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첼리스트 유경옥 화백이 전하는 내 삶의 뜨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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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첼리스트 유경옥 화백이 전하는 내 삶의 뜨락에서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0.27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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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같은 존재 ‘첼로’만 생각하면 심장에 불이 붙는 것처럼 뜨거워진다
첼리스트 유경옥 화백(해든아트홀·해든갤러리·하얀커피꽃카페 운영)
첼리스트 유경옥 화백(해든아트홀·해든갤러리·하얀커피꽃카페 운영)

프롤로그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틈만 나면 화폭에 마음을 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 있는 자리가 내 꿈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주저앉았다. 꿈이 달아나 버렸을 때의 그 아득함이라니.” 지금도 그 시절 얘기를 하면 자꾸 목소리가 갈라져 틈 사이로 물기가 서려진다.

유경옥 첼리스트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참 많다.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인이자, 서산시 대청말길 74에서 하얀커피꽃카페를 운영하는 대표. 또 작품을 전시하는 해든갤러리 관장이기도 하고, 공연장을 운영하는 ‘해든아트홀대표기도 한 그녀는 첼로 연주가이자 그림을 그리는 화백이다.

커피숍 출입구에 심겨 있는 커피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을 보고 커피 꽃은 하얀색이다. 꽃말은 너의 아픔까지도 사랑해인데 돌이켜보면 커피를 수확하기 위해 살아왔던 노예의 아픈 삶이 커피 속에 베어져 있어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녀의 인생 뒤안길은 화가의 꿈을 접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자신이 갈망하던 무언가를 미처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엄마와 아내로서 아등바등 가족들의 부표가 되어 쉼 없이 살아왔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날 문득 첼로의 음률에 흠뻑 빠져 늦깎이 나이에 대학 문을 두드렸다. “둔해진 나이에 활털을 처음 잡았는데 심장이 터질 듯했다특히 붓털 같은 느낌의 첼로 소리를 듣는데 그전까지 몰랐던 살아있음의 고귀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데 어깨너머로 하얀 커피 꽃 같은 시간이 아련히 스쳐 지나감을 느꼈다.

본지가 유경옥 첼리스트를 만나기 위해 달려간 날은 ‘2020 내포아트페스티벌 태안관이 그녀가 운영하는 해든갤러리에서 전시되던 오후 적당한 시간이었다.

꿈을 잃어버렸을 때의 막막함이 너무 힘들었다는 유경옥 첼리스트
꿈을 잃어버렸을 때의 막막함이 너무 힘들었다는 유경옥 첼리스트

# 꿈을 잃어버리고부터 왜 서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의 미래는 어떨지 막막하기만 했다.

미대를 가기 위해 틈만 나면 화폭을 펼쳤던 유경옥 첼리스트, 이런 모습을 보신 선생님들은 어련히 그 길을 갈 제자라 생각해서인지 작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환경이 화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지 못한다는 걸 입시 문턱 앞에서 알았다며 첫사랑이 갑자기 떠나는 느낌이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심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부친은 서산군보건소에 근무하셨고 어머니는 현모양처였다. 두 분은 24녀 우리 형제들을 사랑으로 키워주신 분들이셨다고 회상하며, “인지면 인정국민학교(현 폐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림을 잘 그리는지는 몰랐다. 중학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너 그림 할래?’라는 소리를 했고, 이 말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 길이 당연히 내 길이라 생각했다. 입시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아니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은 내 사전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열망만 가득했지 도전정신이라곤 별로 없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고 혼자 해결할 자신이 없어 결국 미대 가는 걸 포기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재주가 참 많았는데 그걸 못 가르쳐줬다고 한탄하신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좋은 시절은 아니었다고 말씀은 드리지만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속에 물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팠던 기억은 있다. 그 일로 인해 내 인생의 한 부분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느꼈던 사춘기 시절, 오죽했으면 내가 왜 서 있는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 미래는 어떨지 막막하기만 했다.

탈출구처럼 남편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4남매를 낳았다. 어쩌면 내 꿈과 아이들의 성장이 반비례하면서 차츰차츰 미술에 대한 생각은 기억 저편으로 꾹꾹 눌러 버렸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제2악장’을 객석에 앉아 듣는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는 그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제2악장’을 객석에 앉아 듣는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는 그녀.

#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제2악장을 듣는데 뜨거운 것이 목젖을 타고 올라와 펑펑 눈물을 흘렸다.

시간여행을 하다 어느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아주 오래전 소중한 것을 두고 온 걸 우연히 발견할 때가 있다. 다시 생각하니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해내곤 화들짝 놀라서 뛰어가 다시 가져왔던 일들. 아마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유경옥 첼리스트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다. 언젠가 본의 아니게 경제적 이유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꿈. 그 미련이 심장 끝자락에 고드름처럼 움트고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도 못한 어느날, 새로운 도전이 머리를 들고 가까이 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즈음 마음에 갈증이 느껴져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그녀 앞에 서산시문화회관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이 개최됐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난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제2악장을 객석에 앉아 듣는데 뭔가 뜨거운 것이 목젖을 타고 올라오더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펑펑 눈물을쏟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미스터리하다”는 그녀는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삶의 고뇌가 눈물이 되어 흘렀던 건 아닐까 싶다고 회상했다.

그림은 음악에 대한 마음을 에워싸주는 그런 미묘한 존재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림은 음악에 대한 마음을 에워싸주는 그런 미묘한 존재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 붓털 같은 음률이 공간에 가득 차면 심장에 불이 붙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걸 느낀다.

막내아들이 고1 때 그녀는 첼로를 전공하기 위해 대학교 문을 두드렸다. 가족들 누구 하나 지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았던 삶만 있었지 소위 말하는 타고난 재능은커녕 ··도 없는 사람이 첼로를 전공한다니 가당키나 했겠나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이 가을을 많이 담고 있었다. 

큰 결심 끝에 출장 가는 남편 윗주머니에 편지 한 장을 써넣었다는 유경옥 첼리스트. “나는 명품 가방도 필요 없다. 그냥 내가 가야 하는 길이 바로 첼로다. 하지만 당신이 하지 말라면 하진 않겠다. 다만 가족이 늘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는 걸 참고해 달라고 했다. 이 글을 읽었던 그녀의 남편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단다.

그녀는 말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상이 너무 쓸쓸했다. 첼로를 배운다는 것은 수심이 깊은 강물을 건너는 일처럼 어려우리라 생각은 했다. 때로는 '차라리 시작하지 말아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는 내 꿈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결국 수심을 지나 건너편 뭍으로 올라가기 위해 출사표를 과감하게 던졌다라고 고백했다.

가정을 두고 먼 곳으로 가기에는 무리수가 따랐다. 인도 속담에 의하면 간절히 원하면 신은 스승을 보내준다고 했던가. 마침 가까운 대학에서 첼로를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신설해 주었다. 꿈이 너무 아파서 애써 외면하며 도피했는데 그런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첼로는 선물처럼 내게 다가와 줬다.

붓털 같은 음률이 공간에 가득 차면 심장에 불이 붙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상했던 것은 첼로를 전공하면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신기하게도 필력이 사장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배움을 이어나갔다. 아마도 너무 큰 욕심이 없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는 유경옥 첼리스트는 “(그림)첫사랑을 오랜만에 만났더니 실망한 느낌이 이럴 때 써도 되나 모르겠다. 그림 아니면 죽을 것 같았던 예민한 시절,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던 그런 열정들이 첼로를 만나면서 많이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 지금 바라본 그림은 음악에 대한 마음을 에워싸주는 그런 미묘한 존재 같은 느낌이었다”며 조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2층 해든아트홀에서는 음향과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2층 해든아트홀에서는 음향과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 인간의 음성과 비슷한 음률 첼로는 마치 도깨비 같은 존재였다.

발달하지 않은 근육과 둔해진 감각 나이에 얼마나 힘이 들었던 첼로였던가. 그런데도 첼로를 만지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당시를 돌아보면 마치 꿈결 같았다는 말을 했다.

인간의 음성과 비슷한 첼로의 음률은 약간의 치료목적으로도 쓰인다는 그녀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면서 공부하기에 굉장히 좋은 악기가 바로 첼로다. 그것은 내게 마치 도깨비 같았다. ‘왜 안 넘어와. 씨름 한번 해보자고 하면 넘어올 듯 넘어올 듯 안 넘어오는 느낌. 이것이 바로 유경옥 표' 첼로.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욕심을 부릴 수가 없다. 이것이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첼로를 사랑하는 나만의 비법이라고 말하는데 그녀에게서 하얀 커피 꽃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기자는 그녀가 운영하는 2해든아트홀을 보며 무대가 여느 곳보다 너무 좋다. 언제 오픈했냐? 관장님이 들려주는 첼로 소리를 듣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2018년에 처음 공연이 열렸다. 사실 여기 장소는 교수님들이 보시고 공연장으로 쓰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제안을 해서 시작하게 된 공연장이다. 특히 이곳은 음향과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 조만간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지면 무대에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첼리스트 유경옥 화백이 1000평 규모에 '해든아트홀·해든갤러리·하얀커피꽃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첼리스트 유경옥 화백이 1000평 규모에 '해든아트홀·해든갤러리·하얀커피꽃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에필로그

포근하면서 사람의 향기가 울려 퍼지는 공연장에서 정 많은 사람과 함께 힘든 일상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는 공연을 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음악이 끝나면 1층 갤러리로 내려가 작가들이 그린 작품을 감상했으면 좋겠다. 갤러리 투어가 끝나면 다시 자박자박 걸어서 하얀커피꽃카페에서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 한잔을 나누고 싶다.

인터뷰 도중 문득 유경옥 첼리스트는 시간이 한참 지난 팜플렛 한 장을 불쑥 내미는데 그곳에는 가슴속 오랫동안 해묵어 온 어혈 같은 것이 울컥 올라왔다. 아주 가끔은 촉수를 오그라들게 할 만큼 스스로 벅참이 욕심을 내다 눈물이 되기도 한다. 아직도 가슴속에 불덩이를 담고 있었나 보다. 이럴 땐 긴 생머리를 바람에 내어준다.

뺨에서 쇄골을 따라 어깨를 돌아 가차 없이 가슴팍을 파고드는 저돌적인 바람 여자, 기류가 쏴 해지면 울림이 큰 악기가 되어 전율을 느끼게 한다. 강하고 부드러운 바람 같은 서산아트가 많은 인연과 함께 서산의 큰 울림이 되길 소망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서산시 대청말길 74’에는 슬프거나, 기쁘거나, 행복하거나, 세월의 굴곡진 사람이거나, 누구라도 괜찮을 관객들이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즐겨도 될 무대와 갤러리, 그리고 카페가 그리움을 안고 우두커니 서 있다.

배우 이경영이 감탄하고 간 무대에서 이탈리아 재즈 빠스꽐레 스테파노 트리오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으면 어떨까. 아니면 주인장인 유경옥 첼리스트의 가슴 절절한 첼로 음률을 들으면 또 어떨까.

삶이 힘들거나 무거울 때 잠시 들러도 좋을 서산의 문화살롱해든아트, 10월은 왠지 차가워진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솟아날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난다.

삶이 힘들거나 무거울 때 잠시 들러도 좋을 ‘서산의 문화살롱’ 해든아트
삶이 힘들거나 무거울 때 잠시 들러도 좋을 ‘서산의 문화살롱’ 해든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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