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45

다은이와 다연이 자매
다은이와 다연이 자매

 

설 연휴 전날,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한 남편과 놀이터에서 가족 상봉 후 다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점심에 과식을 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평일 오후 남편이 집에 있는 경우는 흔치 않으므로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식사를 준비하려다 말고 집 앞 공원으로 달려 나갔다. 30분간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며 공원을 걷고 뛰었다. 아무래도 한 끼 정도는 식사를 건너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긴 연휴를 앞두고 각자 조금씩 설레는 마음으로 둘러앉은 식탁이지만 다은이의 밥 먹는 속도는 세월아 네월아... 식탁에 앉아 아이들 밥 먹는 것을 돕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밥은 싫어하지만 동물은 끔찍이 좋아하는 다은이를 위해 밥 한 스푼에 동물과 관련된 내 추억을 하나씩 찬으로 얹어 주자! 그렇게 나의 추억 나눔이 시작되었다. 다은이의 눈이 반짝였다. 크게 한 입 아


엄마 어릴 때 마당에 칠면조, 거위, 청둥오리를 키웠어. 청둥오리는 연못에서 조용히 놀았는데 칠면조는 아니었어. 학교에 갔다 대문에 들어서면 칠면조가 푸루룩 소리를 내며 쫓아왔거든. 엄마는 대문 앞에서 다급히 외할머니를 부르곤 했어. 외할머니가 마당으로 나오면 엄마는 칠면조를 피해서 겨우 집 안으로 들어가곤 했지. 거위는 조용히 다가와서 고개를 쓰윽 내리고 콱 무는데 어느 날 외할머니가 발목을 물렸지 뭐야. 거위에 물린 부위에는 작은 이빨 자국과 함께 시퍼런 멍이 들었어. 또 한 숟가락 먹으면 다음 이야기 해 줄게다은이는 살짝 겁먹은 얼굴로 또 한 입 아


외갓집에서 키우던 개가 어느 날 새끼를 낳았어. 엄마 개는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 배꼽에 붙어있는 탯줄을 직접 이빨로 자르는데 한 번은 너무 짧게 잘랐나봐. 새끼 한 마리 배에 구멍이 크게 났지 뭐야. 뱃속에 있는 내장이 다 보였는데 외할아버지가 병원에 데려가지는 못하고 집에 있는 투명테이프를 붙여놨더라. 며칠 후 그 강아지는 결국 하늘나라에 갔어.” 다은이는 몹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또 한 입 아


엄마가 어릴 때 강아지를 키웠어. 하얗고 복슬복슬한 강아지 이름은 방글이였는데 식구들이 모두 예뻐했어. 그런데 갑자기 방글이가 안 보이는 거야. 찾아보니 집 옆쪽에서 쥐약을 먹고 죽어 있었어. 그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다은이는 슬픈 얼굴로 또 한 입 아


엄마 집 앞에는 개울이 있는데 예전에는 거기에 가재, 미꾸라지, 도롱뇽, 거머리 같은 것들이 살았어. 물이 점점 더러워지면서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졌는데 그게 너무 안타까운 외할아버지가 어느 날 다슬기를 엄청 많이 사왔어. 그 다슬기를 개울물에 뿌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다슬기까지 모두 다 사라져버렸대.” 다은이는 신기한 표정으로 또 한 입 아


엄마 어릴 때는 소를 키웠는데 가끔씩 소들이 탈출을 했어. 어느 날 외할머니랑 엄마랑 둘이 있는데 또 소가 탈출했지 뭐야. 소가 멀리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외할머니가 실수로 뒤로 넘어졌는데 갑자기 2번소가 할머니 쪽으로 달려오는 거야. 소가 외할머니를 밟을까봐 너무 무서워서 엄마는 눈을 꼭 감았는데 다행히 2번소가 점프해서 할머니를 밟지 않고 지나갔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다은이는 안도하는 얼굴로 또 한 입 아


예전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밭에서 일 하실 때 외삼촌이랑 이모들은 들판에서 놀았어. 어느 날 외삼촌이 뭔가를 가지고 신나게 놀고 있더래. 외할머니는 뭔가 싶어서 가까이 가봤더니 글쎄, 뱀을 잡아서 가지고 놀고 있었대.” 다은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또 한 입 아


엄마가 태어나기 전에 외갓집에서 누에도 길렀대. 뽕잎 먹고 사는 누에 지난번에 본 적 있지? 어느 날 셋째 이모가 뭔가를 쭉쭉 빨고 있더래. 그게 뭔가 싶어서 외할머니가 봤더니 이모가 빨고 있던 건 하얀 누에였대. 누에가 팅팅 불어 죽어있었다지 뭐야. 으 징그러워.” 덩달아 눈을 찡그리며 다은이가 또 한 입 아


외할아버지가 미꾸라지를 길러보고 싶었나봐. 마당 한쪽에 땅을 네모로 크게 파서 비닐을 깔고 거기에 미꾸라지를 키웠어. 겨울이 되자 물이 꽁꽁 얼었고 다음해 봄이 되자 얼음이 녹았는데 미꾸라지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대. 그 미꾸라지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다은이가 또 한 입 아


엄마가 집에 있는데 외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어.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외할아버지가 막대기를 들고 뭔가를 쫓아내고 있었어. 그건 너구리였지. 엄마가 너구리를 보니 털도 좀 빠져 있고 얼굴은 피부병에 걸린 것 같았어. 엄마는 너구리가 불쌍했는데 할아버지는 너구리가 텃밭에 있는 채소를 자꾸 훔쳐 먹어서 화가 났나봐. 할아버지가 막대기를 휘두르자 너구리는 재빨리 뒷산 쪽으로 달아났어.” 다은이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또 한 입 아


현애이모가 학생일 때 친구랑 산딸기를 따먹으러 산에 갔대. 산딸기를 따려는데 옆에 숨어있던 독이 있는 뱀이 갑자기 이모 손을 꽉 물었어. 외삼촌이 급히 오토바이를 태워 병원에 갔고 이모는 손이 퉁퉁 부어서 집에 왔어. 한동안 몸속에 있는 독을 빼내려고 이모는 수박을 많이 먹어야했어. 엄마는 그때 다은이랑 비슷한 나이였는데 외할머니한테 언니가 뱀에 물리니까 수박 많이 먹어서 좋다. 언니가 뱀에 또 물리면 좋겠다고 했대. 흐흐.” 다은이도 엄마를 따라 웃으며 또 한 입 아


이렇게 흑돼지의 탈출, 비료 포대 속에서 새끼 낳은 독사, 갓 태어나 바알간 쥐새끼들의 이야기를 한참 하다 보니 어느새 다은이의 식판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두 아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엄마의 말을 경청하고 가끔 궁금한 내용을 조잘조잘 물었다. 남편은 그 옆에서 신나게 아이들 입에 밥을 떠 먹여주고 추임새로 내 흥을 돋우었다..

저녁밥 대신 깊숙이 넣어 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과거에 도취된 저녁시간이었다. 가족들의 식사가 끝나고도 나는 소리로 빚어진 내 이야기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얼마간 홀로 둥둥 떠 있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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