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읽기-20

마키유 피사로/‘몽마르트 대로, 겨울의 아침’
마키유 피사로/‘몽마르트 대로, 겨울의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어느덧 옷장은 두툼해 보이는 외투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제 더는 입지 않는 얇은 옷들은 베란다 속 옷상자에 집어넣어야 한다.

며칠 전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정리수납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 정리가 젬병인 나는 여름이 지난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여름옷 정리를 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핑곗거리로 외투 안 긴 남방 속에는 얇은 반소매를 입어야 할 것 같아라는 말로 옷장 안에 나의 여름 지분을 남겨뒀었다. 가만 보면 정리하지 못했다는 건 빨리 흘러가 버린 시간에 대해 아쉬움은 아니었을까? 옷장에 옷을 둔다고 여름이 길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제 겨울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도시의 계절은 가장 먼저 옷장에서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3회 등교하는 딸아이에게 어두운색 파카를 입히고 등교를 시킨다. 멀어져가는 아이를 13층 복도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울컥 가슴이 시린다.

문득 카미유 피사로가 그린 파리의 풍경이 생각났다. 2020년은 아마도 내가 살아가면서 집안에서 집 밖을 바라봐야 했던 시간이 가장 많은 해가 아닌가 싶다. 코로나로 꽤 길었던 집콕의 시간, 계절이 흘러가는 것을 집안에서 느껴야 했던 시간들.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에 그 피사로의 그림이 떠오른 걸까? 희한하게도 내가 피사로의 그림에 끌리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피사로도 요양 중이라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현재의 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카미유 피사로, 그는 수많은 젊은 예술가에게 인상주의의 영향을 미친 화가였다. 특히 클로드 모네, 폴 세잔, 에두아르 마네, 폴 세잔, 폴 고갱 등에게는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수많은 인상주의자의 전시를 구성하고 조력자로서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눈병으로 야외활동이 어려워지자 파리에서 창밖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예순이 될 때쯤이었다.

피사로는 인상주의 1회 전시 이후 12회가 열릴 때까지 여러 번의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면서 혹독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계속되는 파리의 혁명으로 인해 잠시 집을 떠나 있던 차 그가 그린 많은 작품이 도난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눈병이 지나쳐 건강까지 해쳤다면 일반 화가들은 작품 활동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건강이 피사로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밖을 나갈 수 없는 자신의 한계는 세상을 좀 더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그린 풍경화 건물 안에서 밖을 내다보던 파리의 일상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 풍경은 당시 느끼던 진짜 파리의 아름다운 본 모습이었다. 많은 군중이 모인 파리의 일상을 그린 열정 가득한 피사로, 그가 그린 풍경화에서 필자는 순간 포용력을 떠올렸다.

나갈 수 없는 실내에서 그림을 그린 피사로는 파리의 하루를 관찰했을 것이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 피사로는 그 모습을 보며 아마도 행복과 기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습만으로도 피사로는 위대한 화가였으며 동시에 따뜻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날카롭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인 화가들을 동료로 인정하면서 기꺼이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화가는 그와 가까이 지내며 조언을 받기 위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파리의 일상 풍경을 군중과 함께 담은 피사로,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는 풍경화가 아름다운 자연을 그려 냈다면 그는 덤덤하게 파리의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군중을 화폭에 담았다.

언젠가 어느 기사에서 요즘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에는 아빠가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쁜 일정으로 인한 소통 부재라는 분석 글을 봤다. 코로나19로 집 밖의 외출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 터라 그랬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그리워서 그랬을까. 그때의 파리와 지금 내가 서 있는 도시의 하루를 비교해 보니 왠지 오버랩된다.

다시 옷장에서 두꺼운 옷을 정리하고 가벼운 옷을 꺼낼 때쯤, 나는 다시 피사로의 그림을 보고 싶다. 그때는 부디 파리의 일상처럼 우리의 일상도 안녕하겠지?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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