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대 문단

김기숙/수필가. 수석동
김기숙/수필가. 수석동

나의 살던 고향은 모든 곳이 다 어릴 적 놀이터였다. 뒷산 산자락 밑에 할아버지가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 난 할아버지가 좋아 혼자 종일 라디오만 듣고 계시는 사랑방을 자주 들렸다. 밖으로 향한 사랑마루에서 내다보는 앞산의 경치는 정말로 한 폭의 풍경화였다. 마당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수호신이 되어 여름에는 그늘이 되어주고 가을 바심이 끝 난 마당에는 검불 속에서 빨간 닭들이 마음껏 홰를 치면서 벼 낟알을 주어먹고 아무 곳에나 계란을 낳는다.

가까이 있는 앞산과 뒷산은 높으면서도 우리들에게는 항상 만만찮은 산이었다. 산 아래에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도 있었다. 개울이 깊지가 않으니까 친구들과 신발로 고기와 가재를 잡아 돌맹이 집을 지어주고 더우면 멱도 감았다. 겨울 개울물이 얼면 나무판자로 만든 썰매를 타다 얼음물에 빠지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햇살은 점심때만 반짝 일뿐 산그늘은 종일 마을을 덮고 있어 여름 지나기는 괜찮았다.

친구들과 마당에서 앞산을 향하여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입에 대고 야~~호 야~~~호를 외쳐대면 되돌아오는 메아리 소리가 신기해서 목이 시어지도록 떠들면서 논다. 겨울이 되면

눈 녹은 뒷산으로 자주 놀러 가서 산자락에 눈 녹은 곳을 찾아 죽은 솔 나무뿌리를 대충 파놓아 아궁이를 만들어 놓고 솔걸 한 줌 주어다 성냥불을 그어대고 밑불을 만든다.

그리고 집이 제일 가까운 애덜 보고 집에 가서 고구마 몇 개 가자고 오라고 명을 내린다.

! 코쟁이야, 너의 집 고구마 통가리에서 고구마 좀 홈쳐오란 말여코쟁이는 코를 하두 많이 흘려서 지은 별명이다. 말 안 듣기루 이름 이 난 애라 고구마 가져오기는 영 글렀다. 고구마도 귀할 때라 순순히 가져오는 애가 읎다. 하는 수 없이 가위 바위 보를 허는 디 산이 쩌렁 쩌렁 울린다. 진애가 하는 수 없이 고구마를 가져왔다. 여럿이 먹기엔 부족 허지먼 그래두 그냥 봐 주었다. 솔 나무뿌리 옹이가 활활 타면서 고구마는 익기도 전에 타는 곳이 더 많다. 그래도 의리가 있어서 탓거나 말거나 나누어 먹으면 손과 입은 검기가 짝이 없다.

고구마를 먹고 젖은 신발과 발을 쬐노라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어른들이 쫓아 올라 오신다. 우리들은 잽싸게 산 이곳저곳으로 도망을 간다. 산이 놀이터였던 우리들은 산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누워 팥떡 먹기였다. 여름이나 가을은 주로 앞산으로 가서 싱아나 찔레를 꺽어 먹기두 허구 머루나 으름 넝쿨을 보면 사정없이 손으로 걷어 내구 따서 먹고 나머지 주머니를 채웠다.

뾰족이 서서 내려다보던 높은 산 그림자가 우리들을 재촉하고, 부엉이가 부엉부엉 가까이서 울어 댄다. 산에서 놀다 오는지 낮에는 독수리가 닭 주위를 맴맴 날아다니다가 마당에서 모이를 먹는 닭을 낚아채어 날아가는 것도 자주 보았다. 마당에서 한가로이 놀던 닭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독수리의 습격에 놀라 여기저기서 꼬꼬댁거리며 왔다갔다 좌불안석이다. 주머니를 채우고 나머지 덜 벌어진 으름은 손에 꼭 쥐고 와서 쌀겨 속에 묻어놓고 으름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매일 확인한다.

햇빛 한 점 없는 산속은 산 그림자로 인해 어둠침침하다. 아득히 먼 마을은 석양이 물들어 어렴풋이 보인다. 산 그림자 드리운 곳에서 이름 모를 밤새도 지저귄다. 우리들은 무서워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을을 향하여 누가 뒤오고나 말거나 쉬지도 않고 달려내려온다. 산골 길이라 돌맹이가 울퉁불퉁 발길에 차인다. 마음만 급하고 빨리 달린다고 해도 마을과 석양은 가까워지기는커녕 더 멀어진다. 간신히 산골길을 내려와서 벌겋게 눈썹만큼 남은 석양을 바라보며 무서움을 떨쳐버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우리들처럼 산그림자도 산짐승이 무서운지 외로움 때문이지 늘 석양을 앞세우고 온다. 눈이 많이 오면 앞산 뒷산은 설산으로 덥혀 산토끼들의 놀이터였다. 그 많던 토끼들도 잘 있는지?

어둠보다 더 무서웠던 산 그림자가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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