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읽기-23

왕세자입학도첩 중 ‘입학도’/국립 고궁박물관 및 고려대학교 자료소장
왕세자입학도첩 중 ‘입학도’/국립 고궁박물관 및 고려대학교 자료소장

수능한파라는 말처럼 수능이 오면 언제나 추위가 함께 찾아왔다. 올해는 추위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가 찾아왔다. 20년 전, 나는 세기말을 지나 21세기의 첫 수능을 친 고3이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떨까 굉장히 설레기도 했지만 반대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희망적인 스무 살을 맞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0년 올해, 코로나는 잔인하게도 수능을 치른 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작은 일상마저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되어버린 요즈음, 매일 확진자는 늘어가고 학교는 문을 닫고.

입학식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에겐 언제 또다시 그런 아름다운 날의 입학식이 올까? 아니 올 수는 있을까? 순간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바로 효명세자의 입학식 그림이었다.

효명세자는 순조(재위 1800~1834)의 맏아들로 1809년에 태어나 3세에 왕세자로 책봉된 뒤 조선 왕실의 후계자가 된 인물이다. 2016년 인기 드라마 구름이 그린 달빛박보검역할이 바로 효명세자, 아마 브라운관을 통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진 인물이 아닐까 싶다.

조선 왕조에는 국왕만 27명이 등장한다. 학창시절 국사책을 달달 외우게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리듬이 아닐까?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조선후기 제23대 왕 순조의 아들, 정조의 손자가 바로 효명세자(익종).

차기 국왕 서열 ‘1인 효명세자 성균관 입학식은 왕실의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 세자가 8살 되던 해인 1817311, 조선시대 세자의 행사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만 보아도 따뜻한 봄날 입학식이 열린 모습을 화폭에 담았던 것은 그만큼 아버지 순조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는 아니었을까.

이 그림이 바로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으로써 효명세자의 입학 행사가 기록화로 상세히 남겨져 후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성장 앨범탄생의 시작은 아니었을까.

왕세자입학도첩은 세자가 창경궁을 떠나 성균관에 입학하여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하나씩 들여다보자.

첫번째 그림은 <출궁도(出宮圖)>로 효명세자가 창경궁을 나와 가마를 타고 성균관으로 향하는 모습이고, 두번째 그림은 <작헌도(酌獻圖)>로 세자가 학생복을 입고 입학식 전 성균관 대성전에 있는 공자와 네 성인에 술잔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모습이다.

세번째는 <왕복도(往復圖)>로 세자가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으로 어느 사대부 학생과 다르지 않게 겸손한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고, 네 번째는 <수폐도(脩幣圖)>로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면서 최소한의 예물을 바치며 예를 갖추는 모습이다.

요즘은 선생님께 선물을 전달하면 큰일날 일이지만 그때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세자도 술병, 안주상, 폐백 광주리를 스승께 드렸다. 네 번째 <입학도(入學圖)>는 그림 중 가장 하이라이트로 왕세자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모습인데 스승은 책상에 앉아 있지만, 세자의 자리에는 책상이 없다. 그래서 세자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차기 국왕이 될 왕세자지만 스승 앞에서는 그저 학생의 자세였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수하도(受賀圖)>에서는 입학절차를 마친 왕세자가 궁으로 돌아와 축하를 받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화 그림을 보며 이상한 점이 있다. 아무리 찾아도 효명세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처럼 눈이 빠지게 세자를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세자의 모습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왕의 어진은 6·25전쟁 때 부산에 옮겨져 부산 국악원에 보관 중이었는데 1954년 부산에 피란 가 있는 동안 불에 타 더 이상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단다. 이런!!! 세상에!!! 이거야말로 진짜 속이 불타오르네~!!!

그림의 절반이 타고 눈썹 한 귀퉁이만 남은 효명세자의 초상화는 눈썹이 없는 모나리자처럼 더 궁금증을 자아냈다.

효명세자는 국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조선의 국왕처럼 실제로 나라를 다스렸던 인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대리청정을 통해 국왕이 중병이나 국정을 돌보기 어려울 때 후계자가 국정을 처리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순조의 대리 청정 후 그로부터 33개월 뒤, 순조를 이을 왕세자의 꿈은 183056,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런 효명세자의 급서가 날아들었다.

효명세자, 조선의 차기 국왕이 되었을 그는 자신을 아꼈던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 21살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난 잠시 세자의 얼굴을 상상하며 드라마 속 박보검과 효명세자를 오버랩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성균관에서 직접 효명세자의 입학식을 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일장춘몽을 꾼 것처럼 6폭의 그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역시 엄마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사색도 잠시, “엄마 밥 줘!! 배고파~!” 코로나로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지 않는 남매의 목소리가 사색의 둥지를 사정없이 흔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현타가 하는 말 그래, 뭣이 중한디. 애들 밥 먹여야지’.

효명세자의 입학식 그림을 보며 다시 현실의 나를 마주한다. 입학식, 내가 보던 것이 입학식 그림이었지. 달력을 보니 벌써 12월 중순이다. 2020년이 거의 다 가고 있다. 내년에도 누군가 또 입학하겠지? 현실로 돌아와 코로나 없는 2021년의 입학식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땐 제발 좀 학교 가자. 제발 제발~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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