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30

의사표현이 정확한 두 자매들의 소풍 그리고 김밥
의사표현이 정확한 두 자매들의 소풍 그리고 김밥

-다연아 내일 소풍 가서 점심 때 뭐 먹고 싶어? 볶음밥이 좋아, 주먹밥이 좋아?

-싫어.

-볶음밥 먹을래? 소스 넣어서 맛있게 만들어 줄까?

-아니.

-주먹밥 먹을래?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서 한 개씩 냠냠 먹을래?

-아니.

-그럼 김밥 싸 줄까?

-.

-김밥은 너무 커서 한 입에 먹기 힘든데 그래도 김밥이 좋아?

-크면 이빨로 앙 해서 잘라 먹으면 되지.

의사표현이 확실하다. 내 질문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이 나오는 생후 30개월 된 다연이. 내가 당황하는 것을 본 남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무덤을 팠네. 말을 말았어야지.”

예전에는 몰랐다. 소풍은 마냥 설레고 즐겁기만 한 단어였다. 학부모가 되고서야 소풍에 김밥이라는 압박감이 수식어처럼 따라붙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편히 받아먹기만 할 때는 몰랐던 그 김밥에는 상당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볶음밥이나 주먹밥을 잘 먹으니 시간과 정성 대비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이번 소풍에는 김밥을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실제로 작년 소풍 때 내가 정성껏 싼 김밥을 첫째 다은이 대신 친구인 희성이가 거의 다 먹었다는 말을 듣고는 새벽부터 왜 그 고생을 했을까? 차라리 볶음밥을 해 줄 걸!’ 후회도 했다. 그런데 이번 다연이의 소풍은 전날에!! 그것도 저녁에!! 갑작스럽게 김밥으로 메뉴가 변경되었다. 천만다행인건 지난번 대형마트에 갔을 때 구입해둔 김밥세트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에 눈을 뜬 나는 김밥세트(,단무지,우엉,맛살,)에 달걀지단 한 가지를 추가해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연이는 김밥이 크면 잘라 먹겠다지만, 그러면 돗자리에 어떤 참혹한 결과가 펼쳐질지 눈에 선했으므로 김을 1/4로 잘라 만든 꼬마김밥이 제격이었다.

설레어 귀가 예민해진 다연이는 주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김밥 만드는 광경을 지켜보며, 내가 썰어 준 김밥을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다연이를 보니 김밥 그까이꺼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다.(사실은 알록달록 화려한 김밥이 아니라서...)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내 소풍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한 쟁반 가득 김밥을 쌌다. 김밥을 말아 곱게 참기름을 바르고 참깨가루까지 솔솔 뿌린 후 척척 쌓아놓던 김밥. 내가 가면 김밥을 쓱쓱 썰어 입에 넣어 주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바쁜 농사철에 그렇게 김밥을 싸고도 또 논으로 밭으로 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김밥은 너무 커서 한 입에 먹기 힘든데 그래도 김밥이 좋아?"라고 물으니 어린 다연이는 "크면 이빨로 앙 해서 잘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
"김밥은 너무 커서 한 입에 먹기 힘든데 그래도 김밥이 좋아?"라고 물으니 어린 다연이는 "크면 이빨로 앙 해서 잘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

그 날 다연이는 신나게 뛰어 놀다가 내가 싸 준 김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을 것이다. 식욕이 왕성한 아이라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생각을 바꿔 먹기로 했다. ‘재료는 준비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소신으로 김밥에 대한 부담감을 확 덜어내기로.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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