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 김영수 충청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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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 김영수 충청남도의원
  • 최미향 기자
  • 승인 2020.10.23 2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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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심부름꾼으로 숙이고 또 숙이며 부지런히 일할 터
김영수 충청남도의원
김영수 충청남도의원

서산시대 핫 코너 릴레이인터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충남도의원들의 근황과 생각들을 직접 묻고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Q 어린시절 의원님을 돌아보면 어땠나?

충청도 서산 토박이로서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평범한 경제 수준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농부이신 아버지, 전업주부이셨던 어머니, 두 분의 사랑은 5남매 중 맏이인 내게 특별했기에 지금도 4명의 동생은 고인이 되신 두 분의 지나치고 남달랐던 맏이 사랑을 얘기하며 추억 속에서도 툴툴거린다.

Q 부모님의 교육관과 의원님의 교육관은?

모든 부모가 다 그러하듯 당신들 보시기에도 총기가 있어 보이고, 뭔가 좀 남달리 돋보였던 모양이다. 너덧 살 때쯤의 기억이다. 어쩌다 시골길을 걸으며 산술문제를 곧잘 내어주시고 나는 또렷이 사칙 연산의 답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진학을 이런저런 이유로 집 근처로 정했다. 그때의 불편했던 결정이 나의 청소년 사춘기를 심하게 흔들어 댔다. 이십대는 오롯이 나만의 세상에서 살았다. 학업을 접었고, 몇 명의 친구들과만 가끔 연락하며 갯마을의 시골 청년으로 묻혀 지냈다.

부모님은 딱 한 가지를 강조하셨다. “거짓말하지 말라나 또한 내 자식들에게 다른 것은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말라

이십대 후반 갑작스럽게 부모님 모두 돌아가신 후로 충격과 변화가 내 인생에 큰 반응으로 다가왔다.

Q 왜 정치를 하시는지?

새 삶을 산다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며 어려서 막연히 꿈꿔봤던 정치의 길을 떠올렸고, 꽤 젊은 나이에 무모하리만큼 당돌하게 도전을 시작했다. 초창기 몇 년은 격려와 긍정적 반응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십여 년 이상 낙선의 길을 걸으니, 외면하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그 속에서 추구하는 것이 있었기에 정치로 나선 길을 접지 않고 묵묵히 걸어왔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다가 도의원이 됐다.

Q 충남도가 나가야 할 방향은?

충남의 현주소는 전형적인 도농복합형 지방정부이다. 추진되는 여러 업무 중 문재인 정부의 초점 중 하나인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극복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이다.

미세먼지를 일으키고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석탄화력발전 감소를 유도하고, 친환경 대체에너지원을 찾고 실행하는 것 또한 과제이다.

인접 해양환경을 보전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교육·의료 인프라가 좀 더 채워져야 할 숙제로 인식하고 있다.

Q 가로림만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곳은 내가 청년기를 보낸 내 인생의 추억장소다. 2011년 서산시청 앞 광장 천막에서 박정섭 위원장과 겨울을 보냈다. 몸에 골병이 들 정도로 그렇게 지냈다. 단체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했기에 묻힌 부분도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자랑하고 싶다. ‘내게 가로림만?’ 말이 필요 없다. 그해 겨울의 광장 천막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오랜 준비와 도전, 낙선과 좌절 그러다가 거의 마지막 같은 나이 때에 도의회에서 일할 기회를 주셨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다. 늘 말씀드린다. “일하라고 뽑은 선출직 앞에서 당당하게 일을 부리시라고, 고맙다고 고개 숙이지 마시라고

공공의 심부름꾼으로 숙이고 또 숙이며 몸은 부지런히 일터에서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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