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두웅 편집국장
박두웅 편집국장

가을의 마지막 끝자락을 부여잡고 여행길에 나섰다.

첫날 기착지는 경북 청송군. 어둠이 까리는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주산지를 찾았다. 어둠 속에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산 그림자는 밤을 서둘러 불렀다. 쌀쌀한 산속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하루의 숙박을 위해 청송읍으로 들어섰다. 예약도 없이 찾은 터라 읍내를 한 바퀴 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다. 이곳도 코로나19 탓인지 거리는 한산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뜸했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국밥 한 그릇을 먹자고 찾아 나선 끝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충청도에서 왔다고 하니 반찬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이것저것 주섬주섬 더 내온다. 시골 사람의 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구수하다.

객주문학관을 찾아 가는 길. 청송은 사과의 고장답게 곳곳에서 사과 수확이 한창이다. 달구지 대신 경운기마다 사과 상자가 수북하다. 가을빛에 그을린 중년의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패였다.

청송군 인구는 25천여 명 정도다. 고령인구 비율 20% 이상으로 초고령화사회이다. 그 흔한 도시의 문명도 화려함도 없다. 청송군의 재정자립도도 10.3%으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청송군의 한 해 예산은 3500억 원 수준으로 이 가운데 90% 가량이 국비와 도비 등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지자체 자체 수입은 지방세와 세외수입을 합쳐 300억 원이 채 안된다.

농민의 주름살에서,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지방소멸이라는 메말라 부스러지는 낙엽같은 단어가 입속을 맴돌다 탄식으로 밷어졌다.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질공원은 유네스코의 3대 자연 환경보전제도(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 가운데 하나다. 현재 우리나라 4개소(제주도, 청송, 무등산권, 한탄강)가 있다. 또 국내 9번째, 경북 최초로 2011년 국제슬로시티 지정된 국내 최초 산촌형 슬로시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은 곳에 유네스코 공원이, 슬로시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고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고용정보원의 20205월 기준 지역별 인구소멸 위험지수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무려 105곳이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시군구의 거의 절반에서 이미 인구소멸위험이 감지되고 있다는 뜻이기에 더욱 충격이 크다.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 지난 201479, 201684, 201889, 2020105곳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통계로 알 수 있다.

다행히 10년 넘게 논의가 진행된 고향세가 지난 922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됐다. 고향세는 출향인사가 자신의 고향 지방자치단체 등에 금품을 기부하고, 그 보답으로 세액 감면 및 답례품을 받는 것이 핵심이다.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고향세가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지방소멸을 막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열악한 재정을 확충할 수 있어 좋고, 기부금은 농어민 등 지역주민에게 다양한 형태로 지원할 수 있어 농어민들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기부자에 대한 지자체의 답례품은 일본의 사례에서처럼 농어촌 특산물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고향세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약으로 제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무려 1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고향세 도입에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향세를 도입하면 대도시의 세수가 줄 것을 우려한 탓이기도 하지만 지방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한국의 농어촌의 붕괴는 단순히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먹거리는 무기가 된지 오래다. 선진국마다 농어촌지역 활성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이유다.

인구 2~3만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사라지지 않는 나라. 오히려 그곳 주민들의 행복지수가 도시보다 높은 나라. 그런 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아닐까. ‘고향세가 그 단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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