고민했다.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속도를 낸 탓이었다. 계속 달리면 종아리 근육통도 서서히 줄어들 법한데 3주를 달렸음에도 뭉친 종아리가 풀리지 않고 통증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리기 직후 샤워를 하다가 무심결에 종아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 종아리 근육이 잔뜩 부풀어 오른 채 나를 보며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운동선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발달한 비복근에 하늘이 노래졌다.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매일 샤워를 하면서도 왜 종아리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후회가 하늘을 찔렀다.

3주를 달려도 체중은 그대로면서! 종아리 근육만 이렇게 발달하다니!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랴! 나의 몸에도 역사가 아로 새겨져 있으니 달리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는 그날부로 달리기 중단을 선언하고 러닝 앱을 삭제했다.

나는 엄숙히 나의 비복근에게 선언한다.

내가 다이어트를 포기했으면 했지, 더는 종아리 근육! 너를 키우지는 않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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