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나의 ‘하! 나두’ 건축 -④

계단에서의 석양. 음영
계단에서의 석양. 음영

학창시절 시간의 조각을 되새김질 하다보니, 학교에서 치룬 다양한 검사 중에 적성검사에 대한 추억이 제법 또렷하게 떠올랐다. 결과지의 다른 내용은 별달리 기억나지 않는데, 공간지각 능력이 매우 탁월한 수준이라는 내용과 그때 했던 농담까지도 생생하게 솟아났다. 사실 당시에는 용어도 생소했고 어디에 어떻게 활용될지 몰라서, '주차는 잘 하겠네.' 정도로 막연하게 받아 들이며 키득댔었다. 그리고 면허를 따보니 역시나 주차를 잘 하는건 맞았다.(웃음) 물론 건축 공부를 할때도 한없이 도움이 되었던 나의 적성이자, 큰 힘되는 메인 능력이었다.

현재는 건축과 관련된 경제적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건축을 짝사랑하며 팬레터를 쓰는 일반인일 뿐이다. 그런데 건축이라는 진국에 샤부샤부 마냥 살짝 발 적시고 나서 상상치 못했던 엉뚱한 습관 하나가 생겼다. 어디를 가든 건축적 사고의 반사작용으로 건물을 읽고 비상탈출 동선을 파악한다. 이유도 없이 저절로 자꾸만 그렇게 하게 되는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건물 읽기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건축 구조체는, 안전과 효율을 위해 척추처럼 세워서 믿음직하게 중심을 잡아두는 코어(core)’설계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포함되는 몇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누구나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엘리베이터([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처럼 가로나 사선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일반적인 수직동선으로 수렴), 피난계단, 화장실 및 설비용 배관(급배수로 등등) 정도는 한 묶음으로 묶어서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코어에는 튼튼함의 대장격인 구조 내력벽이나 기둥이 포함 될 확률도 높다.

이 작은 지식은 2개 층 이상으로 수직 이동을 하게 된다면, 엘리베이터와 계단과 화장실 위치를 한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간혹 세 가지가 한 번에 묶여 있지 않은 경우에는, 건물에 다른 코어가 또 있는지 확인해보면 급한 용무 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있지도 않고 겪지도 않아야 하겠지만, 건물 붕괴의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코어 가까운 쪽으로 대피한다면, 천장이 파손 되더라도 튼튼한 벽이 남아서 직각 삼각형 모양의 공간을 만들거나, 배관에 남은 수분 등의 도움으로 생존 확률을 높힌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 코어의 의미를 실전에 적용해 보자면, 건물의 코어를 통해 비상구와 화장실이 보이고, 생존 능력치가 약간 증가한다. 항상 접하는 건축이기에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건축을 배우고 나서야 돌이켜 보니, 적성검사 훨씬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올 곧게 그리시던 설계도면과 빼곡하게 채워진 청사진을 보며 선이 만들어 내는 공간을 선망했었나보다. 그리고 더 어린 시절 아파트 광고의 평면도 이미지를 보며 '이 방을 내 방으로 하고싶다.' 라며 상상하던 것이, 어쩌면 일종의 건축학 예습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받아 들였던 공간지각 능력이지만, 알고보면 꾸준하게 공간감에 매력을 느끼도록 하는 고마운 촉매제가 되어 주었나 뒤늦은 결론을 내려본다.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최하나 건축 칼럼니스트/전) 엄이건축/전) 서울건축사협회 서부공영감리단/전) SLK 건축사사무소/현) 건축 짝사랑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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