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딛고 일어섰지만 지독한 코로나 때문에 다시 쓰러질 것 같아요”

구두 수선공 이선호(61) 씨
구두 수선공 이선호(61) 씨

서산시 읍내 312 카네기모텔 입구에는 지난해 10월경부터 2평 남짓 작은 구두수선집이 생겼다. 하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지나는 자동차의 경적만 가끔 들릴 뿐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곳을 지키게 된 구두수선집 주인장은 의족을 찬 채 구두를 수선하고 있는 이선호(61) 씨다. 무뚝뚝한 얼굴과는 달리 털털한 성격의 이 씨는 4개월 전, 지금 곳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구두수선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이 도로정비가 나는 바람에 200만 원의 보상금을 받고 가까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서산시 읍내 3로12 카네기모텔 입구에는 구두 수선공 이선호(61) 씨의 작업장이 있다.
서산시 읍내 3로12 카네기모텔 입구에는 구두 수선공 이선호(61) 씨의 작업장이 있다.

11일 날 본 이 씨의 모습은 지난해 5월에 본 모습과는 달리 많이 지쳐있는 듯했다. 기자를 알아본 이 씨는 대뜸 아 오랜만입니다. 안 죽고 사니까 이렇게 보네요. 다니다 보면 다들 곡소리 나죠?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뭔 놈의 구두를 수선하겠어요. 그런데다 이곳으로 어쩔 수 없이 이사 오다 보니 아직 구두수선집이 있는 것조차도 모르는 분이 태반인데……. 더구나 우리는 구두 신는 젊은 분들이 지나다녀야 굽이라도 갈지 2단계 되면서는 아예 다니는 사람이 없어요라며 작은 히터 위에 올려진 가래떡을 뒤집었다.

사람도 없는데 심심하니 주전부리로 가래떡이나 먹으면서 시간 보내요. 손님 없다고 안 나오면 더 자리 잡기 힘드니 죽으나 사나 꼬박꼬박 자리는 지키고 있어요. 요즘 같으면 혼자 사는 것도 밥 먹기 힘들어요.”

작은 박스안에서 아무리 기다리도 손님은 오지않고...

어쩌다 바이러스 하나에 전 세계가 추풍낙엽이 됐는지 모르겠다

성한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날씨에 구두 수선공 이선호 씨는 의족을 차고 출퇴근을 한다. 그는 혹시나 도로에서 미끄러지면 그나마도 구두수선도 못할까 봐 조심조심 움직인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작년 5, 당시 기자를 만난 이 씨는 씩씩하게도 코로나19 여파로 수입이 70%가량 줄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견디면 좋아질 것이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8개월 후인 지난 그날은 수입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제 이 돈으로는 밥조차 사 먹기 힘들 정도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선호 씨는 중학교에 막 입학할 당시 몸집이 워낙 작은 관계로 그만 기차에서 내리다 문틈 아래 철로로 떨어져 다리를 잃었다. 그때부터 목발을 짚고 학교에 다녔고 친구들의 놀림과 돌팔매로 늘 맞아서 퉁퉁 부은 몸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했다.

중학교 졸업 후 봉제공장 재봉틀 아래 쪼그려 앉아 밤새 쪽 가위질을 했는데 그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이 씨. 이유는 더는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던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는데, 이런 거로 보면 장애와 행복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선호 씨는 새해 들어서는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돌로 맞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심신이 아프다돈이 뭔지 모르겠다. 어쩌다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어 아무도 오지 않는 박스 안에서 종일 거리를 바라봐야 하는지, 어쩌다 우리가 바이러스 하나에 전 세계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야 하는지……. 요즘은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버겁다고 고개를 숙였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보살피기 위해 읍내동 카네기모텔 앞으로 이전해 새해를 맞은 구두 수선공 이선호 씨.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착하게, 호랑이처럼 용감하게 세상을 살아라라는 뜻의 이름 석 자도 이제 무색하단다.

그나마도 마음 놓고 구두수선집을 운영하는 것은 집으로 찾아와 주시는 요양보호사님 덕분이라는 이 씨는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이어질지 두렵다. 이 직업을 엎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자니 하루하루 견디는 게 또 힘들다.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난 5내 일터가 있고,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던 이 씨의 웃음이 언제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까.

겨울 매서운 바람이 이 씨의 구둣방을 한차례 두드리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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