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읽기-27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겸재 정선/국보 제216호/79.2×138.2cm/삼성미술관 리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겸재 정선/국보 제216호/79.2×138.2cm/삼성미술관 리움

추워도 이보다 더 추울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난 밤 차에 두고 온 것을 가져온다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던 남편이 차 안에 있던 물병이라며 내게 보여준다. 영하 17도의 날씨에 차 속에 있던 물병은 꽁꽁 얼음이 되어있었다. 그날 밤 서울에는 폭설이 내렸다. 그렇게 눈이 많이 온건 몇 년 만이었다.

폭설이 내린 첫날, 나는 차를 타고 가며 눈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잠시 아렌델(겨울 왕국의 엘사가 사는 곳)에 온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너무 환상적이어서 현실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즐기며 좋아만 했던 내게 그날의 거대한 눈은 모든 것을 마비시켜 버렸다. 눈이 펑펑 오던 그 날 하필이면 내가 고속도로에 있을 게 뭐람!

차는 거북이걸음을 하며 20분 만에 올 거리를 자그마치 2시간에 걸려 집 앞에 도착했다. 늦은 저녁 도시는 산속처럼 고요했다. 하얀 눈 위에 그려진 도시의 풍경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도시의 여백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치 한편의 수묵화 같았다.

그리고 주말을 맞았다. 추워서 나갈 엄두를 못 내던 나는 갑자기 눈 쌓인 산에 가고 싶어졌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녹지 않은 눈 속을 걷는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려 정선이 그린 인왕산을 보러 부암동으로 갔다. 인왕산 하면 겸재 정선 아니던가.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은 우리나라 고유의 진경산수화 풍을 만들어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과서에도 나오고 논술시험에도 등장하기도 하는 진경산수화는 도대체 왜 유명한 것일까? 이것은 바로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 경치, 즉 실경을 보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고유의 화풍으로 산을 직접 답사를 하여 그리는 이 방식은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운송수단도 없었던 당시에는 말이다.

하지만 정선은 친구 이병연 덕분에 당대 최고의 경치라 이르는 금강산을 함께 오르내리며 친구는 시를 쓰고 정선은 경치를 감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바로 훗날 진경산수화 탄생의 배경이 된 한 화가의 경험재였다.

진경산수화 풍을 만들어 낸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 자리에서 출생했다. 가난한 양반의 맏아들로 태어난 정선은 숙종 때 영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김창집의 추천으로 도화서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조선에서는 국가의 의식이나 행사, 산수, 초상화 등을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도화서를 두었는데, 정선은 38세경 도화서에 들어가 58세 때 청하 현감(포항)을 거쳐 65에 양천현령(5), 81세에 종 2품으로 동지중추부사(현재 차관보)가 된 최고의 화가였다. 그의 호는 겸재’, 겸손한 선비라는 뜻으로 이름에서 그의 실력과 인품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는 국보 제216호로 지정되어 있다. 1751년 그의 나이 76세에 수묵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한여름 비가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림을 바라보니 진한 먹으로 그린 봉우리의 육중함, 과감한 구도와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화면 위까지 꽉 찬 바위와 잘려나간 봉우리, 툭 잘린 아래의 배경, 이건 마치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사진처럼 생생하고 현장감 있다. 대담한 구도와 먹의 강렬한 흑백대비는 마치 바로 앞에서 바라본 듯한 현장감이 느껴져 전율이 일어난다.

나는 엄지와 검지를 펴서 사각형을 만들어 본다. 멀리 효자동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한쪽 눈을 감고 인왕산을 보면 이런 모습일까?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떠났던 2021년 겨울 눈, 그 속에서 만난 인왕산은 매우 추웠다. 나는 정선이 그린 인왕산의 한 자락 중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상상해 보았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인왕제색도 그림 오른쪽 아니면 아래쪽에 보이는 폭포와 집이 보이는 그곳일까?

내가 직접 본 인왕산 바위는 모두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폭포도 모두 얼었다. 하지만 이곳의 푸르름은 봄이 오면, 아니 여름이 오면 더 멋질 것 같은 기대감을 줬다. 그런데 이 절경을 정선은 왜 비가 오고 난 뒤 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표현했을까?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리던 그해, 그의 절친한 벗 사천 김병연은 노환으로 1751529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병연은 정선보다 5살이나 많았지만 서로의 재능을 존중한 60년지기 친구였기에 그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는 짐작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실제로 김병연이 죽기 며칠 전 계속 장맛비가 내렸다고 한다. 한 친구는 시를 썼고 한 친구는 그림을 그렸던 두 사람의 우정. 한여름의 비는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낸 눈물을 대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는 아득한 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또 아니었을까?

정선의 인왕제색도에는 진경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심상까지도 담겨 있다.

하얗게 눈이 덮인 인왕산을 보며 며칠 전 폭설이 오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여고 동창들과 단톡방에서 이야기 중이었다. 눈이 오는 사진을 제일 먼저 친구들에게 전송했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랄까. 함께할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친구들아~ 겸재와 사천처럼 그대들은 글을 쓰게나는 그림을 그리겠소. 그리고 우리 좋은 날 만나  커피 한잔하오!!!”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