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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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 서산시대
  • 승인 2020.10.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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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노인회지회 온석동하입석 김무겸 노인회장
서산시 노인회지회 온석동하입석 김무겸 노인회장

내 나이 여든 중반의 봄이었다. 효드림 방문 요양센터를 운영하는 직장 후배가 찾아와 국시원에서 실시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보라는 권유를 했다. 언제 요양원에 들어가 보살핌을 받아야 할 지 모르는 내 나이에 무슨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느냐고 거절을 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번의 만남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몸이 안 좋은 집사람을 집에서 요양보호를 할 수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라는 후배의 설득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일 간호학원 야간반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야간반 14기가 개강을 하니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80중반의 노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했다.

요양보호사 양성 교재와 몇몇 참고서 등을 넣어 묵직해진 책가방을 메고 매일 학원에 갔다. 다른 이들은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여든의 나이에 새로운 무게를 짊어지게 된 내 모습이 대견한 건지, 초라한 건지. 저무는 해를 향해 걷는 걸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교육을 받는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딸 같은 젊은 수강생들에게 어르신 대우를 받으며 교육을 받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 너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를 서산시 노인회 부회장이라 했더니 교육 기간은 물론 지금도 교육생들에게 나는 회장님으로 불린다.

2개월의 교육을 마치면 10일간 80시간을 요양원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된다. 청소부터 시작하여 원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식사시간이 되면 침상에 식판을 배식하고 혼자 식사를 할 수 없는 분들께는 직접 식사를 입에 넣어 드리며 식사를 돕는다. 말도 못 하고, 눈도 뜨지 못하는 분들께도 식사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다 먹고 나면 식사가 끝났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돕고자 하는 내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했다.

침상에 누워 눈을 깜빡일 힘도 없는 분들이 만약 당신들 손으로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 기적이란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것 같이 대단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요양원에 가서 실습을 해보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한 번이라도 땅에 발을 디디고 걸음을 뗄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길을 걷고, 원할 때 밥을 먹고, 가족과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에게는 기적과 같은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지 모르는 삶을 살아왔구나. 그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는 더 다리에 힘을 줘 걷곤 했다.

실습하는 동안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들을 살펴보니, 식사가 끝나면 이도 닦아드리고 면도도 해드리며 목욕은 물론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모 자식 간에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그저 미소 지으며 묵묵히 해내는 요양보호사들을 보며 천사라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도움을 베푸는 요양보호사들이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 시간에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여러분들도 앞으로 몇 십 년 후면 다 여기 올 분들이라며 요양보호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몸집이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남자이고, 그 다음이 시내에서 거리가 먼 시골에 사는 분이란다. 반면에 제일 선호하는 사람은 시내에서 집이 가깝고 몸집이 작은 여자분이라고 했다.

열흘간의 실습을 마치고 국시원에서 실시하는 제30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봤고,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충남지사의 자격증을 받고 재가 요양보호사로 취업을 했다. 여든 중반에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된 것이다. 합격 소식과 취업 소식을 들은 동기생들은 나에게 회장님 멋져요”, “최고예요라며 자기 일 못지않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 주었다.

지금은 가족요양 보호사로 아내를 돌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요양보호사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다. 장기 요양보험 제도에 관심이 없었을 땐 몰랐는데, 교육도 받아보고 실습도 해 보니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무척 좋은 제도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가족요양 보호사로서 일하는 것은 장점이 참 많다. 우선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시간에 쫓기지 않아 좋고, 상사가 없으니 윗사람 눈치를 볼 일이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나이 제한이 없으니 80세가 넘어도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정년퇴임 걱정 없는 훌륭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내 건강이 할 수 있는 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라니, 참으로 특종직이 따로 없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젊은 시절 공직생활을 한다고 집안일을 돌보지 못 했고, 그 많은 농사일은 모두 자연스레 아내의 몫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건강이 좋지 않아 누워 지내는 아내를 보면 내 마음 한 편에는 항상 미안함과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해왔던 일들 중에, 평생을 헌신하고 고생한 아내를 요양보호사로서 옆에서 보살펴 주는 일이 가장 보람된 일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보라고 권유해 보면, “지금 우리 나이에 무슨...”, “이미 늦었어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100세 인생에서 우리의 인생은 아직도 달려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삶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인생의 끝,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곳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나를 기다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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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서산시 노인회지회 온석동하입석 김무겸 노인회장

 

내 나이 여든 중반의 봄이었다. 효드림 방문 요양센터를 운영하는 직장 후배가 찾아와 국시원에서 실시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보라는 권유를 했다. 언제 요양원에 들어가 보살핌을 받아야 할 지 모르는 내 나이에 무슨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느냐고 거절을 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번의 만남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몸이 안 좋은 집사람을 집에서 요양보호를 할 수 있으니 한 번 도전해보라는 후배의 설득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일 간호학원 야간반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야간반 14기가 개강을 하니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80중반의 노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교육을 받으러 간다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했다.

요양보호사 양성 교재와 몇몇 참고서 등을 넣어 묵직해진 책가방을 메고 매일 학원에 갔다. 다른 이들은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여든의 나이에 새로운 무게를 짊어지게 된 내 모습이 대견한 건지, 초라한 건지. 저무는 해를 향해 걷는 걸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교육을 받는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딸 같은 젊은 수강생들에게 어르신 대우를 받으며 교육을 받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 너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를 서산시 노인회 부회장이라 했더니 교육 기간은 물론 지금도 교육생들에게 나는 회장님으로 불린다.

2개월의 교육을 마치면 10일간 80시간을 요양원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된다. 청소부터 시작하여 원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고, 식사시간이 되면 침상에 식판을 배식하고 혼자 식사를 할 수 없는 분들께는 직접 식사를 입에 넣어 드리며 식사를 돕는다. 말도 못 하고, 눈도 뜨지 못하는 분들께도 식사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다 먹고 나면 식사가 끝났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돕고자 하는 내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했다.

침상에 누워 눈을 깜빡일 힘도 없는 분들이 만약 당신들 손으로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 기적이란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것 같이 대단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요양원에 가서 실습을 해보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한 번이라도 땅에 발을 디디고 걸음을 뗄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길을 걷고, 원할 때 밥을 먹고, 가족과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에게는 기적과 같은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지 모르는 삶을 살아왔구나. 그것을 깨닫고 난 이후에는 더 다리에 힘을 줘 걷곤 했다.

실습하는 동안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들을 살펴보니, 식사가 끝나면 이도 닦아드리고 면도도 해드리며 목욕은 물론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모 자식 간에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을 그저 미소 지으며 묵묵히 해내는 요양보호사들을 보며 천사라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도움을 베푸는 요양보호사들이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 시간에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여러분들도 앞으로 몇 십 년 후면 다 여기 올 분들이라며 요양보호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몸집이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남자이고, 그 다음이 시내에서 거리가 먼 시골에 사는 분이란다. 반면에 제일 선호하는 사람은 시내에서 집이 가깝고 몸집이 작은 여자분이라고 했다.

열흘간의 실습을 마치고 국시원에서 실시하는 제30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봤고,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충남지사의 자격증을 받고 재가 요양보호사로 취업을 했다. 여든 중반에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된 것이다. 합격 소식과 취업 소식을 들은 동기생들은 나에게 회장님 멋져요”, “최고예요라며 자기 일 못지않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 주었다.

지금은 가족요양 보호사로 아내를 돌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요양보호사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다. 장기 요양보험 제도에 관심이 없었을 땐 몰랐는데, 교육도 받아보고 실습도 해 보니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무척 좋은 제도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가족요양 보호사로서 일하는 것은 장점이 참 많다. 우선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시간에 쫓기지 않아 좋고, 상사가 없으니 윗사람 눈치를 볼 일이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나이 제한이 없으니 80세가 넘어도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정년퇴임 걱정 없는 훌륭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내 건강이 할 수 있는 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라니, 참으로 특종직이 따로 없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젊은 시절 공직생활을 한다고 집안일을 돌보지 못 했고, 그 많은 농사일은 모두 자연스레 아내의 몫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건강이 좋지 않아 누워 지내는 아내를 보면 내 마음 한 편에는 항상 미안함과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해왔던 일들 중에, 평생을 헌신하고 고생한 아내를 요양보호사로서 옆에서 보살펴 주는 일이 가장 보람된 일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보라고 권유해 보면, “지금 우리 나이에 무슨...”, “이미 늦었어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100세 인생에서 우리의 인생은 아직도 달려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삶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인생의 끝,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곳에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나를 기다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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