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산시의회 넷둥이아빠 최기정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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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서산시의회 넷둥이아빠 최기정 의원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1.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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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청년대표가 되어 아픔과 고충, 현실을 대변하는 멋진 의원 되고파
서산시의회 넷둥이아빠 최기정 의원
서산시의회 넷둥이아빠 최기정 의원

서산시대 핫 코너 릴레이인터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서산시의원의 근황과 생각들을 직접 묻고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산시의회에서 가장 젊은 시의원 넷둥이아빠 최기정 의원, 어린이 관련 교육사업을 하다 보니 올바른 교육관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38살에 의회에 입성하여 이제 마흔이라는 불혹의 나이가 된 최 의원은 보다 성숙하고 스마트한 의정활동을 보여드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전해왔다.

Q 성장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바쁜 부모님 때문에 상처 입은 때가 바로 어린 시절이다.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미용실에서 고된 일을 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미용실이 딸린 단칸방에서 네 가족이 부둥켜안고 자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 나이 드디어 스무 살, 처음 내 방이 생기면서 나는 하늘을 다 가진 듯 기뻤다.

남들은 지금의 나를 보며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도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등학교 입학식, 또래 아이들은 부모님 손 잡고 교정을 향했다. 나는 늘 바쁘신 부모님 대신 외삼촌 손을 잡고 입학식을 다녀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애처로운 눈길로 나를 건너다보시곤 하셨다. 나는 그런 눈길마저 싫어서 외면하곤 했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괜히 미안해져서 고개가 숙여진다.

가장 작은 키에 허약한 나 최기정은 입학과 동시에 차별이란 단어를 알았다. 맨 앞자리를 독차지했던 나는 선생님의 지시로 자주 자리를 옮겨 다녔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학교에 관심을 가진 학부모님의 자녀는 조금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것을. 너무 속상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4시간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Q 학창시절 기억나는 일들은?

허약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택한 것은 운동이었다. 어느 순간 충남을 대표하고 전국대회에 입상할 정도의 엘리트 선수로 성장하게 된 나. 사춘기 시절,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과 지옥 같은 훈련이 싫어 들고 있던 아령으로 다리를 내려치곤 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자해는 바로 현실을 부정하는 나름의 고집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된 고된 훈련, 그 후 두 번의 수술 끝에 다시 재기에 성공하여 장학생으로 사범대학에 입학했고, 계속된 학업으로 결국 경희대 박사과정까지 수료하게 됐다.

아 참! 학창시절, 아주 멋진 추억 한 가지도 간직하고 있다. 대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에 합격하여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 그때 만약 그 길을 계속 갔더라면 지금쯤은 현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웃음).

Q 부모님의 교육관과 자녀에 대한 본인의 교육관은?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인성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주신 부모님이셨다. 당신들의 못다 이룬 꿈을 저희 남매를 통해 풀고 싶으셨던 부모님은 하고 싶은 모든 걸 원없이 하게 해주셨다. 그 영향으로 나 역시 넷둥이들에게 ‘1등을 강요하는 것보다 올바른 가치관으로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며 대한다.

Q 청년 시절의 나는?

20대부터 지금까지 나는 늘 현재 진형형이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일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나를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단체 사무국장과 JCI 서산청년회의소 회장, 충남협의회 회장까지 심지어는 행사기획부터 크고 작은 봉사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곳은 한걸음에 달려갔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청년 시절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라고 할 정도로 매사 활동적이었다. 꿈과 이상을 불태웠던 청년 시절이 만약 내게 없었다면 아마도 내 삶은 실패의 인생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서산시 청년대표가 되어 아픔과 고충, 현실을 대변하는 그런 멋진 의원이 되고 싶다.

단란한 가족들과
단란한 가족들과

Q 나의 사랑 나의 결혼

친구의 소개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후배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그녀는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면서 직장에서 꿈을 펼치고 있었는데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로 납치하듯 서산으로 데리고 왔고 5년간의 긴 장거리 연예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현실은 공인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주고 있어 늘 미안함 뿐이다. 행복이라는 꿈을 선물하기 위해 여전히 나는 노력 중이고 앞으로도 그리 할 것이라 약속한다.

Q 시의원이 되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이 도전하기에 너무 높은 벽이 아마 정치가 아닐까. 처음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아직 젊으니 이름 알리고 다음에 도전하면 된다고 수많은 분이 말씀하셨다. 마음이 아팠다.

선진국에서는 젊은 지도자들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공약과 그에 따른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나. 일례로 오스트리아는 2017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를 선출한 후 경제·외교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아일랜드의 리오바라드카38세의 나이에 집권당의 대표와 장관, 총리를 두루 거쳤으며,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40, 에스토니아 위리 라타스 총리 39, 우크라이나 블로드미르 그로이스만 총리 39, 폴란드 인제이투다 대통령 45, 캐나다 쥐스탱트뤼도 총리 46, 벨기에 샤를미셸 총리 42세 등 기성정치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현실문제들과 독특하고 창의적인 정치 행보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40세 이상이 돼야 대통령 출마도 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을 두고 있다. 물론 유교사상이 지배적인 대한민국의 정서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개혁을 꿈꾼다면 보다 많은 젊은이가 도전하지 않겠나. 우리나라도 이제 편견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Q 시의원이 되고 나서 힘든 점

가정에 소홀해서 가장 미안하다. 무엇보다 행동 하나하나가 가족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에 매사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

마을 행사 등 대중 앞에 서면 근간에 뵌 분들도 요즘 얼굴도 안 보인다는 핀잔과 면박을 할 때도 힘들다. 이럴때마다 좁은 소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녀석이 의원이라고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거나 악의적인 표현으로 생각되어 마음이 아프다.

한번은 이런 어르신이 있기에 당당히 자녀들보다 제가 더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립니다. 또 시민들이 일하라고 의회에 보냈는데 어르신들 악수나 하러 다닌다고 하면 그게 잘못된 거 아닙니까?” 하시니 그제야 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어주시더라. 그 웃음 때문이라도 이제는 당당하게 의정 생활을 하고 있다.

Q 서산시가 나아가야 할 방안은?

우리시는 수많은 현안과 발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터미널 이전문제, 신청사 이전, 원도심 해결방안, 일자리, 육아, 주거, 관광, 교육, 환경, 문화. 소상공인 등에 대하여 새로운 정책과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늘지 않는 인구 정체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고민하는 문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사회적 합의를 통한 방법과 때로는 과감한 정책으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Q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현안은?

미래의 성장동력을 위하여 공격적인 투자지원과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많은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충청남도는 2000년 이후 연평균 6.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며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해왔다.

2016년 기준 GRDP 117조 원, 전국 31인당 GRDP 4,984만 원 전국 2위라는 지표로 충남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지만 천안·아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기업유치를 통해 고용 창출과 생산에 따른 부가가치 효과가 발생한다면 앞서 말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해결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이 딜레마에 빠져있는 요즈음 일상적인 생활방역을 준수하고 특히 어려운 시기인 만큼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극복해야 한다.

소모적인 정쟁보다는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경제 정책으로 다시금 밝게 웃을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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