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산시의회 이연희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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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산시의회 이연희 의장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1.1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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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의장’이란 수식어가 서산시의 여성들에게 자랑스럽게 남겨지기를....
서산시의회 이연희 의장
서산시의회 이연희 의장

서산시대 핫 코너 릴레이인터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서산시의원의 근황과 생각들을 직접 묻고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Q 자기를 소개한다면?

나를 돌아볼 계기가 별로 없었는데 문득 나를 소개하려니 잠시 망설여진다. 내가 말하는 이연희는 초등학교 6학년 일기장에 쓰여 있던 3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이른바 꿈지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특히 타인이 보는 이연희는 약한 것 같으나 내공이 단단하다고들 한다. 가만 보면 평소엔 조용하지만 어떤 결정적인 일을 만나면 반드시 해결하고야 마는 추진력내지는 결단력이 있다고 한다.

Q 성장 과정은?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 사이에 25녀 중 6번째 막내딸로 태어났다.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순하고 조용하게 성장했다고 가족들이 말하더라. 조실부모하신 우리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셨다. 또한 생활력은 얼마나 강하셨는지.

아버지는 그런 엄마 의견을 존중하며 가장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주셨다. 부모님이 장사로 집을 비우시는 게 일상이었던 우리 집은 엄마를 대신해 큰 언니의 돌봄 속에 우애가 남달랐다고 동네에서 칭찬했더랬다.
7남매 속에서 사회생활을 터득(?)해서인지 형제들 대부분 친구가 왜 그렇게 많았던지, 라면 한 상자 48개가 이틀이 멀다 하고 먹어치울 만큼 우리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Q 크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선생님들과 유난히 친했다. 담임선생님과 수시로 교무실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던 여고 2학년 사춘기 시절, 아마도 수없이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의 인생관가치관이 형성됐던 것 같다. 당시 선생님은 조금이라도 더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커피믹스를 선물로 주셨고, 나는 그 덕분에 지금까지 커피광이 됐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2학년 때 선생님이 살짝 보여 준 노트에서 놀랍게도 내가 반에서 가장 높은 아이큐 소유자란 걸 알았다. 혹시 실수로 잘못 표시됐을까 싶기도 하지만(웃음).

Q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

대부분 그렇겠지만 평생을 근면·성실하게 사시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신 분이시다. 그 당시는 왜 그렇게 거지들이 많았던지 우리 집에도 거지들이 종종 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먹는 상에 함께 밥을 먹게 하셨던 우리 엄마. 그런데 묘하게도 함께 먹게 하신 엄마에게 아무도 불평하는 형제가 없었다.

때로는 막차가 끊긴 사람을 하룻밤 재우시고 첫차를 놓칠까 봐 새벽밥을 지어 먹이시며 서둘러 보낸 적도 있으셨다. 어쩌면 우리 엄마가 뿌려놓은 고운 씨앗이 자라 그 열매로 의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에게 자녀에 대한 교육관을 묻는다면 우리 부모님처럼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테다. 그렇게 된다면,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니만큼 우리 아이들도 내가 보여 준 만큼 보고 자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을 믿는다.

Q 청소년기 때 얘기를 들려달라

월급을 타면 40% 이상을 책을 사서 읽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인물이 친구였고 연인이었다. 과거 현재 미래 시공간을 초월한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푹 빠진 청년시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시를 쓰는 일이 그 어떠한 즐거움과 견줄 것이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여행도 참 많이 했다. 서산신문에 근무하며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의 인생을 기사로 옮기며 제2의 경험을 한 것은 두고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Q 나의 결혼 나의 인생

1이 되던 해 열 살 터울의 큰언니를 시작으로 네 명의 언니들 결혼생활을 보며 결혼에 대한 로망보다는 결혼에 대한 현실을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나는 적어도 결혼보다는 내 인생을 살고 싶었다. 혼자만의 삶의 계획에서 유턴하게 된 계기는 남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내 인생이 아닌 우리의 인생으로 바뀐 사랑하는 남편. 그와의 결혼은 축복이었다.

몇 번의 유산 끝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들을 만났다. 그 아이를 통해 생명의 귀중함도 배웠고, 특히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석임을 깨달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부모가 되어서야 참된 인생을 살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란 생각이 든다.

Q 왜 정치를 하는지?

왜 정치를 하는지란 질문이 가장 어렵다. ‘?’를 수십 번 되뇌고도 쉽게 써 내려갈 수가 없다. ‘지금까지 답해왔던 것이 참인가?’란 질문을 스스로 물어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란 질문에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서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6년의 의정활동을 찬찬히 되짚어 보니 많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준 것 같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얘기를 들어줘 고맙다고 눈물 흘린 분들이 참 많았다. 또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으려 사력을 다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약자들이 내는 목소리에 난 더 강해져야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이 인생의 보람된 일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Q 의장이 되고 나서 힘들었던 점들은?

2006년 정치에 입문한 당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당 외로 밀려났다. 정치적 생명줄을 끊으며 내 입장과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 마음속 한 켠을 지지하던 무언가가 사라지고 관계로부터 찾아든 상실감에 마음이 휘청이고.

그때는 정말이지 내 마음이 때때로 궂은 날씨였었다. 공인으로 사는 삶보다 가족으로 사는 삶이 중요한 법임에도 나로 인해 남편이 너무 힘들어했었다. 살아가면서 갚아야 할 빚으로 가슴속에 남아있다.
또 있다. 코로나19 이후 만나는 시민들의 소리가 신음으로 들린다. 만남 이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이 엄중한 시기에 가슴을 칼로 베는 듯한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인으로서 참된 모습이 무엇일까만 생각했다. 어렵고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개인이 아닌 공인이니까 이 또한 견뎌내는 일이 나의 몫이다.’ 생각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Q 서산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초고령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현실 속에 고령자나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없는 사회에서, 살기 좋은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리적·제도적인 장벽을 허물자는 배리어프리운동이 더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서산시가 앞장서주기를 기대한다.

나 또한 경력단절 여성과 가정폭력, 다문화가족, 장애인 여성 정치 참여 확대 등 성평등 사회 실현에 앞장서도록 노력하겠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다 귀하다. 없다고 업신여기지 말고 못 배웠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귀가 따갑도록 엄마에게 들었다.
8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화장장에서 가루가 되기 위한 첫소리를 들었다. 혼절할 만큼 오열했다. 평생 잊지 않고 힘들 때마다 첫소리를 기억하며 좌절하지 않고 엄마의 막내딸로서 당당히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서산시의회 30년 역사 첫 여성의장이란 수식어가 서산시의 여성들에게 자랑스럽게 남기를 원한다.

차세대 여성 정치인들의 길을 닦아 놓는 여성의장으로 남고 싶다.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은 세상 어떠한 마음보다 크고, 깊고,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시민들을 보듬고 살피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부디 건강 잘 챙기고 행복한 일상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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