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부재, 가정이 속박의 굴레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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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 가정이 속박의 굴레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 서산시대
  • 승인 2021.01.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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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방법의 문제를 개선할 때 행복한 가정의 발판이 된다
특별기고
김대현의 통하는 솔루션-①
소통전문가 김대현/한국가정문화연구소 소장/방송인/Square consulting 대표
김대현 소통전문가/한국가정문화연구소 소장/방송인

가족이란 의미는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였는가는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가족관계가 어떤 틀이었는가에 따라 이후의 수많은 인간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더 쉽게 말하면,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아이는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자존감이 높게 형성이 되고,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존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좋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런데 양육환경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 아이는 그런 환경에 태어난 것이다. 좋은 환경에 태어나 자존감이 높게 형성된 아이에 비해 자존감이 낮게 형성된 아이는 아무래도 조금은 더 힘들게 타인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행복의 시작일수도,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다.

왜 놀라시는가? 가족이 불행의 시작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운가. 사람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그 관계는 태어나서 엄마로부터, 그리고 자라면서 부모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습득할 수 있다. 그런데 유아기 때부터 부모로 인해 잘못된 영향을 받는다면, 가치관이 왜곡되고 성격 형성이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줄 모른 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세상에 아이들이 불행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부모들은 의외로 많다. 바로 이런 경우 가족이 불행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소심한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아이는 소심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소심하게 키워졌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첫째 아이는 첫째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첫째로 키워진다. 둘째도 둘째로 키워진다. 그래서 첫째들은 첫째들끼리 비슷하고 둘째들은 둘째들끼리의 특성을 공유한다.

따라서 원하지 않았는데 소심하게 키워진 아이는 대인관계에 유난히 힘들어 할 수가 있다. 그런 특징들이 성인이 되어 타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 아이에게 가족이란, 행복의 원천이기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본인도 부모도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떤 가정이든 어느 정도의 문제는 늘 있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결은 작은 문제가 큰 문제로 확대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바로 소통이다. 가정의 문제들은 소통이 원활할 때 쉽게 해결되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런 문제들이 점점 커져서 결국에는 더 큰 문제를 낳는 경우가 많다.

흔한 말로 부부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 누가 봐도 집안이 잘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크고, 집안에서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부부를 우리는 궁합이 맞는다고 말한다. 그런 부부를 찰떡궁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찰떡궁합이 되려면 세 가지 궁합이 맞아야 한다.

첫 번째는 속궁합이고, 두 번째는 겉궁합이다. 그러면 세 번째 궁합은 무엇일까? 학자들이 발견한 이 궁합은 바로 학명으로는 3의 궁합이라고 하고 세간에서는 말 궁합·대화 궁합이라고 한다. 부부가 오랫동안 잘 지내게 해주는 궁합이 바로 대화 궁합이다.

통하는 기쁨 중에서 으뜸은 말이 통하는 기쁨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친구가 된다. 말이 통해야 직장상사나 부하직원과도 친해진다. 가족도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더 살갑다. 부부가 30세에 결혼하고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무려 70년을 같이 사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70년을 같이 살 수도 없겠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소문만복래소통만복래로 바꿔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가화만사성의 근원은 부부만사성이기도 하다.

문제는 부부나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는 모양 혹은 격을 말투, 말씨라고 한다.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아이들과 햄버거 가게에 간 적이 있었다. 영어가 짧은 아버지를 대신해 아이들이 햄버거를 주문했다.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그 가게 사장이 동양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영어를 좀 잘했다면 주인에게 항의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주먹다짐을 벌였을 수도 있다. 그 캐나다 사람의 말투나 말씨 때문이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어도 우리를 무시하는 말투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를 주고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가 부부끼리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에 여과 없이 고스란히 사용되고 있다. 행복을 부르고 평화를 가져오는 말투가 있는가 하면, 화를 부르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조차도 나의 말투가 어떤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폭력적인 대화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면,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폭력적인 대화를 자주 하게 되면 가족들은 무력증과 우울증이 생기고 심지어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평생을 우울하게 살아갈 수 있다.

언어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가해자가 가해자인 줄 모르고, 피해자가 피해자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장시간 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과 없이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소통 부재나 잘못된 언어습관이 부른 재앙이라 할 수 있다. 가정이라는 편안한 둥지가 속박의 굴레도 될 수 있음이 확실해지는 대목이다.

대화방법의 문제를 개선할 때 행복한 가정의 발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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