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읽기-26

봉산탈춤 탈
봉산탈춤 탈

코로나로 매일 확진자 수는 1000명이 넘어가고 심지어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등장으로 인터넷은 떠들썩했다. 그러다 발견한 어느 사진, 하얗게 눈이 쌓인 들판을 동물들이 평화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찍은 장면이었는데 지친 내 마음을 녹여 주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 속 동물이 뛰어다니는 것을 대하자니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기막힌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순간 ~ 나도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 밖으로!!!’

그리고는 잠시 여행을 상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동물들이 뛰어노는 그 사진은 알고 보니 겨울 배경에 동물을 합성해 만든 작품이 아닌가! 결국 이 작품에 내려진 최우수상은 취소되고 말았다 한다. 육아로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던 그 사진, 그것은 실로 충격이었다.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장면이었는데.

믿고 싶지 않았다. 최우수상이 조작된 사진이었다니. 이번에는 발각이 되었으니까 망정이지 그렇다면 혹시 다른 사진도 합성?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의구심마저 고개를 치켜들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 웃픈(웃기고도 슬픈) 현실이다.

그때였다. 컴퓨터 화면에 펭수가 나타난 것이. 한국에 사는 가상의 펭귄 캐릭터 펭수!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펭수를 클릭하게 했다. ‘그래 펭수 너를 보며 웃는다정말 펭수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네 살 된 둘째는 뽀로로를 보고 웃고, 나는 펭수를 보고 웃고. 내가 본 영상은 여름쯤 촬영된 것으로 펭수가 무형문화유산을 배우고 있는 장면이었다. 커다란 덩치의 펭수가 따라 하는 게 어설프고 너무 귀여워서 나도 그만 따라 웃고 말았다.

가만 보면 참 이상하다. 캐릭터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서 감동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웃고 울기도 한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캐릭터 속 인물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공감하고 즐길까?

우리나라 캐릭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 후기 서민문화 탈놀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 속 펭수가 배우는 봉산탈춤은 국가 무형문화재 17호로 등재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탈이 등장한다. 그 탈들은 오늘날의 캐릭터와 매우 흡사하다. , , , 수염, 머리카락, 주름, , 흉터, 모자 등 얼굴의 생김새만으로 캐릭터를 만드는데 아주 간단하지만, 그 표정에는 인물의 계급과 성격까지 드러나 있다.

봉산탈춤에 등장하는 탈은 취발이, 노장, 사자, 원숭이, 신장수, 먹중, 소매, 맏양반, 둘째양반, 종가도령, 말뚝이, 미얄할미, 돌머리집, 남강 노인, 무당, 영감 등이다.

특히 봉산탈춤 놀이는 총 7과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옴니버스식으로 서로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특징이며, 등장인물에 맞추어 춤을 추고 탈을 쓰기도 한다.

1과장에는 사상좌춤으로 사방신을 배려하는 의식무를 추고, 2과장에서는 팔먹중의 파계와 법고놀이 장면을 보여준다. 3과장 사당 춤에서 사당과 거사들이 흥겹게 노는 장면, 4과장 노장춤에서는 노장이 유혹에 넘어가 파계했다가 취발이에게 욕보이는 내용, 5과장에서는 사자춤을 통해 사자가 파계승을 혼내고 화해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제6과장 양반춤에서는 양반집 하인 말뚝이가 양반을 희롱하는 내용이 나오고, 7과장 미얄춤에서는 영감과 덜머리집, 미얄의 삼각관계와 미얄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그중 내가 재밌게 보았던 장면은 봉산탈춤 속 여성의 탈 미얄할미의 이야기였다. 미얄할미는 어렵게 영감과 재회하나 첩과 다툼 중에 영감에게 맞아 죽는 비련의 인물이었다. 탈에도 미얄할멈의 불행을 암시하듯 얼굴은 검고, 탈에는 점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나는 탈 속에 그려진 피부, 얼굴에 드러난 흔적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다 문득 혹시 저것은 천연두에 걸린 흔적은 아닐까?’ 천연두라는 무서운 열병에 걸리면 죽거나 살아남은 자는 곰보가 됐다던데.

하지만 이야기 속 미얄할미가 천연두에 걸린다는 것은 지금껏 전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황으로 봤을 땐 당시 천연두가 유행했고, 그 병에 걸렸던 사람은 얼굴에 점박이처럼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미얄할멈은 어렵게 영감을 찾았으나 결국 남편에게 맞아 죽는 기구한 운명. 그렇게 탈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한동안 부캐라는 말이 유행했다. 온라인 게임 중 부캐캐릭터의 첫 글자 만 따서 만든 단어로, 원래는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했던 용어였다.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일상생활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키우는 것을 말하며,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탈과 부캐,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페르소나는 아닐까. 과거나 현재나 힘든 일은 항상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겐 웃음이 필요하다. 비록 펭수가 인간은 아니지만 즐거움과 희망을 주듯이 말이다.

2021년 올 한해는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찬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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