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고교시절 가정교사였던 서산시의회 조동식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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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고교시절 가정교사였던 서산시의회 조동식 의원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2.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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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홍저수지를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만드는 것이 꿈
국민학교 시절부터 정치인을 꿈 꾼 서산시의회 조동식 의원
국민학교 시절부터 정치인을 꿈 꾼 서산시의회 조동식 의원

서산시대 핫 코너 릴레이인터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서산시의원의 근황과 생각들을 직접 묻고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Q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내가 태어난 곳은 서산시 팔봉면 흑석리 600번지이다. 우리 집 안방에서 바다까지는 100m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경치 좋고 낭만스러운 곳이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곤 했고, 저녁노을이 질 때면 석양빛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도 했다.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놀았고 여름에는 바닷물에서 헤엄치며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우리 집에서 팔봉국민학교까지는 약 4km 정도 됐다. 1학년 때에 홍역으로 결석한 것 외에 2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줄곧 나는 개근상을 받았고, 6년 동안 우수상을 받으며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나는 서령중학교부터 서령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팔봉면을 떠나 나름 도회지(?)로 유학생활을 하기위해 자취를 하며 학업을 이어나갔다.

토요일이면 고향 집에 갔고, 일요일이면 쌀과 김치, 장작을 메고 자췻집으로 와야만 1주일을 먹고 살 수가 있었던 시절,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담임 선생님 소개로 가정교사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김치 하나만 먹고 살다가 막상 가정교사 집에 들어가니 갑자기 기름진 음식이 위장을 타고 내려가자 그만 약 2주일 이상을 설사를 하느라고 죽을 뻔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Q 부모님의 교육관은?

부모님의 교육관이라면 굳이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당신들 스스로 착하게 세상을 사시는 모습을 몸소 실천해주신 분들이시다. 32녀 중 장남으로 세상에 태어나다 보니 착하게 살아야 동생들도 나를 보며 착하게 산다고 생각하며 생활을 했다.

우리 집은 농사밖에 모르시는 부모님 덕분에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았다.

Q 학창시절 나는 어떤 학생이었으며, 꿈은 뭐였는지?

국민학교 5학년 때 문희태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웅변을 가르쳐 주셨다. 당시에는 반공웅변대회, 저축장려웅변대회, 산림녹화웅변대회 등 웅변대회가 유행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팔봉국민학교 웅변대회에서 나도 모르게 1등을 해 버렸고, 서산군대회에 출전해서도 팔봉 촌놈이 글쎄 나도 모르게 또 일등을 해버렸다. 그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각종 웅변대회를 휩쓸고 다녔던 학생이 바로 나였다.

특이하게도 나는 국민학교 때 이미 정치인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일은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우리 아버님지는  48세 젊은 나이에 그만 중풍으로 하루 아침에 저세상으로 떠나버리셨다. 그때의 막막함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어릴 적 꿈과는 달리 새로운 인생 항로를 걸어야만 했다.

빈농의 자식으로, 5남매의 장남으로서 나의 길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님을 모시고 5남매의 가장 노릇을 하게 된 나 조동식, 그렇게 나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책임지며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가장이 되었다.

Q 나의 사랑 나의 결혼

군 복무를 마치고 생활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참 열심히도 살았다. 그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나는 화장품 대리점의 점장으로, 사랑하는 성신현 내 아내는 세무사무소에 다니다가 나를 만나 화장품 대리점의 경리로 결국 우리는 사내커플이 되었다.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우리는 그때부터 화장품대리점을 인수하여 방판사업, 화장품 시판 사업, 화장품 체인점도 하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1남 2녀를 두었다.

그리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늦깎이 배움의 한도 풀었다.

Q 배움의 한이라면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

평상시에도 복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만난 것이 한서대학교였다. 그곳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노인복지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사실 아직 논문을 통과하지 못해 애석하게도 졸업자를 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웃음).

이제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가 덮쳐오면서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 등 여러 분야로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 미래의 복지도 이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참고로 학과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도 열심히 움직였다고 자부한다. 몇 가지를 꼽는다면, 서령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역임하면서 동문 선후배 간의 화합과 학교 발전에 힘을 보탰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른 학교 동문회와도 교류하면서 상생 발전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했다.

앞으로도 선의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앞장서 함께 할 것을 약속드린다.

Q 왜 정치를 하는지? 그리고 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렸을 때부터 정치는 내 꿈이었다. 그동안 삶이 궁핍하여 먹고 살다보니 늦은 나이에 시의원에 도전했다. 그래서 다른 분들보다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의원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의원 생활을 하면서 제일 보람 있었던 때는 바로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웃음을 찾아줄 때다.

언젠가 어느 할머니가 집에 TV가 안 나오니 좀 나오게 해달라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곧바로 찾아뵙고 고쳐드렸더니 할머니의 얼굴에 해맑은 기쁨의 웃음이 한가득 넘쳤다. 그러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면 몇번이고 토닥여 주셨다. 그런 할머니의 행복에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앞으로도 조동식이 시의원이 되더니 목에 힘 들어갔네란 소리를 들으면 그날부로 시의원을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서산시와 시민들을 위해 자그마한 보탬이 되는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Q 서산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 서산시는 지속적인 기업경쟁력 확보와 산업인프라 확충으로 지역과 기업이 상생 발전하는 도시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먼저 우리 지역에 들어와 있는 기업들에 경영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기업들은 환경오염문제에 대하여 지역사회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사소한 민원이라도 완벽하게 해소해 드리지 못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Q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현안은?

잠홍저수지 준설을 통하여 아주 멋진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명소로 만드는 것, 이것이 최대의 꿈이다.

지난 제2차 본회의 시작에 앞서 5분 발언을 통해 준설 및 수질개선 사업 착수와 인공섬 조성, 준설토를 이용한 체육공원 조성과 데크시설 미설치 구간 조속히 설치할 것, 청지천을 연계한 산책로·자전거도로 조성과 수상스포츠 프로그램 도입 등을 집행부에 제안한 바 있다.

앞으로도 서산시민의 행복지수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좀 이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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