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복길이 아빠’로 불렸던 서산시의회 최일용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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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 ‘복길이 아빠’로 불렸던 서산시의회 최일용 의원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1.01.14 0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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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물길을 잘 만드는 의정활동 하고 싶다"
서산시의회 최일용 의원
서산시의회 최일용 의원

서산시대 핫 코너 릴레이인터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서산시의원의 근황과 생각들을 직접 묻고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중학교 시절, 이름이 일용이라는 이유로 사춘기 때부터 전원일기의 복길이 아빠로 불렸던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일용이라는 이름이 촌스럽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름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도 이름 석 자를 손쉽게 알릴 수 있어 본인은 아주 좋았다고 했다.

시민들에게 행정의 물길을 만들어 살기 좋은 서산시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최일용 서산시의원을 만났다.

Q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내가 태어난 곳은 공기 좋고 물 맑은 서산시 음암면 도당리 843번지, 행정구역상 면 소재지에 속해 있었음에도 논을 건넛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등뼈 같은 두 손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흙을 파셨다. 31녀 중 셋째로 세상에 태어난 나는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돕기 위해 형님들을 따라 소 꼴 베기. 땔감 만들기, 모내기할 때 모나르기, 가마니 만들 새끼 꼬기 등을 하면서 자랐다.

그때는 또 왜 그렇게 눈이 많이 내렸을까. 그때마다 우리 형제들은 각자 구역을 나눠 옆집보다 더 빨리 더 깨끗하게 경쟁하듯 제설작업을 하곤 했다. 그만할 때는 주로 싸우기도 했을텐데 우리는 서열이 있어 그런지 그다지 싸움을 했던 기억은 없다.

Q 학창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친구들 기억보다 부모님에 대한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아버지께서 논에 약을 치러 나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몇 년간 병원 생활을 하셨다. 그로 인해 어머님도 병간호로 집을 비우시게 됐고.

부모님이 없는 집안은 설렁하다 못해 눈물이 날 만큼 외롭고 쓸쓸했다. 형님과 나는 학교를 마치면 아버지가 하지 못한 논농사를 밤이 늦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된 노동의 대가도 그리움을 잊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울지 않고 꿋꿋했던 것은 부모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보살펴 주셨던 외조부모님 때문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하늘나라에 계신 두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렇게 보고픔을 견디며 생활하던 몇 년간이 속절없이 흘렀고, 아버지는 장애의 몸을 이끌고 퇴원을 하셨다. 그렇게 당당하셨던 내 아버지가 장애인이 되다니. 나는 차마 부축을 받으며 대문을 들어오시던 아버지를 볼 수 없어 부엌에서 멍하니 먼 곳만 바라봤다. 그때만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Q 부모님의 교육관과 나의 교육관

학창시절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가 몇 번 있었다. 사실 우리 집에는 특별한 가훈이 없었다. 부모님께 물어봐도 한결같은 대답 성실아니면 정직’.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신들 삶이 바로 성실과 정직이셨다. 큰소리 한번 내지 않으시면서 가정교육에 유달리 신경을 쓰셨던 우리 아버지. 지금 내가 당신들 뜻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되돌아 봐 진다.

내게는 두 딸이 있다. 언제나 품 안의 자식일 것 같았던 큰아이는 현재 경찰의 길을 가고 있고, 작은딸은 대학교 졸업반이다. 우리 부모님처럼 성실과 정직에 이어 나는 정리정돈하나를 덤으로 강조하는 아버지가 됐다.

어떤 집을 짓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를 다지는 것.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그 위에 아무리 화려한 집을 지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시작이 바로 정리정돈하는 습관이라 생각한다.

Q 청년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어떤가?

음암초·중학교 그리고 서령고를 거쳐 한남대를 졸업하고 첫 직장생활을 태안에서 시작했다. 거주는 서산시 음암면에서 했지만 대부분 여가를 직장 동료들과 보내다 보니 지역에서 친구, ·후배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술집에서 모처럼 친구를 만났는데 술자리가 계속되는 동안 동네 많은 분이 오갔고 같이 있던 친구는 연신 인사하기에 바빴다. 나는 그때마다 그 친구로부터 작은 목소리로 누구인지 확인해야 했다. 바로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동네에서 내 존재는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그 친구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번화가 한 가운데에 사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섬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역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과 그로 인해 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나 자신이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달라졌다. 음암배구동호회가 창단되면서 활동하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역 내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게 됐다. 때로는 너무 많은 단체 활동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내 노력으로 그 단체가 발전한다는 느낌은 분명 내겐 큰 보람이었다.

Q 나의 사랑 나의 결혼

아내는 첫 직장으로 제2금융권에서 일할 때 만났다. 3년 넘는 연애 기간을 끝으로 24살 그녀와 결혼했고 햇수로 벌써 25년째다. 아내는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다. 특히 남편의 의견을 누구보다 잘 따라주는 것은 물론, 내 작은 장점도 큰 것으로 생각하는 내조의 여왕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아준 작은 거인 내 아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관계로 내 정치 활동이 아내의 직장생활에 많은 제약을 주고 있는 것에 늘 미안한 마음이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낯간지러워 못한 진심으로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고 싶다.

Q 정치를 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지?

어떤 분은 먼저 목표를 정하고 정치인의 길을 준비하는 분이 있고, 또 어떤 분은 우연한 기회에 정치에 입문하고 난 후 어떤 일을 할지 목표를 정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하던 차에 주변에 계신 분들이 정치의 길을 열어주셔서 시의원에 출마하게 됐다.

나는 행정의 물길이 바로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행정의 물길을 잘 만드는 의정활동을 하고 싶다. 이것만 잘 만들어도 대지에 골고루 물을 대줄 수 있다. 이처럼 행정의 물길 즉 제도를 잘 만들어 서산시민들에게 효율적으로 공정·공평하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래질을 하듯 집행부는 삽자루를 잡고 의회는 양쪽 줄을 잡아, 때론 시민의 욕구가 있는 곳으로, 때론 시민이 가야 할 곳으로 방향을 잡아 당겨주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힘이 세다고 지나치게 자기 쪽으로만 끌어당기거나, 또 집행부가 삽을 댈 수 있는 여유조차 주지 않고 서로 당기기만 하는 일이 없도록, 서로 조화와 배려를 통한 의정활동을 서산시 12분의 의원님과 함께하고자 한다.

Q 시의원이 되고 나서 힘들었던 점은?

모든 것이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두 가지가 특히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나는 나의 잘못으로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야기될까 그것이 힘들었다. 의원이 되고 곧바로 행정사무 감사와 시정 질문, 예산심의 등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특히 그 내용이 100% 맞는다는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집행부의 업무를 잘못 지적했을 때 오는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들. 또 잘못된 예산심의로 꼭 필요한 예산이 삭감되어 당장 필요한 곳에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오는 시민들의 상실감 등이 그것이었다.

둘째는 행정과 주민분들의 욕구와의 간극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의 문제였다. 원리원칙대로, 규정대로 하면 될 일이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못하다. 주민의 입장과 행정의 입장이 서로 다를 경우 그 자체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권을, 행정은 법과 규정에 따른 현실적 한계를 주장하는 것이어서 이런 문제에 봉착하면 참으로 답답하고 어렵다.

이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은 특별한 해결방법 없이 내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계속 가지고 가야 할 어려움인 거 같다.

Q 서산시가 나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우리 서산은 농업과 산업이 공존하는 도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서산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비중을 높여야 할 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따라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우량 기업을 많이 유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에게는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지키고 되찾는 일 또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여기에 농업은 양적인 성장보다는 고품질,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육성해 나가야겠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산시와 농업인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한편 서산시 동 지역의 균형발전과 면 단위별 특색사업을 개발하여 서산시 전체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 나가는 일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은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인 만큼 지금 당장은 극복을 위한 일과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Q 우리 서산시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현안은?

아무래도 지역구를 기반으로 선출된 신분이기에 지역구에 대한 현안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성연면은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정주여건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테크노밸리 내 주민과 원주민이 함께 호흡하며 화합해 가기를 소망한다.

음암면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박첨지놀이가 음암면에 있다. 이것을 중심축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고, 부장리 고분군 사적공원화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운산면은 국보 제84호인 마애여래삼존상을 포함한 보물, 사적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한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특히 생애주기별 산림휴양복지숲 조성사업과 함께 체류형 관광객을 늘려 서산시 관광의 중심축으로 발전시키고, 지역주민의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우리는 너무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꼭 백신과 치료제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모두가 서로를 위로하고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성숙한 서산시민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서산시 발전은 공무원들과 특정인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시민여러분 모두가 서산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신다면 서산시가 더 빨리, 더 크게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모두 조금만 더 힘내시고 마음을 모아주시기를 당부드리며 신축년 한해 늘 건강하시고 더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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