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사는 법】 요양보호사 7학년 1반 곽민지 여사

요양보호사 7학년 1반 곽민지 여사
요양보호사 7학년 1반 곽민지 여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건데 왜 나이 갖고 그려. 그건 쌓여가는 것인디. 개똥같은 소리 하지말어. 나이가 별거간? 그까짓게 무슨 대수여, 100살 먹어도 움직일려면 내가 관리하기 달린 것인디. 맨날 운동하고, 걷기도 하고, 기계 사다 놓고 집에서 덜덜이도 하고, 석류도 먹고. 죽으면 고만이여. 빈손 갖고 가는데 뭣이 아등바등 산다니.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면 고만이여. 애상받칠 것 하나 없어.”

얼마전 곱게 넘긴 머리카락 사이로 파란 하늘을 이고 온 씩씩한 걸음의 요양보호사 곽민지 여사를 만났다.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이 연세에도 이렇게 건강하냐?”는 질문에 특유의 까르르 넘어가는 듯한 웃음을 날리며 이런 얘기를 했었다.

요즘처럼 코로나블루시대에 주로 죽겠다고 짜는 사람들만 만나다가 곽 여사님을 만나니 순간 당황해서 모깃소리만 하게 다들 힘들다고 하던데 씩씩하셔서 너무 좋아요라고 얼버무렸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슬퍼할 거 없어. 인생 즐겁게 살면 즐거움 속에서 다 없어지는 거여. 오늘 하루 즐겁게 만족하고 살면 그만이여.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가니께라며 시원하게 일침을 가하는 대한민국 일등 여사님.

에너지가 워낙 강해서 옆에 서 있는 사람조차 괜히 힘이 불끈불끈 솟게 하길래 이런 힘은 어디서 오냐고 묻자 예상했던 답을 풀쩍 뛰어넘어 또 기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일과 고스톱이여 까르르~” 오오 놀라워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멋진 분을 만나다니! “오전에 3시간씩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는 오후에 몇 시간 고스톱을 쳐. 우리 신랑이 76세인디 일찍 집에 들어가면 서로 싸우기만 하지 뭐더러 그 짓을 햐. 자고로 여자는 현명하게 살어야지. 지난번에는 뭐라 하길래 한마디 혔어. ‘내가 산을 팔대? 집을 팔대? 돈을 달라거대? 이 나이에 하고 싶은 것도 못 허냐? 나 치매예방한다 왜!’ 그랬지. 아무 소리 안 하더라고. 그다음부터는 고스톱 치고 당당히 현관문 열고 신랑 부러 들으라고 말해 이쁜 민지왔어~’하면 밥해 놓고 찌개도 끓여놓고 지달리더라고 호호호.”

고정관념인가? 71살 어르신 성함이 민지라는 말에 왜 망연자실 고개가 갸우뚱할까. 1940년 당시의 이름 중에 민지라는 이름이 몇이나 될까 싶어 조심스레 또 물었다.

당시 연세치고는 성함이 너무 이쁘세요라고 하자 대뜸 까르르 옥구슬 구르는 소리가 들리며 내 이름 이거? 개명한 지 10년 정도 됐어. 원래 이름은 해숙인디 안 좋다고 혀서 바꿨지. 하고 나니께 하고싶은 대로 다 잘 풀려라며 가지고 온 한방차를 꿀꺽꿀꺽 마셨다.

이제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녀분들이 다 오시겠다고 하자 기자에게 되려 플래카드 안 봤냐며,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라고 한 방 제대로 펀치를 날렸다.

요즘 마을마다 아범아, 추석엔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마음만 보내라라고 허잖니. 나도 네 명 모두 오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생일 때 온다 허대. 그래서 내가 생일 때도 오지 말어라. 정 서운하거들랑 돈만 부쳐. 맛있는 거 먹을게. 내가 뭐 차가 없냐. 돈만 주면 다 해결 된께 오지말라고 당부혔어. 며느리가 그래도 서운한지 반찬 택배로 보낸대. 그래서 내가 보낼거 없어. 돈만 줘라고 혔어.

지난번에는 누가 제사 지낸다고 간다길래 요즘 시국에 제사가 뭐 필요허냐. 살아서 뜨뜻한 물 한 모금이라도 떠다 주고, 좋은 옷 한 벌 더 사다주면 고만이지. 그래도 서운하거들랑 돈이나 넉넉히 보내. 갈 것 없이.”

곽민지 여사는 자신의 명절도 평정했는데 요양보호사 할머니 댁의 명절도 평정했다며 당당하게 뒷얘기를 해주었다. “그 집 며느리가 전화 왔길래 우리 애들한테 하듯이 그랬어. ‘명절이 무슨 소용있것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라고 하자 며느리가 아들은 내려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말혔어. ‘그 아들 내게로 보내. 내가 해결해 줄게. 정리 끝그렇게 말하고 전화 끊었어.”

곽민지 여사는 마치 현대판 여전사 같았다. 불의를 보면 달려들어 반드시 옳고 그름의 판단을 스스로 잣대를 정해놓고 확실하게 내려는 그런 여전사 말이다. 기자가 너무 현명하시다고 말하자 대뜸 이렇게 말하며 또 예의 소프라노 톤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 국민학교 출신인디 뭣이 현명혀. 중학교 배울라고 혔는디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 못 배운 게 한이라 우리 애들은 어찌하든 갈친다고 해서 식당 10년하고 직장 10년 다녀서 13녀 다 대학 갈쳤어. 지금 세대는 배워야 뭘 해 먹고 살지 못 배우면 소용없어. 그래서 내가 뭘 배우려고 평생학습관 다니면서 별지랄 다 해봤잖여. 할거 다했응께 이제는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어.

참 기자니께, 고스톱 자격증 있는지 알어보유. 나 고스톱은 잘 치니께. 치매예방으로 고스톱이 놀이치고는 최고인디. 힐링사업도 되고 월매나 좋아 까르르~”

이번 추석에는 남편 퇴직 때 선물한 캠핑카를 타고 멋있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곽민지 여사, “연휴 멋있게 노는거지 뭐. 죽으면 고만이니께라며 떠난 여행에서 더 멋지고, 더 미안해하지 않으며, 더 편안한 생을 위해 완전무장해서 현장 복귀하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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