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송국범 선생】 내게 붓을 들 힘이 사라진다면 그때는 가야 할 시간
상태바
【인터뷰-송국범 선생】 내게 붓을 들 힘이 사라진다면 그때는 가야 할 시간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1.30 2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생서예대전 한글 판본체로 영예의 대상 수상
김생서예대전 한글 판본체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송국범 선생

프롤로그

중국 왕희지에 버금가는 서예대가 김생 선생의 예혼을 추모하기 위해 열린 ‘44회 김생서예대전영예의 대상은 한글부문에 출품한 서산의 송국범 선생이 차지했다.

송국범 선생은 폐교위기에 처한 팔봉중학교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80%가 넘는 학생이 서산 시내에서 몰려오는 기적을 낳은 인물이다. 결국 팔봉중은 전교생이 60여명밖에 되지 않던 것이 무려 160여 명이나 되는 기염을 토해냈다.

작아서 아름다운 감성 행복학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 송국범 선생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동시에 자연은 곧 생명이라는 기치 아래 NGO단체에도 몸을 담아 활동한 인물이다.

서산시대는 신화를 이룩한 송국범 선생이 이번에는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 한글부문 판본체로 대상을 수상했단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송국범 선생의 작품

Q 큰상을 받게 되어 정말 축하드린다. 독자들에게 소감 한마디 부탁드린다

성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한다. 또 다른 매력에 흠뻑 빠져 서예를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다시 한번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 출품하게 됐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뜻밖의 소식을 들으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올해 들어 제일 잘한 선택이 바로 서예다. 하루종일 붓을 잡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힘이 달려 못할지언정 하기 싫어서 그만둔 적은 없다. 가만 보면 어릴 적부터 정신없이 지내면서도 붓을 들면 그때부터 마음이 차분하면서 곧잘 긴 시간 몰두했던 거로 기억한다. 나와 서예는 한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예술은 타고난다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 서예를 하게 됐나?

초등학생 시절부터 서예 쪽으로 소질을 보였던 것 같다. 국민학교 5학년과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하루는 서예는 타고난 것 같다. 열심히 노력하면 장차 훌륭한 서예가가 될 거다라는 칭찬을 해주셨다. 어린 시절 담임 선생님의 이 한마디 말은 지금까지 서예를 하는 이유가 됐다.

오죽하면 지금도 먹을 갈고 붓을 들 때마다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이 문득문득 떠오를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중학생이 되어서도 틈틈이 서예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 때는 교내 전시회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하는 영광을 안았다. 사실 학교에서 종합미술작품전시회를 했는데 서예는 제외가 되었었다. 그런데 내 서예 작품을 보신 선생님이 종합미술작품 전시회에 내 작품을 하나 넣어주셨다. 수많은 미술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내 서예 작품도 전시가 된 거다.

그러다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붓을 잡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한동안 문방사우와는 거리를 두고 살다가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얻은 때부터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명한 서예가들과 교류하며 지도를 받았다.

김생서예대전 작품휘호 장면

Q 정상에 서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을 것 같다. 그중에 몇 분을 소개해 달라

한글의 조형성을 발굴하여 자연의 형상물로 의인화시키고, 특히 글자 속에 인간의 감성적 내면의 변화를 형상화하는데 평생을 바쳐 온 서예가 늘빛 심응섭 선생에게서 조언을 많이 얻었고, ‘올바른 서예의 길로 인도해 주신 장강 변수길 선생의 큰 가르침을 받았다.

나는 붓을 잡을 때마다 구순 기념으로 전시회를 준비하신 원로 서예가 황욱 선생님 말씀이 늘 귓전에 맴돈다 이제야 글씨가 뭔지를 좀 보여 쓸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아 안타깝다고 하신 그 말씀. 정말 예술의 길은 끝이 없고, 늘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해도 해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예술의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 내 부족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기도 했다.

Q 그동안 각종 공모전에서 입,특선, 우수상과 안견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예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예는 타고난 소질도 있어야 하지만 끝임 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마음을 키우고 닦으며 결국 진선미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붓글씨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고, 마음으로 그려내는 일이다. 멋진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넓고 깊고 맑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이야 늘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서예를 가리켜 끊임없는 자기 수양의 과정이라고 하는가 보다.

아직도 자랑스러운 것은 한국화를 하는 아내와 콜라보로 지역 최초 서산시문화회관에서 송국범·고귀숙 부부작품전5일 동안 열었었다. 그때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일생 중에서 가장 보람되고 소중한 추억이 아닌가 싶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금년 1월 한달간 홍성 ‘짙은갤러리’에서 아내의 소묘 전시장을 방문하여

Q 2002년 당시를 기억한다. 지역의 예술인과 미술 애호가들께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전시였다.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나?

내가 틈틈이 서예 공부를 할 때 집사람(고귀숙 작가)도 서예를 배우고 있었다. 집사람은 사실 중학생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은 것 때문에 국문학과를 택하고 교단에 섰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워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취미로 서예를 시작한 처지였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며 함께 서예 공부를 하다 보니 서로에게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붓글씨로 내 마음을 표현하자 그 사람도 역시 붓글씨로 화답을 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자 그때부터 주변의 눈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연인이 한 학교에서 함께 근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워 집사람은 결국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결국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됐다.

처음엔 나와 함께 서예 공부를 했던 아내가 어느 순간 한국화의 경지를 넓혀 가고 있더라. 부부전을 할 때 나는 17점의 서예 작품을 선보였고, 우리 집사람은 16점의 한국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전시였다.

Q 부부전이 끝나고 2년 뒤 큰 시련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얘기를 들려달라

집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해야 했다. 학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일어난 사고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 사고로 집사람은 오랫동안 휴직을 해야 했다. 나 또한 퇴근하자마자 곧장 천안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를 간호했다. 그때 알았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내의 건강을 위해 끝없는 기도를 했던 그 시절, 아마도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통틀어 가장 많은 기도를 했던 것 같다.

늘 묵주를 손에 쥐고 살았고, 기도할 때마다 아내를 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렸다. 그때마다 아내의 병상 곁에서 아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신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그 많은 시간이 고통이었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하나라는 의미와 실체를 확연히 깨닫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했다. 퇴원하고서도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아내를 대신하여 가사 노동에도 최선을 다했고, 병간호와 가사 노동, 학교 근무를 병행하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건강을 되찾아 행복한 일상을 맞고 있다. 집사람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태안군청 표지석 작품휘호로 가세로 군수에게 감사패를 받은 사진

Q 새벽형 인간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주로 작품활동은 언제 하시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시는지?

서예를 붓끝 예술, 심화(心畫), 심상(心象)이라고 했다. 마음의 예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보면 심경(心耕)이다. 마음 밭을 가는 행위다.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갈아야 한다며 꾸짖던 옛 스승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서예를 도()라 한다. 그 도를 행함에 새벽은 제격이다. 새벽 자체가 도다. 잡념이 침범할 수 없는 엄숙함이 도사리고 있다. 수행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행위는 새벽에 책을 펼치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우주의 기운으로 자신을 채웠다.

새벽에 피어나는 붓끝 예술서예! 붓의 예술은 하늘과 땅의 기운 한 가운데서 까맣게 피어난다. 흰 화선지, 벼루에 담긴 먹물이 붓을 적신다. 묵향이 방 안에 감돌아 코끝에서 진하게 맴돈다. 우주의 기운이 손끝에 모이는 엄숙한 시간 속에 붓은 화선지 위에서 춤춘다. 춤사위는 경건하고 진지하다. 글자가 만들어지고 문장이 되어 예술로 승화된다. 숨소리마저 숨죽여 흐르는 그 침묵을 깨고 붓의 움직임 따라 우주의 기운이 붓끝에 머문다. 머문 자리에 시가 탄생되고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게 서예다.

잡념을 피해 가는 최적의 예술을 벗 삼아 붓과 함께한 세월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원동력이다. 많은 시간이 새벽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으로 채워진 삶을 살았다.

그런 어느날, ‘새벽과 묵향이라는 어울림을 떠 올렸고 그 어울림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 시작이 새로운 새벽을 열었고 나는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새벽에 시작된 붓의 마력은 낮까지 이어질 때가 많을 정도였다.

독서동아리 ‘아트 시인’ 회원들과 함께

Q 팔봉중학교 교장을 거쳐 한서대학교 교수직을 수행하시다 정년퇴임을 하셨다.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고 싶으신지?

조화로운 삶의 저자 스코트 니어링이 부인 헬렌에게 내가 당신에게 땔 나무를 나를 힘이 사라지면 가야 해’ 100살 되던 해에 이젠 가야 되겠어라며 스코트는 곡기를 끊고 과일주스로 한달 반, ‘이제는, 물만 먹을게물로 10여 일 후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죽음마저 스스로 조절하며 마지막까지 서로 대화를 이어갔던 그 멋진 부부의 삶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인생 후반기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모두의 관심거리다. 모든 분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 또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위하고 싶다. 거기에는 어쩌면 피나는 노력과 절제된 생활이 수반되는 길일 것이다. 나름대로 정신과 육체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려면 내게 주어진 새벽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를 먼저 고민했다.

새벽 3시 전후로 잠에서 깨어 글을 쓰고, 책 읽고, 붓을 잡는 시간과 운동 시간 등 모두 마치면 아침 730분이다. 붓끝 예술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것이 도()가 된다면 쉼 없이 그 길을 갈 것이다.

나를 맑게 하는 일, 그것이 곧 서예다. 가장 좋은 타이밍은 새벽이라는 생각에 머물면서 시작된 서예의 길이 평생 이어지길 소망한다.

만약 내게 붓을 들 힘이 사라지면, 그때는 가야 할 시간이 아닐까. 그렇게 살고 싶은 소망 하나를 담으면서 오늘도 새벽의 기운 속에서 먹의 색깔로 까맣게 피어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