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상태바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 서산시대
  • 승인 2021.01.02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20여 년 전만 해도 비디오테이프라는 영상 저장 매체가 있었다. 비디오 시작 전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란 경고로 시작하는 짧은 영상이 있었다. 호환은 짐승인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것이고 마마는 천연두 바이러스를 말한다. 무서운 불법 저작물 시청의 피해를 과거 재앙에 비교해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경고인 공익광고였다.

이젠 호랑이도 없고 냉전시대 종식후 전쟁도 흔치 않다. 누구도 이런 경고가 먹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마마처럼 낡은 위험이라고 여겼던 바이러스가 인류의 선과 악을 모두 덮었고 앞만 보고 달리던 인류의 삶과 시간을 멈추게 했다.

돌이켜 보면 인류는 21세기와 함께 고개를 들었던 몇 차례의 감염병을 겪고도 배움이 없었다. 아니 편린의 배움은 있었지만, 변화는 더뎠다, 여전히 인간중심의 이기심이 변화의 저항이 됐다.

인간 서식지의 깊이와 넓이는 팽창했고 거대 도시를 네트워크가 형성하며 지구에는 새로운 생태적 질서가 완성됐다. 세계 인구 절반이 이 서식지에 살며 지구를 묶은 산업의 공급망 사슬이 영양을 공급했고 성장이란 키워드가 이 질서를 통제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됐고 자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자원으로써 자연은 닥치는 대로 파괴됐다.

신자유주의 이름하에 행해진 모든 것들은 반성 없이 그저 불확실한 미래만 보고 달린 것이다. 결국 기후 위기로 경고장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그토록 옳다고 믿었던 그 세계가 멈췄다.

사람들은 펜데믹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누구도 질병의 소멸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2020년은 모르고 당했다 해도 2021년이 시작한 지금은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관해 많이 알고 있음에도 당할 가능성이 높은 불확실성을 가졌다.

소멸의 시기를 역사적 교훈에서 찾아야 한다면 시간을 더 과거로 가져가야 한다. 700년 전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 25~40%가 사망했고 1750년에야 수그러들었다. 바이러스인 천연두는 역병처럼 주기적으로 대학살을 자행하는 대신 지속해서 장수하며 700년간 누적 사망자가 흑사병의 그것을 넘겼다. 제국주의의 탐욕은 전 세계를 휘저었고 전쟁과 함께 스페인 독감으로 5천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대공항과 2차 세계대전, 이후 보이지 않는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총알 없는 경제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감염병이 창궐했다. 21세기는 2000년이 아니라 2020년이라고 하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지금 생존한 인류 누구도 겪지 않는 펜데믹을 경험중이다. 그런데 그 혼란은 과거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결론적으로 인류는 과거 질병의 역사에서 어떠한 교훈도 배우질 못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 하나, 바로 과학기술이다.

과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사실이다. 물론 인류의 유전자는 변이체를 확보하고 감염병에 저항을 가진 형질이 자연에 선택됐다. 하지만 인간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아낸 게 불과 150년 전이고 치료제는 여전히 없다. 바이러스의 소멸은 그 영향력이 인류의 생존에 변화를 주지 않고 사라짐을 말하고, 집단 면역은 백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전과 다른 것은 과학 기술로 백신이 빠른 시기에 개발됐다는 것이다. 결국, 소멸은 언젠가 오겠지만, 질병 역사의 한 꼭지처럼 길어질 수 있고 그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이 과학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다.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도 없지만 잘 될 거라는 낙관론은 아무런 준비를 못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연구한 논문은 무조건 비관도 혹은 낙관도 아닌 현실적 비관주의자의 태도를 말한다. 생존자는 최악이 올 거라는 것을 직시하고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내일이라도 살아나가면 삶을 지속할 준비를 한 것이다. 먹을 물도 부족했지만, 면도하고 세수를 하며 맑은 정신을 지킨 사람들이다. 지금의 일상이 무너지며 불편하고 잃은 게 많아 불평한다고 나아질 게 없다. 어쩌면 우리는 평범하고 안전했던 그 일상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았으니 그 소중함을 알려준 이 시대에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바이러스가 지구의 풍경을 바꿔놓았다는 것이고 분명 우리의 또 다른 선택지는 이전에 예상치 못한 새 질서의 시대이다. 그런데, 당장 무엇을 준비할지 모른다면 그토록 중요시했던 관계부터 벗어나야 한다. 유난히 학연과 지연이 중요시되고 인맥이 삶의 모든 것이라 여긴 그 무수한 관계들, 친구와 동창, 선배와 후배, 그리고 이웃과 가족을 잠시 멀리 두어야 한다. 전쟁과 호환은 우리가 함께 뭉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우리가 흩어져야 소멸한다.

신축년은 소의 해이다. ‘백신이란 말은 이 면역물질을 처음 만든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따온 것이다.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이지만 신축년이 주는 기운이 좋다.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