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취업시키기 위해 스승이 나서는 것은 결코 청탁도 압력도 위법도 아니다!

신성대학교 김병묵 총장
신성대학교 김병묵 총장

프롤로그

학교로 들어가는 길가에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햇살 한 가닥 휘휘 두르고 학교로 들어가니 군데군데 선남선녀들이 사진을 찍으며 옷깃을 여민다. 때마침 그날은 신성대학교 졸업생들의 앨범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쌀쌀한 가운데 교육계의 원로이신 신성대학교 김병묵 총장을 만났다. 그는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출신으로 산을 몇 고개나 넘고 넘어서 서산중학교에 다니곤 했다동틀 무렵 학교로 가서 해 질 무렵 집으로 왔지만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눈빛 사이로 당시의 그리움이 회상되는 듯했다.

김병묵 총장은 약 30년 동안 경희대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12대 경희대 총장을 수행하는 동안 한의과대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2013, 신성대학교 제3대 총장으로 영입되어 취업률 97%, 5년 연속 대전·세종·충청권역 부동의 1위와 전국 그룹 전문대학 2위의 취업률을 나타내고 있는 신화적 인물이다.

본지는 서산 출신 신성대학교 김병묵 총장을 만나 지나온 삶의 이야기와 신입생 및 학부모들이 궁금해하는 학과 등 다양한 소리를 들어보았다.

Q 고향이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라는 소리를 듣고 참으로 반가웠다. 어린 시절 얘기를 해달라

당시는 서산군이었다. 유계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 가는 것보다 집에서 농사일하는 것을 원하셨다. 그래도 다른 집보다는 학구열이 높으신 분이셨기에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형님은 홍성고등학교에 유학을 보냈고 나는 서산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어머니가 싸 놓은 도시락을 보자기에 둘러매고 학교를 향해 산을 넘어서 통학을 했고 수업을 마치면 다시 어둑어둑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1943년 당시의 어려움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는 경제적 뒷받침이 어려우니 나랑 같이 농사나 짓자고 하셨고 나 또한 그러자고 아버지와 약속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수업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 찢어진 신문을 보여 주시며 국비 장학생으로 뽑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국립목포해양고등학교였다.

체질적으로 선원이 될 수 없는 몸이란 걸 인식하지 못한 채 선장까지도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아버지와의 약속을 파기하고 국립목포해양고등학교에 합격을 하였다.

하지만 사건은 고3 실습 중에 일어나고야 말았다. 추위가 미처 풀리지 않은 4, 실습선을 타고 여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실습 기간 5일 동안 내내 멀미로 인해 반 시체가 되어버렸다. 그 정도로 심각한 뱃멀미를 하였다.

꿈과 희망이 일순간 물거품이 되는 극도의 아픔이었다. 다시 꿈을 꿔야 했고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당시 충청도 출신 국어 선생님께 찾아가 나는 체질적으로 뱃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일반대학 진학으로 방향을 바꾸고자 하오니 도와주십시오. 선생님 힘으로 안 된다면 학생과장과 교장 선생님을 설득해서라도 밤 9시면 불을 끄고 취침해야 하는 제도에서 독서실에서 9시가 넘더라도 책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하고 간청을 했다. 나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결국 나는 교장 선생님의 허락하에 새벽 2시까지 공부할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장학생으로 경희대 법대에 합격하였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경희대 설립자 조영식 총장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고마운 은혜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 극복 희망 캠페인 릴레이에 동참한 신성대 김병묵 총장
코로나19 극복 희망 캠페인 릴레이에 동참한 신성대 김병묵 총장

Q ROTC 입대 후 월급 전액을 모교 대학에 기부했다던데?

정확히 말하면 ROTC 출신 장교로 입대 후 첫 월급은 부모님께 송금해드렸고 그 다음달부터 제대할 때까지 소액이지만 경희대로 월급 전액을 장학금으로 보냈다. 비공개 조건으로 보낸 것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학생 조회를 할 때 조영식 총장님께서 여러분 선배 중에 이런 선배가 있다며 공개하는 바람에 알려지게 되었다.

Q ‘일본 긴키대학 박사 1라 하여 총장님의 기사가 당시 한국일보에 실렸다.

그때만 해도 인문사회학분야 학위를 가진 분들이 드물었고 특히 긴키대학 70년 역사상 내외국인을 포함해 내가 갑호박사학위 1호 취득자였기 때문에 쟁점이 되었던 모양이다. 한국일보 외국판에서 기사화됐다.

긴키대학과 자매 관계를 맺어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4명이 갑자기 유학을 떠났다. 그중 3명은 일본 사회의 조센징이란 차별대우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중 귀국하였지만 나는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결국 갑호 1호 박사학위 취득의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Q 경희대학교로 돌아온 계기가 있었나? 그리고 귀국 후 대표적인 활동상황을 밝혀달라.

1980년대 대한민국에는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다. 모교에서는 학위를 취득하고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이 돌아와 모교를 지켜야 한다며 귀국하기를 원했고 나는 그해 4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교 총장실 유리창이 깨지고 엉망이 되어있었다. 어느날 족벌체제 물러가라!’라는 벽보에 내 이름 석 자가 올라와 있었다. 내가 설립자의 사위라는 것이었다. 내 아내의 성은 정 씨였으나 조 씨로 둔갑시켜 선동해댔다. 그런 상태에서 법학대학 교수로 부임했고 나는 젊은 교수 중에서 가장 엄하고 무서운 선배 교수로 출발하였다.

이후 학생처장, 법과대학장, 행정대학원장, 기획조정실장, 부총장을 거쳐 2003년 제12대 경희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2005년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2006년 대한민국ROTC중앙회 회장, 2011년 학교법인 덕성학원(덕성여대)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신성대 사회봉사단’ 발대식 장면
‘신성대 사회봉사단’ 발대식 장면

Q 2013년 신성대학교 제3대 총장으로 선임되셨다. 어떤 연유로 오게 됐으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는데?

신성대학교 설립자이신 태촌 이병하 박사님이 경희대 선배님이셨다. 설립 당시부터 조언도 하면서 친분을 유지해 오던 차 마침 고향이 서산이고 하니 내려와서 대학을 좀 발전시키자라며 영입제의를 해왔고, 2013년부터 지금까지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대학은 개교 25주년밖에 안 되는 막둥이 대학이지만 꿈을 심어주는 대학, 꿈을 키우는 대학, 꿈을 이루는 대학이 바로 우리 신성대학교이며, 특히 세계적 수준의 특성화된 명문 대학으로 꾸준히 발전해 나가고 있는 미래가 밝은 대학이다.

특히 교육부로부터 2018년도에 신성대학교는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되어, 3년간 약 100억 원의 국고지원을 받는 쾌거를 이뤘고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WCC, 2013~2017), 전문대학 특성화사업(SCK, 2014~2018), 사회맞춤형 선도대학(LINC+, 2017~), 취업보장형 고교-전문대학 통합교육육성사업(Uni-Tech, 2015~2021)및 공학기술혁신센터사업 등 대표적인 국가재정지원사업에 선정돼 많은 국고지원을 받고 있으며 전문직업교육을 다각화하고, 산업체 중심 고등직업교육으로 혁신해가고 있다.

이는 대학구성원 모두의 노고가 반영된 결과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직업교육의 메카, 취업이 잘되는 즐거운 대학으로 탄탄한 입지를 지켜나갈 것이다.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의 수업모습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의 수업모습

Q 취업률이 대단하다. 전국 그룹 전문대학에서는 2, 5년 연속 대전·세종·충청권역 1위인데 비결이라도 있나?

산업체 맞춤식 수업을 하다 보니 취업률이 다른 어떤 대학보다 높다. 5년 연속 대전·세종·충청권역 부동의 1, 전국 그룹 전문대학 2위의 취업률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한국CSR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대한민국 전문대학 지속성지수에서 3년 연속 10위권 내에 자리했으며, 한국생산성본부가 발표하는 국가고객만족도(NCSI)에서는 14년 연속 상위 10위의 위상을 보여 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신성대학교는 1995년 개교 이래 각종 평가에서 늘 최상위 결과를 보여 주며 달려온 대학이다.

또 신성대학교는 지리적으로 국내 최대 국가기간산업 클러스터가 있는 충남 북부권(서산-당진-아산-평택-천안) 환황해 경제벨트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지역산업의 직접적인 수요를 만족시키는 제철(철강), 전기, 자동차 중심의 공학계열과 지역사회와 연계한 휴먼서비스(보건·의료, 식품, 보육·유아교육 등) 분야의 특성화대학으로 선정되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대학이다.

당진 지역에는 현대제철을 비롯하여 약 1,800여 개의 기업이 있다. 이 중 600여 개의 기업과 우리 학교가 협약식을 체결했고, 그 기업의 임원들이 시간강사 또는 겸임교수로 위촉되어 학생들을 강의 및 실습으로 연결시키며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고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적어도 제자를 취업시키기 위해 스승이 나서는 것은 결코 청탁도 압력도 위법도 아니다라고. 우리 제자들을 취직시키기 위해서는 총장부터 앞장서서 회사의 대표·사장·회장 등을 끊임없이 만나며 부탁할 것이다.

신성대학교는 세계화의 흐름에 앞장서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전문 인재를 양성·배출하고 하고 있다.
신성대학교는 세계화의 흐름에 앞장서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전문 인재를 양성·배출하고 하고 있다.

Q 신입생들과 학부모님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이다. 중점학과는 뭔가?

첨단 컴퓨터·통신·측정기술 등 IT산업 분야와 자동차산업을 융합한 스마트자동차계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K-뷰티를 이끌 화장품신소재과학과 융복합 미디어디자인 교육을 통해 웹 애니메이터를 양성하는 만화애니메이션과 차세대 친환경·신재생에너지산업을 주도하는 환경시스템과 글로벌시대에 부합하는 유능한 태권도 전문지도자를 배출하는 태권도외교과 등을 융합·개편해 신산업분야에 지원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보건·의료와 헬스케어 관련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고 이로부터 창출되는 미래 산업수요에 걸맞은 맞춤형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융합형 헬스케어 교육과정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구체적으로 레저스포츠과와 물리치료과를 대상으로 헬스케어 융합 교과목 개발을 완료, 2020학년도 2학기 토탈 바디 컨디셔닝이란 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레저스포츠과·물리치료과의 도전을 필두로 대학이 보유한 전 학과에서 학과별 전공 벽을 허물고 상호 소통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융합되는 산업현장을 이해할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과 간 융합 전공·교과목을 창출하는 등 자율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강도 높게 자율 구조조정을 시행할 예정이다.

신성대학교 전경
신성대학교 전경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대학의 위기라는 작금의 현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돌입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겪게 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공통으로 직면한 고통이다. 물론 대학은 당면한 위기에 대응하는 모든 자구 노력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대학 기본역량진단과 혁신지원사업에 모든 대학이 보유한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격언처럼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의 혁신을 감행하는 대학에는 반드시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인내는 쓰나 그 결과는 달다라는 짧지만 깊은 의미를 품은 격언은 역사에서 늘 명료한 사실로 증명됐다. 대학이 추진하는 혁신은 대학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숙명적 결단이며, 이를 감행하는 것은 연무 속에서도 믿음을 갖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이다.

혁신의 과정은 때로 인내의 고통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총장을 포함한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 돼 최적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최상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사명감을 잃지 않고 혁신의 과정을 감내해낸다면, 신성대학교는 현재의 위기를 반드시 이겨내고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거듭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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