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떤 놀이를 하면 더 행복해질까'를 생각합니다

【인터뷰】이삭특수어린이집 유창희 원장
【인터뷰】이삭특수어린이집 유창희 원장

일반적으로 인터뷰 기사는 인터뷰 기자와 인터뷰이의 대화 형식을 띤다. 하지만 유창희 원장의 인터뷰 글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써 내려갔다. 다소 파격적인 형식이지만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기 위해 택했다.

프롤로그

열달 동안 노심초사 귀하게 품고 있다 배 아파 고생하고 낳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이란 인연으로 특별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생각합니다. ‘뭘 하면서 행복하게 놀까?’

언젠가는 인연의 끝이 오겠지만, 그때까지는 잘 먹고, 안전하게 놀고, 그리고 물리치료를 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할 것입니다.

때론 말합니다. ‘물리치료는 아파요. 힘들어요라며 꾀가 나서 하기 싫어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도 익숙한 것이 싫을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야 오죽하려구요 어련하려고요. 그럴 땐 억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잠시 쉬어가게 하는 것도 좋잖아요. 그러면 아이들 입장에선 피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이러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또 천천히 어른이 되어 가는 거겠죠.

이 아이들과 부모님을 보면서 이삭특수어린이집 직원들은 배우고, 깨닫고 성장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아이들이 바로 스승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장애 유무를 떠나 오늘 하루도 어떤 놀이를 해야 더 행복해질까를 말입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국가가 조금만 더 부모의 몫으로 책임 전가를 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 집안 대대로 교편을 잡은 터에 어린이집의 첫 삽을 뜨다

서산시 군진55-4’(죽성동 3번지)는 대대손손 이어온 집터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선친과 형제들께서도 이 집터에서 태어나 자라지요. 이곳은 초··고 교편을 잡을 수 있는 근간이 되어 준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는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죠.

처음 이곳에 어린이집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 모두가 말렸습니다. 외각에 싼 토지를 사서 하지 그러냐고. 저는 말했습니다. “선친포함 3형제가 모두 교편을 잡았는데 나도 그분들의 유지를 받들어 가장 필요한 곳에 작지만 뜻과 업적의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말입니다. 결국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탄생한 것이 이삭특수어린이집입니다.

개원 당시 서·태안에서는 유일하게 장애아 전문어린이집이었지요. 처음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3년여의 노력 끝에 복지부 최종심사를 거쳤고, 드디어 2004621일 설립인가를 받아 첫 삽을 뜨게 됐지요. 그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어린이집은 이듬해 4, 정식 인가절차를 마쳤고 마침내 개원을 하게 됐습니다.

# 대한민국 님비현상에 애를 태웠던 시간들

하지만 개원초,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대수술을 하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장애아 어린이집이라며 지역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픈 몸을 비비며 사회정서의 무지함에 가슴을 쥐어짜야 했습니다. 영유아들과 학부모님들은 하루가 다르게 개원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노인시설과 장애인시설을 만류하는 대한민국의 님비현상,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원을 어렵게 하긴 했습니다만, 난관은 똬리처럼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채용된 교직원들의 인건비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보조되지 않은 직원들 인건비를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 한 일도 있었고, 비싼 치료실에 들어가는 의료용 기구를 사기위해 타고 다니던 자동차 등을 팔기도 했습니다.

# 좌충우돌하며 깨달았던 일들

힘들었지만 그래도 교사들과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하는 일은 한편으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개원초 전문어린이집으로서의 경험이 없던 저는 위기에 처한 아동들만 눈에 보이다 보니 정작 교사들의 심리적 갈등과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직률이 높았고, 저는 쉽게 이직하는 원인에 대해 단순하게만 생각했지 미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영유아들의 안전안정을 위하여 근본적인 근무조건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보다 체계적인 근무조건을 지원해 주고자 충남·대전·충북의 장애아 전문어린이집에 재직하고 있는 전체 교사에 대해 장애아 전문어린이집 교사의 자아효능감 및 직무스트레스에 관한 연구를 실시했고, 그로인해 근무조건에 대한 평판의 결과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영유아의 재활 및 조기특수교육의 초기목표는 거창한 프로그램이나 치료가 아니며, 교사와 아동과의 충분한 라포는 능력보다 신뢰가 우선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전문가로서의 포지션도 말이지요.

때론 지나친 정서 위주보다는 어차피 성인이 되어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장애 영유아라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부여가 확실히 효과적이란 사실도 함께 깨달았습니다.

# 중증뇌병변 아이가 그만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던 일

기억납니다. 개원초, 중증뇌병변 아이가 그만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던 일. 아픈 아이를 매 순간 가슴 졸이며 바라보아야 했던 어머님에게 자식의 죽음은 세상을 잃은 슬픔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함께 부둥켜안고 울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아동을 잃은 슬픔은 두고두고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 후에도 위기와 응급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수시로 뛰어다녔던 일들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 “내 아이 반에는 통합시키지 말라며 연일 거센 민원에 부딪혔던 시절

사실 우리 원에는 처음부터 장애아들만 왔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1993년 당시 122명의 비장애 영유아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십여 년 넘게 운영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때 또래 아동들과의 발달 편차가 있는 취학 전 6~7세 아동들을 보며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행한 것이 소수의 아동부터 장애아동들과 비장애 아동들의 통합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물론 이때는 정부에서 통합을 운운하기 이전이었죠.

학부모님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내 아이 반에는 통합시키지 말라며 저는 연일 거센 민원에 부딪혔고, 그럴 때마다 속상함에 다시 원점으로 돌릴까!’를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통합이 자녀에게 미치는 효과와 당위성을 설명하며 함께 적응하도록 기다려주자며 반대하는 부모님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저는 지역 내 조기 특수교실 및 치료실과 복지관을 이용하는 아동들과의 역통합도 시작해 나갔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전문어린이집 기능을 살리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3, 직원 수만 총 23명이 바쁘게 움직이는 어린이집

많은 분이 궁금해합니다. 현재 우리 재활특수어린이집은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3이며, 정원은 39명입니다. 뇌병변 및 다양한 유형의 장애아동, 장애소견을 보이는 발달지연아동, 특별히 사회성이 위축된 소극적 아동들을 포함하여 0세부터 만12세 초등 방과 후 아동들까지 저희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장애 영·유아교사, 초등특수교사, 유아특수교사, 언어치료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외 기능직을 포함한 22명의 교직원과, 전문어린이집만 지원되는 사회복무요원을 합하여 총 23명이 구성되어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장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란 사실

문명의 발달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빠른 정보화와 살아가는 기능수단들의 급성장, 이것은 인간,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옵니다. 매연과 전자파 등 수없이 많은 유해환경으로부터 면역성에 문제를 일으키고, 또 이로인해 행복해야 할 수많은 가족과 이웃들이 아픔을 호소합니다. 이런 피해자들이 나와 내 가족이라는 사실을 특수어린이집을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장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란 사실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인식은 아직도 성숙반열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아는 그 부모님들의 몫으로, 특별히 나와는 다른 편견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그들은 상처받고 힘들어합니다.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성장해야 함에도 말이지요.

이런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는 일부 장애아 학부모는 결국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것조차도 전문교사가 배치되어있지 않은, 일반어린이집을 이용합니다. 그러다 취학 전이 되어서야 뒤늦게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지요.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수 없습니다.

# 장애아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장애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계교육입니다. 어린이집과 함께 부모와 형제자매의 연대는 정말 중요하지요. 대다수 부모님은 특별한 요구를 하는 자녀들을 위해 다른 식구들에게 무조건 양보하고 이해하도록 합니다. 이러다 보면 무조건 또는 무의식적으로 평생을 같은 방식으로 요구할 수도 있으니 이 방법은 대단위 위험한 교육방식이지요. 이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교육하기 위해 충남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서산시에서 매년 별도의 예산을 잡아 장애아전문어린이집 가족지원프로그램부모 및 교사교육을 실시합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문 단체 행사는 금지되어 지금은 상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SK이노베이션, 현대위아, 현대다이모스, 삼성카드와 같은 대기업에서 한 부분식 책임지고 지원해주어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합니다.

# 아이들을 어른들 잣대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지역사회와 부모님들의 인식이 개원초기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벼 이삭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섬긴다는 소박한 신뢰로 만들어져서인지 특별한 원아 모집을 내세우지 않아도 부모님들의 추천으로 많이들 오십니다. 이르게는 돌 전부터 인연이 되어 아이들의 재활과 조기특수교육(IEP:개별화교육)을 하기 위해 오시기도 하구요. 이렇게 된 것에는 일부 관심 있는 기업의 후원을 통해 다양한 사회체험을 경험하고 마음껏 활동하게 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때론 일부 학부모님들이 기존의 아이들에게서 모방하여 퇴행하면 어쩌나노파심으로 뒤늦게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는 상당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부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아이들을 어른들 잣대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여라도 습득하는 행동적 습성이 있더라도 고착되지 않도록 협력하니 섣부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 꼭 전합니다.

# 건강상 편차는 있더라도 얼마나 천진하고 맑습니까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의 소원은 가슴 아픈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하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애틋한 마음이야 어찌 모를까마는 주위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이미 사회에는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오늘 하루만 해도 그렇습니다. 무참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중매체의 참혹한 보도를 접하노라면 건강상 편차는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 모습이 얼마나 천진하고 맑습니까. 그것만이라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엄동설한 긴 겨울을 이겨내고 언 땅을 녹인 우리 부친처럼 장애인에 대해 편견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저 또한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면서 모두가 건강한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는 일이니까요.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황폐한 정신건강을 이겨내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니까요.

에필로그

코로나19 여파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우리 이삭에 줄지어 기쁜 소식이 생겼습니다.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가족이 공모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한 결과 올해 복권기금으로 조성된 목재문화진흥회(한국산림복지진흥원으로부터 위탁)에 선정되었습니다. 그것도 복지시설나눔숲 조성사업(실내)12천만 원 공모에 말입니다. 이로 인해 편백으로 쾌적하고 안전한 실내공사를 곧 시행할 예정입니다.

또 있습니다. 이삭의 숙원사업이었던 3층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 역시 우리 서산시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승인해 주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것들은 특히 뇌병변 아동들의 이동지원과 재활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커다란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작은 어린이집에서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힘만으로는 언제나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사회적기업, 그리고 많은 분들의 민심이 모여 사회적 장애를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 주신다면 미래는 분명 건강하고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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