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 문화재 전문위원 정도영 선생

문화재 전문위원 정도영 선생
문화재 전문위원 정도영 선생

이제 막 예순인 나이의 그에게는 바람냄새가 났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고 약간의 바람이 조금씩 가슴을 적실 무렵, 그의 손에는 색소폰이 들려져 있었고 갈바람 잔잔히 타고 들어온 창틈 사이로 그가 부는 음악이 창틈 사이로 흘러나갔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소녀 가수 진미령 곁에서 드럼을 쳤고, 포크의 대명사 채은옥 씨와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임희숙 씨 곁에서는 기타를 쳐 주었던 정도영 문화재전문위원을 대산읍 본갤러리에서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들었던 아련한 선율이 머릿속을 맴돌즈음 그와 눈이 마주쳤고, 기자는 조심스레 다가가 악기를 다룬 지 몇 년이나 됐냐?”고 물었다. 선생은 벌써 40여 년이나 됐으니 참 길기도 하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딸이 미국 캘리포니아 의과대에서 공부했는데 그 아이 뒷바라지를 하기도 버거웠다. 차를 18대나 팔았다. 왜냐하면 돈이 부족하면 타고 다니던 차라도 팔아야 송금에 보탤수 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는 아끼던 악기를 팔기도 했다.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음악이 곁에 있어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을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긴 시간 기러기아빠로 살았다는 얘기를 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기자가 궁금하여 음악 외에 어떤 일을 또 하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그는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30여 년째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정도영 선생은 고미술문화대학 졸업생 1기다. 그가 대학을 다닐 무렵,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에서는 공항 감정위원실에 상주할 사람이 필요했다. 전액 국비로 180명과 함께 대학을 다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직업은 문화재 진품명품 등의 가치를 조명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문화재위원회가 하는 일은 주로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과 해제 보호물 또는 보호구역의 지정과 그 해제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의 인정과 그 해제 중요한 수리 및 복구의 명령 현상변경 또는 국외반출의 허가 환경보존을 위한 행위의 제한과 금지 또는 시설의 설치·제거·이전 등의 명령 매입 매장문화재의 발굴 보존관리 또는 활용에 관한 전문적·기술적 사항으로서의 중요사항 등 문화재관리에 관하여 문화재청장이 부의하는 사항을 조사, 심의한다.

기자가 만난 그날도 누군가로부터 의뢰받은 사진을 보며 진품인지 가품인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에 대해 통화를 하곤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기가자 물었다. “사진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냐?”. 그는 석 장의 사진만 보내주면 연대와 가격 등이 나온다고 말했다.

문화재 전문위원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을 묻자 선생은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느 날 한 분이 자신에게 삼국시대 국보급 불상 30억짜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감정을 의뢰했다. 딱 보는 순간 안타깝게도 가짜였다. 관도 자세도 다르고 얼굴 안면 등등. 사실 이런 일들은 다반사다. 의뢰인의 실망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작년에는 식당을 하시는 어떤 아주머니가 태안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서 올라왔다는 고려청자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5억 정도는 갈 것 같다. 팔아서 남편 배도 사주고 본인 사업장도 확장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감정 결과는 고려시대운학문매병으로 진품이었지만 금액적으로는 3천만 원 가량밖에 나오지 않았다. 물론 예약한 음식은 먹지도 못하고 쫓겨가다시피 올라간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이렇듯 웃지 못할 일들도 종종 있다.”

문화재 전문위원 정도영 선생은 스트레스로 힘이 빠질 때 그럴 때 음악을 찾는다며, 그의 음악 예찬론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음악은 청초한 내츄럴이다. 또 음악은 삶의 애환이고 인생이다. 그리고 음악은 마음의 파동을 잠재워주는 힐링이다. 누구라도 가슴이 헛헛할 때 음악을 듣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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