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만난 ‘소’는 내 마음의 고향, 행복한 축산인의 구심점 역할을 충실히 할 터

소와 함께한 25년 인생 최기중 서산축협 조합장
소와 함께한 25년 인생 최기중 서산축협 조합장

40년 동안 촌로 곁에서 묵묵히 여생을 함께 했던 소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을 처연하게 했던 영화 워낭소리를 기억한다. 팔순 농부와 늙은 소의 마지막 가는 길에도 여전히 그곳에는 반복적인 노동과 서로를 보듬는 모습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시대를 건너고 있는 것도 그 속에는 미력하나마 의 역할도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피나는 노동을 기꺼이 감수했고, 그러다 주인을 위해 결국 우시장으로 팔려나가야 했던... 마지막은 역시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소의 운명이었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촌로 부부와 이런 에 얽힌 이야기다. 이름과 나이는 다르지만 최기중 조합장은 소와 동행하는 삶과 그 틈에서도 24시간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촌로와 오버랩 된다.

따뜻한 햇살이 창가를 비추기 시작하던 3월 초, 회원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서산축산업협동조합 최기중 조합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소를 이용하여 밭을 갈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는 최기중 조합장
소를 이용하여 밭을 갈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는 최기중 조합장

Q 조합장 문을 여는데 제일 먼저 소 사진을 발견했다. 역시 소와 함께 하는 삶을 엿볼 수 있어 상당히 인상적인데 대동물 수의사를 하게 된 계기는 뭔가?

소를 이용하여 밭을 갈고 있는 이 사진은 70년대 우리 아버지 모습이다. 항상 저렇게 탁자 위에 올려놓고 본다. 이런 모습은 아마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함께 공유하는 모습일 것 같다.

당시 소 한 마리는 대다수 축산농가에게는 소중한 재산이다. 그러다 보니 혹여 응급상황이라도 생기면 온 동네가 난리도 아니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바로 자식 등록금이, 자녀 결혼자금이 날아갈 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라는 존재는 예로부터 어떤 이들에겐 적인 존재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겐 재산인 동시에 큰 일꾼이었다. 봄철 씨를 뿌리기 위해 소를 이용하여 경작을 했고, 가을이면 수확물을 운반하기 위해 또다시 운송수단으로 소를 이용해야 했다. 귀한 대접을 하면서도 일을 할 때는 제법 혹독하게 다루지기도 했던 또 다른 고향 라는 존재.

내가 소와 함께 동행하기로 했던 때는 내 나이 이십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대 수의학과 졸업 무렵이었다. 잘 아는 선배님이 전망도 없는 대동물 수의사보다는 노후까지 안정이 보장된 공직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동물 임상을 하려고 준비해왔던 당시는 소값 파동으로 동물병원이 인기가 없던 때였다.

운명인지는 모르겠다. 어느날 농활을 다녀온 후 농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리하게 됐다. ‘우리나라 농민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희생만 한 농촌에 누군가는 그들과 함께해야 하지 않겠나.’

비록 가격은 내렸지만, 농촌에는 반드시 소가 있어야 하고, 소가 있는 한 수의사는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무조건 농촌에 개업해서 그들과 함께 걸어가자는 생각으로 대동물 수의사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 길이 벌써 25년째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24시간 휴대폰을 켜 두는 최기중 조합장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24시간 휴대폰을 켜 두는 최기중 조합장

Q 수의사를 하시면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 같은데 언제 쉬나?

대중없다. 나는 원래 일요일은 철저히 쉬자는 주의였다. 옛날 학교 다닐 때는 빨간 글씨로 으레 늦잠 자는 날이라는 표식을 할 정도로 잠자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혹여 누가 깨우기라도 하면 화를 낼 정도였고, 일요일은 시계를 보지 않고 실컷 잠자는 날로 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동물 임상 수의사로 개업을 한 뒤로는 일요일이라고 따로 쉰 적이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당시나 지금이나 농가에서는 소가 재산 목록 1호다. 그러니 혹여 응급상황이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비상사태 선포였다.

처음 병원을 운영할 때는 나도 시간을 정해놓고 여가를 즐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처음부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왕진 요청 전화를 받지 않는 날이면 집에까지 쫓아오는 분들이 계시니 이건 애초부터 맞지 않는 계획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휴일 낮잠은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여건이 되는대로 쉰다.

얼마 전에도 아침 예배가 끝날 무렵 서산과 태안 수의사님 중 어떤 분도 왕진할 수가 없으니 부득이 조합장님에게 전화드렸다. 소가 난산인 것 같다는 조합원님의 전화가 날아들었다. 망설임 없이 병원에 들러 난산수술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질탈에 난산으로 매우 힘든 상황 속에서 제왕절개수술로 무사히 출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작년, 어미 소와 송아지 모두 잃었던 아픈 기억의 조합원님 가족들은 맘 졸였던 시간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한 모습에 기쁜 얼굴을 하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너무 무안했다. 수의사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예나 지금이나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중요한 먹거리 산업한우, 이제 한우산업은 농촌경제의 중심이 됐다. 특히 한 마리 가격이 돈 천만 원이 되고 여기다 높은 부가가치를 생성하고 있다 보니 더 그렇다.

온 가족이 열심히 농촌을 지키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조합원. 그분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대동물 수의사로의 선택이 조금도 후회 없이 내 인생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서산한우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그 집 안주인부터 농수산대학에 입학했다는 아들, 그리고 이제 쉰이 되었다는 조합원님. 이제는 명실공히 농촌도 온 가족이 행복하게 일하는 희망을 만드는 곳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는 서산한우대학
2019년 서산한우대학 입학식 사진, 현재까지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다.

Q 서산한우대학이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다. 한우대학을 개설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현장을 나가다 보면 주인들이 약도 남용할 뿐만 아니라 실수도 많이 하는 걸 봤다. 하물며 자신들이 하는 방법이 최고라는 것을 듣다 보면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소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까닭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 나아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오히려 남의 집 까지도 잘못되게 만들고 마는 형편이었다.

사용 기술을 정식으로 가르쳐주고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라고 해서 서산한우대학을 설립했다. 벌써 7년째다. 무엇보다 강사님을 잘 섭외했던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교육을 통해 조합원들의 기술력을 몇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 가장 뿌듯하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반강제로 앉혀놨던 분들이었다. 하지만 한번 듣더니 정말 꼭 필요한 얘기만 한다우리 소들에게 내가 직접 하는 것을 강의해 주니 잊어버리지 않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교육생들이 아주 좋아하시더라.

심지어는 “1년 배웠더니 우리 소, 덜 죽였어라며 서로가 서로를 권유하기도 했다. 어떤 해는 온 식구들이 학생으로 오시기도 했다. 현재 우리 대학은 7년째 수업을 하고 있다. 졸업생이 1년에 무려 백여 명씩, 그것도 1년 단위로 끝나는 게 아니라 2년 다니고, 3년 다니고 또 다니고 그러시는 분들도 있다.

한우대학은 생산성으로 따질 때 돈으로 환산이 안 될 정도로 값어치가 높다. 개인의 재산도 늘어가지만, 서산시 전체로 볼 때도 엄청난 생산이다. 좋은 것은, 대학을 통해서 의식도 바뀌어 졌고, 또 조합에 대한 호감도도 가지게 됐다. 1957년도 설립 역사상 파란만장을 지나고 지금이 가장 행복한 걸음이 아닐까 싶다.

‘서산시 음암면 운암로 141-13’에 세워진 원스톱시스템 서산축협
‘서산시 음암면 운암로 141-13’에 세워진 원스톱시스템 서산축협 전경

Q 많은 갈등을 딛고 서산축협 조합장이 된 지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당시 힘들었던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잘 견디고 다듬어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아직 반석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무리지만 그래도 조합이 안정된 것은 무엇보다 감사할 일이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참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건강한 사람인데 혈압이 170까지 올라갈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였다.

파열음이 생길 2013년도에 나는 축협 임원을 맡고 있었다. 그때 좀 바른 목소리를 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어려움을 겪게 됐고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한번 해보겠다라고 해서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숨 막힐 정도의 상황 속에서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집행부에서는 노조가 생기니 거부감이 생기고. 결국 극한 노사대립으로 조합 회생절차까지 밟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 총회에서 이럴 바엔 해산하자라는 소리를 순식간에 채택해 버렸고,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결정이었기에 또다시 번복하느라 회원들과 함께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양대 노선이 생기고 혼란의 연속 속에 여러 가지 일련의 과정들이 무려 4년간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2019년 다시 두 번째 선거를 치르고 서산과 태안 축산조합원들의 연이은 선택으로 나는 결국 조합장이 되었다. 그때는 당선의 기쁨보다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가슴이 무거웠다.

신축년 새해가 되면서 그때를 다시금 되돌아보는데 감회가 새롭다. 협동조합의 한계점을 제대로 인정하고, 화해와 노력으로 큰 불협화음 없이 안정화 됐다는 것에 크게 감사하다. 이것은 조합장 이하 전 직원들과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난관을 극복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사이 현재 서 있는 이곳 서산시 음암면 운암로 141-13’에 신축 건물이 원스톱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세워졌고, 이제는 이곳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꿈과 희망의 보물을 얻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은 단연 경매우시장
조합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은 단연 경매우시장

Q 서산축협 축산종합센터는 원스톱으로 이뤄진 곳이라 조합원들이 상당히 편리하게 일을 볼 수 있다.

맞다. 여기는 원스톱으로 경매우시장, 사료창고, 축산기자재, 육가공실, 식당 등이 연결된 곳이다. 이 중에서도 우리 조합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바로 경매우시장인데 나는 늘 이런 시스템을 꿈꾸고 있었다.

과거에는 본인들이 직접 민간 문전거래를 했다. 그때는 아무리 소 값을 잘 받아도 꼭 속은 느낌이 들었다. 또 실제도 중간상인들이 이익을 남겨야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소를 팔려고 순서를 기다리려면 무려 두세 달이 걸려도 순서가 될까 말까 였다. 이것은 유통구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곳에서 소 한 마리 4만 원 수수료를 받고 팔아주는데 그 모든 것들이 일주일 안에 이뤄진다. 이처럼 조합원들이 여기만 오면 다 해결된다고 아주 좋아하신다.

특히 직영 식당은 조합원들 소를 팔아줘야 한다는 점과 함께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고기를 좀 더 싸게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어떻게 보면 협동조합이라는 것은 내부에서만 보면 축산인들에게는 최고의 이용 가치가 있고 좋은 기관이지만, 소비자들에게는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사는 기관이여라는 불신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는 곳과 축협의 기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은 식당밖에 없다.

내 생각은 그렇다. 한우프라자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어쩌면 절반 밖에 성공하지 못한 것과 다를바 없다. 서산한우대학을 통해 지식적인 방법을 배우고, 또 식당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고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축협이 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홈쇼핑으로도 진출하여 우리 서산의 질 좋은 한우가 전국상대로 유통망을 확대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렇듯 서산축협은 앞으로도 나날이 발전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줄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

서산의 질 좋은 한우가 인터넷 홈쇼핑으로 진출하여 판매되고 있다.
서산의 질 좋은 한우가 인터넷 홈쇼핑으로 진출하여 판매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농촌 마을 단위에서 본다면 축산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분들이 적극적으로 조합 일에 참여하다보니 잘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중간 중간에 파생된 단체들도 축협으로 집결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있다.

이제는 모든 게 제대로 되어가는 느낌이라 너무 편하다. 이 모든 것은 어려울 때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준 우리 조합원님들 덕택이다. 앞으로도 축협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조합과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부디 행복축산으로 조합원들 모두 아름다운 미래를 엮어나가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인터뷰를 마치는데 서산축협 최기중 조합장은 돌아보면 동물병원도 보람 있는 직업이지만 서·태안 축산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축협 조합장은 더 큰 보람이라며 활짝 웃었다. 부디 처음 마음 그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행복한 축산인들의 구심점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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