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미래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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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래의 나에게 부치는 편지
  • 서산시대
  • 승인 2020.11.25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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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웅 편집국장
박두웅 편집국장

202011월 말. 지금 이곳은 기온이 뚝 떨어져 영하의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대로 독감이 유행하는 겨울 초입에 코로나19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2단계 조치가 내려졌습니다지방도시인 서산도 연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걱정이 많습니다.

자유와 물질적 풍요의 시대는 이제 전례 없는 기후 변화와 바이러스를 마주하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에스겔 19:49-50)

우리가 코로나19를 슬기롭게 이기는 방법은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며 어려운 이들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론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20년 언론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지면에서 인터넷으로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독자의 기호가 바뀌었고, 젊은이들은 바보상자 TV도 이제 잘 보지 않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수한 된장찌개에, 고등어조림을 나누며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한끼 식사를 하던 모습은 먼 추억이 됐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가족간의 대화가 많아질까 했더니 1인 가구의 증가와 비대면 일상이 배달음식 천국을 만들었습니다.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질 틈이 없습니다. 한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 초조감이 엄습해 옵니다.  사람들은 이미 개인형 미디어에 충분히 길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손안의 스마트폰 속에서 특정한 기호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좁은 집단들로 분화되고 사사화(私事化)되어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서로 다른 집단들과 세대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왜곡되고 변질된 모습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만의 우려는 아닐 듯 합니다.

올 여름 폭우처럼 쏟아지는 글과 사진, 영상속에는 무엇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도 알 수도 없는 걸러지지 않은 토악질이 넘쳐납니다.  마치 선술집 뒷골목 지저분한 공중화장실처럼 감정의 배설물이 사방에 널려 악취를 풍깁니다. 

빅데이터로 상징되는 4차 혁명의 도래에 앞서 온라인과 모바일 플랫폼에서 가짜뉴스가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요.

나침판 없는 항해에 밤하늘 별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렸만, 백내장에 걸린 환자처럼 눈앞이 뿌옇습니다. 나침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맑은 눈을 가진 이는 누구일까요.

가보지 않은 미래 사회에서 아마도 그를 비판적으로 사고했던 저널리스트였다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사회 공동체 전체의 공익을 위해 사회를 성찰하고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촉매자. 저는 그를 새로운 항해를 돕는 나침판이라 별칭합니다. 윤리성, 분석 능력, 취재 분야의 전문지식, 그리고 비판적 식견은 동서남북을 빈틈없이 가리키는 나침판을 닮았습니다.

코로나19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언론인에게 묻는 질문은 너 스스로에게 주어진 역할과 가치를 성찰하고 있는가”, “그 역할과 가치를 실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너는 언론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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