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교사가 되고 싶었던 서산시의회 안효돈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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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교사가 되고 싶었던 서산시의회 안효돈 의원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2.12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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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있습니다” 이 단어를 뇌리에 심고 30년을 보냈다

제도권 밖 민간 영역 한계 실감...그래서 나는 ‘선거’를 했다
서산시의회 안효돈 의원
서산시의회 안효돈 의원

서산시대 핫 코너 릴레이인터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서산시의원의 근황과 생각들을 직접 묻고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Q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서산시 대산읍 운산리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학교 다니느라 잠시, 군대 다녀오느라 잠시, 직장 다니느라 잠시 그렇게 잠시몇 년 빼고는 줄기차게 살았던 내 고향 서산!

위로 형과 누나가 각각 둘, 여동생이 하나 있다. 터울도 그렇게 크지 않은데 형제들과 비비며 산 기억이 별로 없다. 여덟 명이 그것도 남자 넷 여자 넷이 안방 건너 딸랑 방 두 개에서 살았다. 두 방을 연결하는 쪽문도 있었다. 건넌방에는 고구마 통가리도 있었고 볏섬도 있었다. 볏섬에서 낱알을 꺼내 실 핀에 끼워 등잔불에 튀겨먹은 기억은 지금도 행복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불 홑청 시치는 어머니를 보며 형과 함께 이불 위로 올라가서 뒹굴다 그만 앞니가 부러진 기억이 거의 전부다. 왜 그리 기억이 없는지 지금도 그게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 초가삼간이 좁다고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서열 7위 나는 누나 손에 이끌려 학교를 간다.

Q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들은?

초등학교 6, 책보 메고 검정고무신 신고 왕복 8km 줄기차게 걸어 다녔다. 단 한 번도 개근을 못 했다. 난 지금도 그 사유를 천재지변 때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웃음).

사진사가 학교에 직접 와서 찍은 단체 졸업사진 그 사진 속에 나는 없다. 그런데 당수로 매질하던 담임 선생님이 사진을 나눠 주면서 사진 뒤에 이렇게 쓰라 했다. ‘24번 안효돈 빠졌음이 글이 없는 청운초등학교 5회 졸업사진은 가짜다(웃음).

중학교 3, 왕복 10km 또 줄기차게 걸어 다녔다. 태권도 선수 생활도 하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3년은 홍성에서 유학을 했다. 그러다 보니 걸을 일이 하나도 없어 그 시간에 공부를 했다.

가정 형편도 그렇고 본고사가 있을 때라 자신도 없어서 대학은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했다. ~그런데 운명의 81학번, 본고사가 폐지되고 예비고사와 내신으로 대학을 가는 거다.

본고사 폐지 덕(?)에 대학에 갔고,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직도 이수했고, 제때 졸업도 했다.

Q 부모님의 교육관 그리고 나의 자녀에 대한 교육관은?

형제들에겐 미안하지만 6남매 중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바로 나다. 멀리서 친구들이 집에 오면 닭을 잡았는데 몇 명이 오던 두 사람당 한 마리를 주셨다.

아버지는 936남매 중 내 이름만 정확하게 기억하신다. 농사와 아주 작은 염전을 하셨다.

단 한 번도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인 적이 없는 우리 부모님.

작은 돛배에 소금을 가득 싣고 혼자서 섬으로 소금을 팔러 가시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공부하라 하신 적 없고 진로에 대해 얘기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그냥 평생 지켜만 보셨던 분이 아버지셨다.

나도 애들한테 똑같이 했다. 그냥 가끔씩 ~ 우리 창조적으로 살자그게 전부였다(웃음). 딸은 현재 임산부란 이유로 재택근무 중이고, 다섯 살 터울 아들은 아버지한테 짐 되기 싫은지 포항에서 직장을 잡았다.

Q 청년 시절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안 맞았다. 결혼 날짜를 잡고 고민했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직장에 사표를 내고 결혼을 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고 많은 일을 겪었다.

그 와중에 대산석유화학 공단은 불을 뿜기 시작했고 내재되었던 본성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의 있습니다.” 이 단어를 뇌리에 심고 30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속의 서산항운노동조합, 경제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외적요인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것이다. 항상 조직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늘 빚진 마음이 있다.

Q 나의 사랑 나의 결혼

아내, 그녀와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군에 입대할 때 유일하게 밥을 사준 사람, 제대하고 돌아오니 그녀도 집에 내려와 있었다.

우리 집엔 오토바이가 있었고 그녀의 집엔 자가용이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날씨가 흐린 날이면 그녀가 아버지 자가용을 몰래 끌고 나왔다. 그렇게 신나게 연애했다. 직장 잡고 결혼 날짜 잡고 사표를 내고 결혼했다.

나는 사과를 참 좋아했다. 다행히 처가는 과수원을 했다. 과일은 맘껏 먹겠다 싶었는데 결혼하는 해 과일나무를 모두 뽑아 버렸다. 한 그루도 안 남기고!

남편 벌이가 시원찮으니 일을 했다. 나 듣기 좋으라고 그 어려운 일을 좋아서 한 댄다. 나보다 부모님을 더 자주 찾아가고, 나보다 형제들과 더 잘 어울리고,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

우리 부부는 서로에 대한 표현이 아주 서툴다.

지금 물어봐야겠다. “여보 나 좋아는 하나?” 즉각 대답이 왔다. “~ 그럭저럭 쓸 만해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하다. 무슨 뜻이거나 말거나 내 눈엔 연애할 때보다 더 이쁘다.

Q 시의원이 되고자했던 이유는?

처음엔 대산공단을 그저 의심의 눈으로만 보았다. 모든 것에 우선하여 환경문제를 보려고 했고, 문제를 찾으려 했고, 개선하라 요구했다. 관철을 위하여 기업과 때론 행정과 싸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금 눈을 돌리고 보니 역동적인 힘이 보이고, 가능성이 보이고, 기회가 보였다. 그런데 기업과 지역사회는 너무 멀리 괴리되어 있었다.

분명 화학공장이고 환경적으로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는 선호하는 직장이었고, 지역의 업체들에게는 참여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업은 그렇게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무리 두드려도 협박해도 그때만 조금 신경 쓸 뿐.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바로 코밑에 좋은 일자리, 황금 같은 일감을 놓고도 취직 걱정, 일감 걱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도권 밖 민간 영역의 한계를 실감했다. 들어가 보자 제도권으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선거였다.

Q 시의원이 되고 나서 힘들었던 일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노력해도 알아지지 않는 것이 두렵다. 앞만 보고 가고 싶은데 자꾸 옆을 보면서 가라고 채근한다. 두들겨 맞는 것은 맞는 만큼 단단해지기에 어렵지도 두렵지도 않다.

의원으로 해야 할 역할보다 정치라는 환경이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Q 서산시가 나가야 할 방향, 중점사항은?

서산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결국은 경제다. 기업유치와 관광산업의 육성이 중요하다. 서산시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은 석유화학산업자동차 산업이다. 석유화학공단의 수직계열화를 촉진하여 경쟁력을 확보하고, 자동차 산업의 체계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하나만 삐끗하면 바로 지역경제 위축과 인구 감소로 직결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위험성을 관광산업의 육성으로 대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로림만 해양정원 조성사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시민여러분!

신뢰와 양심, 참 고전적인 말인 듯 보이지만 요즘 같은 시기엔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여러 분야의 대표들 공직자들 정치인까지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믿어주시고, 시민 여러분께서도 방역수칙을 양심껏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남은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희망찬 새해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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