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거인 툴루즈 로트렉....작은 거인이 쏘아올린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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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거인 툴루즈 로트렉....작은 거인이 쏘아올린 화살
  • 서산시대
  • 승인 2020.11.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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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쌤의 미술읽기-21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르 디장 자포네)/1892-1893/석판화/81.2×60.3cm/뉴욕 근대미술관 파리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르 디장 자포네)/1892-1893/석판화/81.2×60.3cm/뉴욕 근대미술관 파리

올해 여름이었다. 잠시 코로나가 잠잠할 때쯤 딸 아이와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날은 바로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가 있는 날이었다.

물랑루즈의 무대처럼 꾸며진 붉은 천을 드리운 입구로 들어서니 몽마르뜨 카페 거리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벽에 붙여진 거대한 사진 속에는 네온사인 아래 술집들이 펼쳐지고 파리의 에펠탑이 마치 이곳이 프랑스인 듯 느껴지도록 눈을 매혹시켰다.

나는 시간 여행을 하듯 19세기말 감성에 흠뻑 빠져들었다. 특히 이곳에서 나를 사로잡은 또 하나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툴루즈 로트렉이 제작한 디방 자포네의 포스터 광고였다.

툴루즈 로트렉, 그의 정식 이름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으로(1864~1901) 귀족가문 출신의 예술가였다. 백작 지위의 아버지와 서로 사촌간이었던 어머니로 사이에 태어난 호트렉은 고급스런 귀족의 예술적 취향과 혈통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근친혼의 영향으로 유전적 결함도 함께 물려받았으니 그것은 불행의 시작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병약했던 로트렉은 어릴 적 말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로 허벅지 뼈가 부러지게 되고 그는 더 이상 하체가 자라지 않게 된다. 그의 키는 겨우 152cm에 불과해 당시 귀족들이 즐겨 타던 승마를 할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그림을 그리며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18세가 되던 해 본격적으로 화가수업을 받는다.

이후 1884년 로트렉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 몽마르트(Montmartre)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에드가 드가와 같은 화가들과 교류 하며 예술의 길을 걷는다.

당시 몽마르뜨는 파리의 외곽으로 집세가 싸서 가난한 예술인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동시에 화려한 카페와 유흥가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예술가와 유흥은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예술가들은 이곳의 미술관, 공연, 카페 등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즐기며 감각적인 파리의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세기말 파리의 유흥은 귀족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뒤섞이게 했고, 그 속에서 로트렉 또한 그의 예술적 재능이 한껏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디방 자포네(Divan Japonais)1892년 툴르즈 로트렉이 살았던 몽마르뜨에 새롭게 연 나이트 클럽의 이름이었다. Japonais는 프랑스어로 일본의라는 뜻인데, 당시 대나무 의자와 같은 일본풍의 실내장식과 조명들이 대 유행이었다.

이곳에서는 물랑루즈의 공연이 열리곤 했는데, 어느날 뜻밖에도 로트렉에게 새롭게 단장하는 물랑루즈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맞는 포스터를 의뢰받게 됐다.

그는 포스터를 만들면서 제일 친한 비평가 에두아르 뒤자르댕(Édouard Dujardin, 1861-1949)과 물랑루즈의 유명한 캉캉 무용수인 잔느 아브릴(Jane Avril, 1868-1943)을 관중석에 배치한다.

그가 만든 포스터는 단순한 실루엣이 강조되어 대중에게 쉽고 빠르게 각인되었다. 특히 관람석에 우아하게 앉아 신사에게 에스코트 받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대중문화의 계층 없는 소비의 시작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로트렉의 그림은 상류사회 귀족들의 묘사에서 물랑루즈의 여인들로 채워지게 되었고, 이것은 인상주의 화풍에서 그래픽 아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로트렉이 그린 광고 속 효과로 포스터 속 그녀는 물랑루즈의 스타덤에 올라 세기말 화려한 파리의 밤문화를 빛내게 되었다. 그가 제작한 포스터 그림은 일종의 광고와 같은 효과였다. 포스터는 이미지를 활용해 대중에게 알리는 대중문화 소비의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그는 세기말의 작은 거인이었다. 그의 유전적 결함은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지만 로트렉이 귀족으로 남았더라면 우린 이 시기를 지금보다 심심하게 기억했을지 모른다.

그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쏘아 올린 신호탄은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문화예술의 거인이었다.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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