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쌤의 미술읽기-⑰

뮤즈(muse)는 작가나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말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음악 및 다른 예술 분야를 관장하는 신을 말한다. 그림에서는 사랑하는 연인, 예술적 영감을 주는 그림 속 주인공을 뜻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보다 10살 연상인 갈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갈라는 그의 모델이 된다. 그리고 1930년대 초부터 갈라의 모든 그림에 갈라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인을 남긴다. 그는 그녀를 이렇게 언급한다. “그녀는 내 인생의 소금이며, 나를 표현해 주는 동화다라고. 이 얼마나 로맨틱한 말인가! 화가들에게는 저마다의 뮤즈가 있다.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화가 에곤 쉴레. 몇 년전 그를 다룬 영화가 나왔었다. 훈훈한 외모의 미대 오빠같은 그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네명의 뮤즈들을 중심으로 풀어낸 영화였다. 훈훈한 외모의 에곤쉴레는 남방 하나 대충 입어도 예술적일 것 같은 패션센스, 예민한 듯 보이는 살짝 마른 턱선과 긴 손가락, 그리고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눈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화가 에곤 쉴레. 이런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의 뮤즈가 되면 어떨까? 하지만 미대 오빠는 때론 이기적이며 사랑과 물질 앞에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 나쁜남자 미대 오빠 에곤 쉴레가 있다.

에곤 쉴레(1890~1918)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로 철도청 고급 관료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위로는 누이 두명, 그리고 아래로는 여동생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철도 기술자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미술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를 유급하게 되었고 16(1906)에 최연소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평생의 스승인 구스타브 클림트를 만나게 됐지만 3학년 무렵, 전통적인 가치만 추구하는 화풍에 반발해 중퇴를 하면서 새로운 예술가 그룹을 결성한다. 표현주의 화가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1897년 창립된 오스트리아의 빈 분리파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편, 그의 가족 관계는 조금 뒤틀려 있었다. 쉴레의 아버지는 그가 15살 때, 매독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때 심각한 정신착란 증상을 겪은 아버지의 발작을 보게 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슬퍼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꽤 깊은 충격을 받게 된다. 이때 여성과의 사랑에 대해 비뚤어진 씨앗이 심겨진 것일까. 자신에게도 무관심했던 어머니와의 불화는 여동생에 대한 집착으로 나아가 애정으로 이어졌다. 에곤 쉴레는 종종 여동생 게르티 쉴레를 뮤즈로 삼아 누드모델로 그렸고 그것은 곧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오래전 보았던 영화 몽상가들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에곤 쉴레를 다룬 영화인 줄 모르고 보았던 그때, 연인이 아니라 두 남매가 누드로 누워있는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다. 나에게도 남동생이 있는데 누드라니... 오우!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장면이다. 근친 논란이 있던 여동생은 에곤 쉴레의 친구인 안톤 페슈카와 결혼하게 된다.

그 이후 그의 뮤즈가 되어준 여인이 있었다. 그의 작품의 모델이 되어준 17살의 발리 노이질(1894~1917)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그녀는 쉴레의 보호자이자, 연인이자 모델이었다. 그녀는 쉴레가 무명시절부터 함께한 사이로 풍기문란죄로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수발을 들고 그림배달을 하는 등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쉴레에게 버림받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쉴레는 참으로 나쁜 남자였다. 그녀와의 동거를 정리하고 에곤 쉴레가 택한 여인은 부유한 가문의 딸 에디트 하름스(Edith Schiele)였다. 쉴레는 어처구니 없게도 발리와의 결혼생활 도중에도 에디트없이는 여행을 갈 수 있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사랑을 하고 싶지만 그것은 안정된 가정도 갖고 싶다는 그의 이기적인 욕망이었다. 그들은 결국 그렇게 결별하고 말았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사라예보사건으로 1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쉴레는 전시회를 열며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했지만, 결혼 3일 만에 징집이 되었고, 에디트는 에곤 쉴레를 따라 이곳저곳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그러던 중 에디트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인 스페인 독감에 걸려 안타깝게도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에디트를 잃은 쉴레는 큰 충격에 휩싸여 결국 쉴레도 3일 뒤 죽고 말았다. 당시 덮친 스페인 독감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에곤 쉴레의 이기적인 욕망과 함께 그의 생명까지도 빼앗아 가버렸다.

짧은 생애 동안 에곤 쉴레는 300점의 유화와 2,000여 점의 데셍 그리고 수채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에 남겨진 뮤즈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의 천재성 속에 드러낸 이기적 욕망이 어쩌면 잘살아 보겠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1세기 작가의 꿈을 꾸었던 필자는 누군가의 뮤즈가 되어보지 못한 현실이 조금은 서글펐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이 바뀌어 스스로에게 위안을 던진다.

괜찮다 괜찮아. 나의 훌륭함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가 된 것이니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강민지 커뮤니티 예술 교육가/국민대 회화전공 미술교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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