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읽기 25

기사사연도/기사계첩/1719~1720/비단에 색/이화여대박물관 소장
기사사연도/기사계첩/1719~1720/비단에 색/이화여대박물관 소장

내가 한국의 그림에 대해 궁금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 왔다. 몇 년 전 마을 지도 만들기 삽화에 참여했던 나는 오랜만에 그때 주관하시던 선생님께 안부 차 연락을 드렸다. 1년 만이었을까?

오랜만에 연락드린 선생님은 반가우셨는지 좋은 분들과 함께 있으니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고 하셨다. 조심스레 찾아간 그곳에는 이름도 정겨운 골목길 가마솥이었는데, 대로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간판과 광고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곳에 있는 한옥식당이었다.

쌓인 장작인 가게 입구에서 손님을 맞았고 주방에는 가마솥이 있어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70~80년대로 이동해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은 풍경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내게 주인아주머니의 안내로 일명 문학방이라 부르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 계신 네 분의 모습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이상한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날 문학방의 만남으로 난 또 다른 예술을 알게 되었다. 철학, 문학, 전통무용, 미학, 그리고 박물관 교육자 나!

막걸리를 한잔 권하시더라도 사발을 받을 때 그릇 속에 손가락을 넣으면 안 된다는 주도가 있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논하지 않는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라 딴따라같은 경쾌함이 베어져 있던 그 날, 막걸리를 몇 공기를 거절하지 않고 척척 받아먹는 호기 탓이었을까. 나는 그날 이후 선생님들의 작업실에 스스럼없이 가게 되었고, 그 인연을 계기로 공연 리플렛도 만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공연을 준비하시던 선생님이 전통무용을 기록한 우리나라의 기록화를 보고 계셨다. ‘~ 왜 난 그동안 이 그림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듯 새로운 신세계를 보는 것 같아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그때 본 그림이 바로 연희 공연이 그려진 기사계첩이었다.

1720년에 완성된 조선시대 궁중 기록화인 기사계첩은 조선의 19대 왕 숙종(591719)이 기로소에 들어가는 중요한 행사 관련 그림이다. 기로소는 당시 일흔 살이 넘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문관(文官)들을 예우하기 위해 세운 기구로서 임금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기로소의 회원이 되었다. 임금과 신하가 함께 하다니 도무지 서양에서는 찾아보지 못하는 파격적인 이야기였다. 사실 기로소는 고려시대에 유래 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당시 1719년 기로소에는 모두 11명이 입소했다. 김창집(72), 이유(75), 김우항(71), 최규서(70), 이선부(74), 홍만조(75), 황흠(81), 정호(72), 신임(81), 강현(70), 임방(80)이 함께 하였으며, 그들과 축하를 나누는 잔치는 1719418일 날 열렸다. 왕은 이들에게 술잔을 하사했고 법주와 같은 음식을 보내 춤과 음악이 함께하도록 연희를 베풀었다.

이날의 행사를 그림으로 담은 기사계첩20개월에 걸쳐 172012월에 완성이 되었다. 기사계첩의 구성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매우 꼼꼼하고 사실적이었다. 그 구성은 기로신 중 한 명이 쓴 임방의 서문, 지금은 없어진 경희궁 경현당에서 눈이 나쁜 숙종을 대신해 왕세자가 대신 작성한 어제, 대제학 김유의 발문, 기로회 구성원의 명단과 11명의 초상화, 행사 장면, 축시, 계첩 제작가 명단 등으로 되어있다.

알려진 기사계첩의 행사화는 5점으로 어첩봉안도, 숭전전진하전도, 경현당석연도, 봉배귀사도, 기사사연도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궁중 행사장면을 돌아보는데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림에는 분명 글로 다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있으리라!!!

나는 이 중 공식행사가 끝나고 모두가 즐기는 연희장면인 <기사사연도>를 보다 매우 재미난 점을 발견했다. <기사사연도>를 보면 연희를 즐기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림 속에 등장하는 기신은 11명이라 아니라 10명이다. 왼쪽에 6명 오른쪽에 4.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 기록에는 11명이라 했는데 1명이 빠졌다. 당시 최규서는 아쉽게도 서울에 없어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기사계첩은 알고 있는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정말 있었던 일 그대로의 사실을 그려 넣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매우 투명할 뿐만 아니라 관찰에 근거한 것으로 그림을 통해 당시 모습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부분이다.

10명과 11명의 한 끗 차이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큰 의미가 있다.

여보게, 자네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그림을 보게. 글과 그림 모두 다 보아야 완성된 역사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네과거의 그림이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을 감고 조선시대로 가본다. 그림 하나 글자 하나 놓지 말자.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곳에 우리가 가보지 못한 미래가 있을지도 모른다.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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