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 기고하면서 변화된 지방자치와 행정에 관심이 가 정치를 하게 됐다

임재관 서산시의원
임재관 서산시의원

서산시대 핫 코너 릴레이인터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서산시의원의 근황과 생각들을 직접 묻고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늦깎이 고시 준비생이 세상과 연결되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공부에 매달린 숱한 시간, 힘들었지만 꿈이었기에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연달아 준비했지만 끝내 실패하면서 삶의 끈을 놓고 싶었다는 서산시의회 임재관 의원은 내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지인들 덕분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Q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내가 태어난 곳은 태안읍이고 3살 무렵 서산군 동문리1구의 옥녀봉 아래 전매서 부근으로 이사를 왔고, 서산국민학교 입학과 5학년때 전학, 부춘국민학교에서 졸업을 하게 됐다. 조금씩 사춘기가 몰려올 무렵의 전학이라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근심과는 달리 3형제 중 장남으로서의 체면을 구기지는 않았다.

사실 형제만 3명이다 보니 우리집은 여느 집처럼 아기자기한 면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아래 2살 터울인 동생의 합리적이면서 사회성 좋은 성격과 9살 터울의 동생 역시 합리적이고 의리파인 막내 덕분에 동네에서는 제법 우애가 돈독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곤 했다. 지금도 내가 가진 가장 큰 후원자라면 내가 하자는 일에는 결코 토를 달지 않고 응원해 주는 동생들이다.

Q 학창시절 잇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서령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교 진학을 결정해야 하는 예민한 시기때였다. 그 당시는 국제기능올림픽 유행으로 공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나름 고심 끝에 천안공고를 가기로 결심하자 담임선생님은 부모님을 면담하러 집으로 찾아오셔서 아이 장래를 생각하여 서령고등학교 장학생으로 보내라고 설득하셨고 결국 나는 담임선생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서령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리고 고2 때는 국군의날 행사를 보고 군인되고 싶었지만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라도 여러 루트로 군인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대학동아리에서 상영해주던 5.18 광주항쟁 영상의 잔혹함을 보고 포기를 했다.

Q 고등학생 때 혈투를 벌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혈기왕성했던 고3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7반 반장이었다. 우리 반 친구들이 1층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1반 반장이 우리 반 친구들을 모두 내쫓고 자기반 학생들을 먼저 (신체검사)받게 한다는 제보를 들었다. 뒤돌아볼 것도 없었다. 그 즉시 내려가 당시 태권도선수였던 1반 반장을 3층 화장실로 오라고 하여 혈투를 벌였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정학 처분의 위기까지 가게 됐지만 당시 문희태 담임선생님의 배려와 구제로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쨌든 그후 우리는 아주 가까운 의리파 친구가 됐다. 그 당시 1반 반장이 바로 김완식 친구였는데, 현재 그 친구는 우리들요양병원 장례식장을 운영하며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얼마 전에도 만나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혈투 사건으로 나는 우정 외에도 스승님을 찾아뵐 수 있는 기회를 또 하나 얻었다. 당시 제자를 지켜주셨던 문희태 선생님을 나는 설날과 추석 때마다 찾아뵙고 안부 인사를 드리니 말이다.

Q 청년 시절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

대학에 입학하면서 내게는 꿈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서산 군수가 되는 것이었다. 병역의무를 마치고 대학 3학년 2학기가 됐다. 당시 법과 학생들은 고시반에 들어가거나 조용한 사찰에 가서 공부 또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행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학구열이 높은 편이었다. 서산농고 제6회 졸업과 농과대학을 마치시고 서산군 산림조합에 근무하신 당신은 우리 3형제에게 너희들이 배우고자 하면 부모된 도리로 마칠 때까지 가르쳐 줄 테니 걱정말고 학업을 이어가라. 다만 학업이 끝나면 그때는 스스로 알아서 살아라고 말씀하셨기에 나 또한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 위해 대학원 법과에 진학하여 행정고시를 병행했지만 효율성이 떨어져 결국 휴학을 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학업을 중단한 상태라 부모님의 지원이 끊겨버렸다. 당장 생활비 때문에 고등학교 입시학원에서 사회과목 강사로 취직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원 강사 수입이 짭짤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다. 그러던 찰나 다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일어났다.

Q 5번의 사법고시 실패 후 공인중개사학원을 개원했던데?

틈틈이 고시 공부를 하던 중 지방행정의 변화로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구성되는 등 과도기가 있었다. 더 결정적인 건 대학 시절 함께 자취하면서 지냈던 친구가 늦깎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학원 강사를 하면서 모은 돈도 있었고, 친구의 권유와 지방자치 변화로 행정고시 대신 늦은 나이지만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합격을 목표로 1999년 겨울, 내게 연결된 가능한 모든 것을 단절시키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 1.5평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오로지 사법시험 합격만을 위해 살았던 7년여 시간, 지금 와서 회고하니 5차례의 사법시험 실패로 세상을 마감하고자 극단적인 결심까지도 했지만 사람의 목숨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그때의 실패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정신적 육체적 피폐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길을 찾다 보니 20091, 서산으로 내려와 친구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공인중개사전문학원 서산광장고시학원을 설립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감사한 건 학원에서 공부했던 많은 분이 합격하여 현재 충남 등지에서 공인중개사로 활동하고 있다.

Q 나의 사랑 나의 결혼

내 나이 56세에 결혼을 했다. 그동안 수차례 결혼 소개가 있었지만, 1회의 만남뿐 성사는 되지 않았다. 상대 쪽에서 옷 입은 차림새나, 그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간걸 생각해 성격 등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친구들의 소개로 201772, 지금의 내 아내를 만났다. 지천명이면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에 나는 하늘이 아닌 지금의 아내를 알았던 것이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다.

결혼후 나의 삶은 행복과 자신감으로 충만 그 이상이다. 더군다나 아내와는 취미생활도 같아 시간만 있으면 등산과 여행을 한다. 다행인건 용인시에서 온 아내에게 서·태안의 아름다움을 알려줄 수 있어 더없이 좋다.

여기서 한가지, 부끄럽지만 결혼하니 좋은게 참 많다. 내가 집을 나설 때면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주는 거, 이따금 아내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하는 거다.

Q 서산시의원이 되기까지

학원을 운영하면서 지역 언론사에 부동산과 법률상담을 하게 되다 보니 변화된 지방자치와 서산시의 행정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106월 지방선거 기초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게 됐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몇 달 후 () 더불어민주당 서산·태안 지역위원회 조한기 위원장이 학원으로 찾아와 입당을 권유하게 됐고, 고민 끝에 민주당에 들어가 사무국장 일을 맡아 정당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곤 20146월부터 지금까지 민주당 소속 재선의원으로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Q 의원이 되고 나서 힘들었던 점은?

정치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는다. 그때마다 불편함을 없애주거나 최소화해줘야 하는데, 이를 해결해 주지 못할 때가 너무 송구스럽다. 그리고 사회생활 중 복잡한 인간관계다. 사람은 자고로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지금껏 살았다. 그런데 자신의 실리와 욕심에 따라 양보는 고사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지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Q 서산시가 나가야 할 방향은?

서산시가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고, 시민들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게 될까를 늘 고민해야 된다. 현재 본 예산 기준으로 서산시의 재정수입 자체 충당능력을 나타내는 세입분석지표를 살펴보면, 일반세입 중 지방세 1,563억 원과 세외수입 230억 원을 의미하는 재정자립도는 겨우 24.7%에 불과하다. 일반회계 세입 8,930억 원 중에서 지방세와 세외수입, 지방교부세 2,521억 원, 조정교부금 350억 원으로, 서산시가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자주도60.9%이다.

대산5사에서의 지방소득세 징수액이 2018620, 2019567, 2020237억으로 상당히 감소하고 있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0:20으로 지방세가 전체 조세의 20% 수준이다. 앞으로 정부는 지방세 비율을 70:30으로 개선해야 한다. 또한 서산시는 세수입 증대에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재정 부문에서는 관광재정 제도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관광 활성화를 위하여 지역관광기금 조성 등 관광 자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재정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현안은?

난개발의 상징이 될 수석동 도시개발문제, 시청사이전 여부 문제, 해미 비행장 민항유치, 당진 석문산단과 서산 대산항의 인입철도 연결문제, 대산항 국제여객선 취항여부, 해양생태도시로서의 가로림만 해양정원조성, 중앙도서관 건립 등 서산시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도를 높일 큰 사업들을 슬기롭게 풀어내야 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서산시 일부 정책사업 중 원점 재검토 및 과감하게 정리해야 할 사업들이 몇 개 있다. 따라서 서산시는 전시성 정책이나 투기를 유발하는 정책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정책수립으로 건강과 행복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 서산·태안은 시·군이 폐치분합하는 연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서산·태안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구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만남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부디 건강 잘 챙기며 행복한 설 명절 보내길 기원한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